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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Dec 20. 2020

'새벽 배송'보다 빠른 '바로 배송'


<2시간 이내에 배달해드립니다>     


 하루를 기다려야 하는 샛별 배송, 새벽 배송보다 훨씬 빠른 배달 서비스가 있다. 클릭 몇 번이면 텅 빈 냉장고에 신선식품이 가득 들어차는 데에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것도 싱싱한 식품을 시중의 유통업체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정말 그런 서비스가 있다고?


 C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통시장’만을 위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소비자가 앱으로 전통시장 물품을 주문하면 빠르면 1시간 내에, 늦어도 2시간 이내에 집 앞에 도착한다. 전통시장 물건이기에 가격도 어느 곳보다 저렴하다.

    

 전통시장은 그간 확실한 가격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주차 시설 부족, 낙후된 시설, 무거운 짐을 들고 쇼핑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소비자는 오래전 마트와 온라인 시장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전통시장의 문제점을 한 번에 해결한 것이 C 회사의 실시간 배달 중개 플랫폼이다. 전통시장의 물건을 이제 집에서 편리하게 받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3월 경기도 광명의 한 전통시장에서 해당 서비스를 출시하자마자 시장의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서비스 개시 후 23일 동안 판매된 상품 수는 2만 3,700개, 총판매 금액은 7,100만 원을 넘어섰다. 지역 내 맘 카페에서는 난리가 났다. 30~40대 주부들이 크게 호응하며 앱 신규 가입자가 일평균 600명을 넘어섰다.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전국의 지자체와 전통시장 상인회에서는 C 업체에 물밀듯이 문의를 해왔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자는 한 곳이다. 업체가 시장에 일일이 찾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전국 각지의 시장에서 서비스를 출시한 광명의 전통시장으로 단체 견학을 올 정도였다.      



     

<전통시장은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성역>


 매해 명절마다 전통시장의 침체와 활성화 이슈는 뉴스의 단골 거리이지만 사실 전통시장은 차마 누구도 손쉽게 건들지 못하는 일종의 성역이었다. 수십 년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정부도 어찌하지 못했고 기업 역시 늘 실패하고 나오는 곳이 전통시장이었다. 그간 IT 공룡기업들의 여러 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발을 빼야 했다.      

 

 문제는 시장의 내부적인 구조에 있다. 전통시장은 개별 점주들의 모임이다. 오너가 한 명이면 하나의 명령 체계로 돌아갈 수 있지만 전통시장은 점포가 100개이면 점주가 100명인 탓에 100개의 다른 의견이 나오는 곳이다. 외부에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제안해도 갖가지 이견이 발생한다. 또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이들이 시장의 소비 트렌드를 읽거나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창업을 시도하며 시장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C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어차피 죽어가는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왜 사업을 하냐는 주위의 비판이었다. 하지만 C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전통시장은 동네 골목마다 있고 소비자들이 유니크하다. 지역 소비자를 위한 바로 배송, 그들과 소통하는 채널, 확실한 시스템만 갖추어진다면 분명 새로운 물류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년 동안 시장 300곳 방문>     


 그렇다면 C가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출시하기까지 그는 어떤 과정을 겪었을까?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보자.      


 C는 이미 미국에서 창업을 한 차례 경험한 바 있었다. 대형 마트를 통합한 마케팅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을 2년간 운영했다. 사업성은 있었지만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서 첫 사업에 실패했다. 때마침 친분이 있는 교수님으로부터 한국의 전통시장을 살려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시장조사를 위해 십여 년 만에 한국의 시장을 방문했다.       


 유년시절 기억 속의 전통시장을 생각하며 방문했던 C는 충격을 받았다. 시장은 생기를 잃었고 세상과 동떨어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낙후되어 있었다. 게다가 본인이 가진 기술은 대형마트에 최적화된 플랫폼 기술이었기에 시장에 바로 적용할 수도 없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C는 전통시장에서 분명 기회를 보았다.      


 발품을 팔며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전통시장이 어떻게 물건을 판매하고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지 알기 위해서 1년 동안 300곳의 시장을 방문했고 한 군데 시장을 최소 4번은 갔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가방에 티셔츠를 몇 장씩 넣고 돌아다녔다. 시장 상인들은 사업 이야기를 꺼내는 낯선 이방인에게 매서운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놈의 재고관리를 어떻게 하지?'>     

 

 C는 배달 서비스만이 전통시장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재고 관리부터가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앞서 말했듯이 100개의 점포에 100개의 점주가 있는 곳이 전통시장인 까닭이다. C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전통시장 재고 관리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생선, 고기 등 일반적인 식품부터 각각의 시장만이 가진 특별한 먹을거리까지, 하나하나 사진을 촬영하고 데이터 값을 입력하는 방식으로 전통시장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나갔다. 이렇게 수 만개의 데이터를 직접 만드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단 시장에 오게 해야 한다'>     


 데이터베이스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했기에, 그 사이 C는 앱 서비스를 우선 론칭해 전통시장을 위한 마케팅 사업을 시작했다. 해당 앱에는 전통시장 방문을 위한 특별한 유인책이 숨어 있었다. 소비자가 C회사의 앱을 통해 지역광고를 시청하면 포인트를 받을 수 있고 이렇게 적립한 포인트를 전통시장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간 시장에서 하지 않았던 다양한 행사들도 기획했다.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처럼 1000원짜리 물건을 100원에 파는 등 폭탄 세일 등의 행사를 상인들과 힘을 모아 기획했다. C는 이들 행사를 앱을 통해 홍보했고 해당 광고 영상을 보면 또 포인트를 주는 방식으로 매출을 연결시켰다. 2018년 화곡 00 시장에서 첫 시작한 해당 사업으로 시장의 신규 소비자와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 사이 C는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완성시키며 동시에 배달 서비스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성공요인 총집합>     


 C가 주목한 전통시장 온라인화는 완벽한 블루오션에 가깝다. 매년 뉴스에서 회자되는 사회 이슈이지만 어느 누구 하나 명쾌한 솔루션을 내지 못한 분야였다. 그는 오랜 시간 발품을 팔며 확실한 시장 조사, 데이터베이스화를 구축했다.


 또한 C의 사업은 전통시장 활성화, 소상공인의 온라인화를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 결을 같이한다. 정부의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아주 좋은 아이템인 것이다. 실제로 C 회사는 사업 초창기부터 중소벤처기업부와 다양한 협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것이 또 있다. C의 업체는 국내 최초의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술기반 벤처기업이라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소비자가 물건을 주문한 뒤 물품을 받기까지 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소비자가 앱을 통해 전통시장 상품을 구매하면 시장 상인들에게 알림이 수신돼 상인들은 해당 상품을 따로 담아 놓는다. 주문자 수가 어느 정도 모이면 C 업체 배달기사들이 상품을 하나하나 수거하면서 상품 영수증에 있는 큐알코드를 찍는다. 이를 통해 주문자 별로 상품을 모아 담아 각각의 집으로 배달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간편 결제시스템, 소비자 데이터 수집을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와 AI, 시장에서 픽업을 빨리 진행하도록 하기 위한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기술이 숨어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핵심 기술은 기사들의 배달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한 '스마트 물류 시스템'이다. 만약 20군데 배달을 해야 하는 경우라 가정해보자. 일반적인 택배회사의 기사들은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배달지를 본인이 임의로 선택한 뒤 내비게이션을 찍어 이동한다. 그런데 C 업체의 경우 배달기사가 20군데 경로를 모두 입력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1초 만에 최단거리 경로가 산출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배달기사들의 동선과 이동 시간이 최소한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C는 해당 기술을 통해 정부의 ‘TIPS(팁스)’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팁스는 혁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이 대규모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정부지원 사업의 꽃’으로 불린다.                



    

<지역사회에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회사>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도 살려내지 못했던 전통시장. C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집중함으로써 시장의 혁신을 내부적으로 이끌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C 회사가 고마울 정도이다. 변화를 거부하던 시장들마저 앞 다투어 연락이 올만큼 시장의 매출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덩달아 C 회사의 매출도 치솟고 있다.      


 하지만 C 회사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수료 장사는 하지 않고 있다. 일반 음식 배달 앱처럼 이용 수수료나 광고 수수료 등 별도의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시장 가격 그대로 소비자에게 물품을 전달하며 시장에는 오로지 배달비만 받고 있다. 배달 수요가 충분하면 수익이 넉넉히 발생한다는 것이 C의 입장이다. 최단경로 산출 시스템 덕분에 기사들의 이동 시간을 확실히 줄일 수 있는 점이 수익 극대화에 한 몫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배달기사들은 시간에 쫓겨 위험하지 않냐고? 직원들에겐 악덕기업이냐고? C 회사는 배달기사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위험 요소가 늘 따르는 직업에 산재 보험이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에 대한 적절한 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시장들이 알아서 서비스 이용을 의뢰하는 상황이기에 마케팅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아 그 비용을 직원에게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배달기사의 차량에 탑승해 직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주위에 배달업에 종사하는 지인들이 모두 본인의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했다. 자신은 운이 좋았단다. C 회사의 기업 모토는 ‘지역사회에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회사’이다.  


 자신이 소속한 조직에 만족감과 자긍심을 가진 직원. 이런 직원이 많은 회사를 만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들의 열의와 에너지가 모여 이 작은 스타트업이 얼마나 커다란 거인으로 성장해 나갈지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추후에 C 회사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이 될 것이다.     


 “OO구 OO동에는 서비스 계획이 없나요?” 인터뷰가 끝남과 동시에 우리 동네에는 서비스 론칭 계획이 없는지 C에게 물었다. 당시에는 계획이 없다는 말에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멀지 않은 어느 때에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언젠가 인근에 해당 서비스가 들어온다면 우리 지역의 맘카페도 들썩일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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