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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ul 25. 2021

2. 지구인이 만난 외계 세상, ‘짠테크’의 세계

 태교를 경제서적으로 했다. 특히 재테크 서적을 주로 읽었다. 출산을 두 달 앞두고 회사를 나와 매일같이 서점으로 출근을 했다. 이 책 저 책을 접하다 보니 투자는 최소 2~3년은 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시작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들었다. 투자에 앞서 선행해야 하는 것은 결국 종잣돈을 모으기 위한 절약이었고, 절약은 심지어 투자와 달리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그냥 돈을 안 쓰면 되는 것이었다.


 이자 수수료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한때 리볼빙이나 하던 내게 이른바 ‘짠테크’는 실로 놀라운 세상이었다. 마치 우주에 처음 가본 지구인의 기분이랄까. 강렬한 충격을 추진력 삼아 당장 실천에 들어갔다. 여러 짠테크 서적들 중 가장 임팩트가 컸던 책, <짠테크 전성시대>를 모범답안 삼아 책 내용을 무작정 따라 하기로 했다. 이 책은 재테크 카페인 ‘짠돌이카페’의 회원들 중 슈퍼짠돌이 12인의 경험담을 녹여낸 책으로 절약을 위한 수많은 실천방안이 담겨 있었다.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후 당장 실천해야 할 ‘액션 플랜’을 워드로 정리해 냉장고에 붙여 놓고 하나씩 실행해 나갔다.


 책 속의 다양한 실행 방안을 모두 실천해 본 1인으로서 가계경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는 행동을 단 하나만 꼽으라 ‘통장 쪼개기’다. 일반적인 재테크 책에서는 대략 4개의 통장(급여통장, 투자통장, 소비 통장, 비상금 통장)으로 통장을 쪼개라고 하지만 더 세밀하게 통장을 쪼개었다는 슈퍼짠의 경험담에 비추어 나 역시 통장을 최대한 세분화했다. 그래서 현재 내 통장이 몇 개냐고? 급여통장, 투자통장, 비상금 통장에 7개의 소비 통장, 10여 개의 예적금 통장이 있다. 소비 통장은 공과금, 식비, 외식비, 기타 경비, 차량 유지비, 의료비, 연간 의복비 통장으로 나누었다. (아이 관련 통장들은 또 따로 있다.) 통장을 잘게 쪼개어서 얻은 효과는 가계부를 쓰지 않고도 지출의 흐름을 정확히 간파할 수 있다는 점이고 모두 체크카드로 연동해 놓았기 때문에 지출에 확실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다 잘라버리고 비상시를 대비해 딱 1장만 남겨 놓았다. 수입이 늘면 느는 대로, 줄어들면 줄어드는 대로 수입의 2/3는 저축을 한다는 원칙 아래 가계경제를 시스템화해놓으니 절약과 저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절약이 생활화되는 사소한 습관들을 몸에 배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이 과정이 오히려 몸에 붙지 않아 ‘to do list’를 작성해 역시나 냉장고에 붙여놓고 실천했다. 예를 들어 장 보러 갈 때 장바구니 들고 가기, 외출할 때 물병에 물 넣어서 나가기, 수도꼭지 냉수 방향으로 돌려놓기와 같은 소소한 것들이었다. 지금은 물론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최근 들어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 지난해부터 장을 볼 때 전통시장 내에 있는 마트를 이용하면서 ‘온누리모바일상품권’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 온누리상품권은 설과 추석 등에만 10% 할인 판매하지만 모바일에서는 연중 내내 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물론 짠테크에 돌입하면서도 책 내용에 맞추어 내 생활의 모든 패턴을 바꾸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 넘치는 책이라 한들, 각자가 다른 삶의 방식과 형태, 철학을 갖고 사는 것이니 일정 부분 취사선택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특히 결혼생활은 나와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니 둘의 의견이 합의가 되는 부분까지만 짠테크든 뭐든 강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격 짠테크의 세상에 진입한 나에게 남편은 다른 건 다 맞추어도 ‘여행’과 ‘맛집’ 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가족과 잘 놀기 위해서’라 했다.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옷 한 벌 안 사 입는 사람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까지 뺏어가며 추구해야 할 가치는 없다고 판단되었기에 남편의 이유 있는 고집에 수긍하기로 했다. 결국 짠테크라는 것도 우리가 가족이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구매’에는 돈을 쓰지 않지만 ‘경험’에는 돈을 쓴다는 것이 우리 가족 나름의 짠테크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그렇다고 한들 현실적으로 ‘짠테크’와 ‘여행&맛집 탐방’은 그야말로 대척점에 있는, 결코 공존하기 어려운 분야이긴 하다. 때문에 잦은 여행으로 발생하는 거대 지출을 상쇄하기 위해 우리는 물건을 되도록 사지 않고자 극도로 노력했다. 남편은 나에게 결혼 전에 두 가지를 속아 결혼했다고 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렇게 검소할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통장잔고가 20만 원이었으니 기대감이란 게 없었겠지 싶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한때 무분별한 소비 지출이 생활화되어 있던 내가 쇼핑이란 걸 아예 끊다시피 했음에도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물건을 사지 않으면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는데 이 역시 특정 분야의 책을 통해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기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고 탈피하듯 생활방식의 모든 면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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