05. 자취방 구하기
몰타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어학원이나 유학원에서 연계해주는 기숙사, 레지던스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집의 위치나 구조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고 영어로 의사소통할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는 quicklets이라는 현지 부동산 사이트를 이용해 중개인과 집을 보러 다니는 방법이다. 내가 원하는 예산, 구조, 위치 등을 고려한 집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한 달 월세를 보증금으로 맡겨야 하고 부동산 수수료도 월세의 반에 추가로 세금 18%를 더해 지불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세 번째는 shareflatmalta라는 페이스북 사이트를 활용하여 직접 발품을 팔아 집을 구하는 방법이다. 수수료 없이 집주인과 직접 계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집주인을 사칭하거나 집주인인데도 불구하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생각지 않은 불편한 일을 겪을 위험이 있다. 위의 세 가지 방법 이외에도 에어비앤비나 호텔 등에서 지낼 수도 있지만 3개월 이상의 장기체류 시에는 비자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받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에 보통 앞의 세 가지 방법 중에서 선택을 한다.
나는 우선 한 달 정도 유학원에서 연계해 주는 셰어 플랫에 머무르며 집을 구하기로 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인 유학원 원장님의 추천 집을 보기로 했다. 추천 집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혼자 살기에 지나치게 크고 월세도 예산을 훨씬 초과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위치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으로 동시에 후보 집들을 찾아보았다. 흥미로웠던 점은 같은 집이 두 사이트 모두에 등록되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면 당연히 수수료가 들지 않는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하겠지만, 내겐 비자발급을 위한 ‘rental declaration form’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수료가 들더라도 안전하게 부동산을 통해서 집을 구하기로 맘먹었다.
그나저나 한국에서도 쭉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터라 집을 구해본 경험이 없는데 낯선 타지에서 집을 구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니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약간 설레기도 하였다. 하지만 설렘만 가지고 좋은 집을 구할 수는 없다. 그래서 벼락 안목을 위해 ‘월세집 구하는 팁’을 인터넷에 검색하기도 하고, ‘렌트 시 필요한 영어문장’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며 언어장벽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집에 대한 나만의 취향도 아래처럼 정리해보았다.
1. 걸어서 학원을 다닐 수 있으며 몰타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 = 수도 발레타
2. 청소하기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침실과 부엌이 분리가 된 곳 = 원 베드룸
3. 내부가 감각적으로 꾸며져 있고 필수 가전제품이 인테리어 되어 있는 곳 = 풀옵션 스튜디오
4. 밤낮 구분 없이 안전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
5. 감당 가능한 월세
다섯 가지를 마음에 둔 채, 사진상으로 괜찮아 보이는 첫 번째 집을 발견하고, 정보란의 중개인에게 연락을 했다. 먼저 집을 보고 싶다고 중개인에게 메일을 보내면 이후에 왓츠앱을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거나 대면 약속을 잡는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 집을 소개해준 중개인은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먼저 집을 보여주었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렇게 쉽게 집을 구하나 싶었는데 이 집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세탁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중개인은 5분 거리에 코인 세탁소가 있다고 위로의 말을 덧붙였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일 년 내내 세탁기 없이 지내는 것은 생각만 해도 불편했기에 아쉽게도 바로 다른 집을 알아보았다.
두 번째 집은 2층 집이었다. 두 번째 집을 담당하는 중개인은 직접 집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중개인의 차를 타고 바로 집으로 향하였다. 사진에서 보던 대로 실물 또한 고풍스럽고 바다가 살짝 보이는 집이었지만, 1층의 전자레인지가 너무 낡아 보였다. 혼자 살 생각을 할 때 정성 들여 요리를 해 먹는 나의 모습을 생각했었는데 이 집에서는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결정을 보류했었는데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다른 이의 집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에 같은 중개인이 여러 집을 보여주었지만, 기대 이하였고 이렇게 타지에서 처음으로 내 집 없는 서러움을 느꼈다.
며칠이 지났을까. 얼른 좋은 집을 구해야 한다는 초조함을 느끼며 잠을 청하던 어느 새벽, 별 기대감 없이 부동산 사이트를 들어갔다가 우연히 본 집에 마음을 뺏겨버렸다. 집은 아주 특별한 구조의 2층 집이었다. 몰타만의 개성이 강한 흰색의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작은 철제 테이블이 놓여있다. 보자마자 열쇠와 화병을 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이는 이케아 스튜디오를 옮겨놓은 듯한 작은 주방, 그리고 그 옆에는 화장실이 있다. 현관과 주방 사이에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철제 계단이 있는데 성에 오르듯 회전하며 올라가면 2층이 나온다. 그곳에는 회색 소파 하나로 가득 찬 작은 거실과 침실이 있다. 침실의 바닥은 대리석이던 1층 바닥과 달리 원목으로 되어있다. 선풍기와 에어컨, 공부하기 좋은 책상, 감각적인 오브제들, 꿀잠을 잘 수 있는 폭신한 침대, 짐들을 숨길 수 있는 서랍장과 옷장, 흔들의자, 햇빛과 바람을 가득 받을 수 있는 널찍한 두 개의 창문까지 내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벌써 손가락 열개를 넘어섰다. 그래서일까? 본능적으로 여기서 살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일어나자마자 중개인에게 연락을 했고, 들뜬 마음으로 집을 바로 보러 갔다. 그런데 중개인이 사진에서 본 집이 아닌 다른 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나는 내가 본 집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중개인은 뭔가 깨달은 듯 바로 옆집의 문을 열쇠로 열어주었다.
다행히 사진과 완벽하게 똑같은 집은 실제로 존재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부동산 사이트의 실수로 인해 월세가 150유로나 잘못 기재되어있었던 것이다. 원래 100만 원이던 것과 80만 원으로 알고 있다가 100만 원이 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월세 때문에 고민을 하자, 중개인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150유로를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세입자인 내 입장에서 봐도 큰 손해였다. 중개인과 집주인 사이에 몇 번의 전화가 오간 끝에 결국 50유로를 할인받아 계약이 성사되었다. 계약은 바로 다음 날, ‘중개인-집주인의 대리인-나’ 간의 삼자대면을 통해 아주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먼저 중개인에게 수수료와 보증금을 납부하고 관련 영수증을 챙겼다. 다음으로 대리인이 하루 전 먼저 보내준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계약서는 총 3장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필요했던 ‘rental declaration form’를 받았다. 혹시나 해서 동의를 구하고 계약 과정을 녹화했었는데 너무나도 좋은 중개인과 대리인을 만나 1년 내내 녹화본을 다시 볼일이 없었다.
계약을 모두 끝내고 난 뒤, 중개인은 자기는 몰타 토박이라며 동네 구경을 시켜준다고 했다. 슈퍼마켓부터 시작해서 금요일에 가면 좋은 펍과 가성비 좋은 샌드위치 가게 그리고 분위기가 너무 좋은 칵테일바와 은행의 위치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장소들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틈틈이 자기는 집에 가자마자 옷들을 세탁한다며 자체 소독을 하니 코로나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의 집 앞에서 작별을 고하려는데 중개인이 아까 말해준다는 걸 깜빡했다며 한마디 하였다.
“오늘 옆집에도 아시아인이 이사 온 것 같아, 혹시 모르니 인사해봐!”
나는 속으로 ‘외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 동네인데? 잘못 봤겠지?’ 생각하며 옆집 앞을 기웃거렸고, 인기척을 느낀 옆집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본능적으로 내가 살집이라고 느꼈듯이 그녀를 보는 순간 나의 뇌는 그녀를 한국인이라고 인지하며 입을 열게 만들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한국인이에요, 한국인이세요?”
세상에 내 인생, 로또가 안 된다는 것 빼고는 참 운이 좋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