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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Jan 20. 2022

bts? parasite? 맞아요! 거기서 왔어요!

04. 첫 수업의 기억

  ‘줌으로 수업을 듣게 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첫 만남에 자기소개를 해야겠지? 자기소개라니, 언제 마지막으로 해봤더라…?, 그럼,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 하나?, 외국이니 나이는 이야기 안 해도 되겠지?, 취미랑 직업을 이야기하면 되려나?’

  누가 자기소개를 미리 준비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ENFP인 나의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눈을 마주치며 설렘, 긴장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온라인 자기소개도 나름대로 새로운 경험이라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줌 수업이 시작됐고, 작은 화면 속에서 10명 남짓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나를 환영해주었다. 줌을 활용한 온라인 수업은 확실하게 장단점이 있다. 굳이 노트 필기를 하지 않아도 캡처를 통해 쉽게 기록 또는 저장할 수 있고, 소모임 그룹을 통해 소규모로 대화할 시간이 자주 주어진다는 것은 좋았지만,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하다 보니 괜히 더 부끄럽고 인터넷 신호나 주변 소음에 따라 대화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은 아쉬웠다.

  수업의 형태와는 별개로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에서 건너온 다국적 친구들과의 첫 만남은 아주 흥미로웠다. 나아가 ‘영어 공부’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같은 장소에 온 다양한 억양의 학습자들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친구들 또한 방탄소년단과 기생충의 나라에서 온 나를 격하게 반겨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보다 며칠 일찍 수업을 먼저 듣게 된 콜롬비아인 친구는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따뜻한 마음을 내게 전했다. 첫 수업이 끝나갈 때쯤,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게 ‘whatsapp’ 대화방에 초대해주겠다고 했다. 자주 사용하던 ‘kakaotalk’이 아닌 다른 SNS를 사용하게 되니 비로소 새로운 세계에 온 것이 실감 났다.

  한편, 수업 전 화려하게 생각의 나래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영어 이름을 만들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몰타에서도 내 이름의 의미대로 살고 싶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불러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기저에는 영어 철자가 고작 4개뿐인 데다가 받침도 없기 때문에 발음하기 쉬울 거라는 예상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름을 한 번에 외우거나 무사히 발음하는 친구들은 한국어를 알고 있거나 혹은 동양인 친구가 있거나 하는 경우뿐이었다. 대부분은 여러 번 들려주고 철자를 불러줘야 제대로 발음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수고로움 이상으로 일 년 내내 부모님이 지어주신 사랑스러운 이름을 많은 친구들이 불러줘서 참 행복했다.

  나의 이름을 잘 발음해줘서 기분이 좋았던 것처럼 한국에 호의적인 외국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미소 짓는 날도 많았다. 몇 년 전에 엄마와 터키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행 중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실 때, 한 여학생이 다가와서 한국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더니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고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입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라서 고맙다고 말한 뒤에는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면 좋을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몇 년 사이에 한국 문화에 대해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한국에서부터 알고 있었기에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 한국 전통의상을 입은 열쇠고리를 선물용으로 가져왔다. 더불어 한식당도 두 군데나 있다길래 기회가 되면 한식도 소개해주리라 내적 다짐을 강하게 했다. 다짐한 대로 일 년 동안 만난 가까운 친구들에게 열쇠고리도 나눠주고 한식당에도 데려가서 젓가락질도 가르쳐주며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었다.

  그나저나 몰타에는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본인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일식당도 많다.(어쩌면 일식의 세계화 때문인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흔히 거리를 걷다 보면 인종차별적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는 “Chinese?”보다 “Japanese?”라고 묻거나 아예 일본어로 말을 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말대꾸도 하지 않고 내 갈길을 갔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는 날에는 “No”, 더욱더 마음의 여유가 있는 날에는 “Korean”이라고 대꾸해주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지도와 애정도가 몇 년 사이에 확실히 높아져서 인지 한국인임을 밝히면 100 이면 100으로 너무 좋아했다. 심지어 한국인을 보고 싶었는데 처음 만나서 너무 좋다고 방방 뛰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대화에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한날은 자주 가던 카페의 한 동양인 남자가 내가 한국인임을 단박에 알아보며 말을 걸길래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너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다.”라고 호탕하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 남자가 일본인이었기에 ‘난이도 하’의 문제였겠지만, 나로선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이목구비와 분위기를 제대로 풍기고 있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 묘하게 뿌듯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로 인해 한국의 이미지가 더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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