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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ul 25. 2021

3. 심플한 삶! ‘행동 습관’을 바꾸다

결혼 전, 자취방이 옷으로 넘쳐나 순전히 ‘옷 때문에’ 평수를 넓혀 이사를 간 적이 있었다. 20대에 줄곧 옷을 사 모았고 아나운서를 하면서부터는 화면에 잘 받는 방송용 옷까지 구매한 데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서른 살을 기점으로 쇼핑 욕구가 폭발해 집 전체가 옷으로 파묻힐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옷 쇼핑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실생활에 꼭 필요한 옷이나 오피스룩 등을 샀다면 좀 나았을 텐데 여행 가서나 입을 법한 잔뜩 화려한 옷만을 한껏 사모아 몇 년 동안 꺼내 입지도 못하는 옷들이 옷장에 가득 쌓여만 갔다. 행사가 있거나 특별한 날을 맞이하는 친구들은 어김없이 내 자취방을 찾아와 옷을 빌려가곤 했다.


 임신 이후 재테크 책을 한창 읽으면서 새롭게 눈을 뜬 분야는 ‘정리’였다. 짠테크를 통해 그간의 소비패턴을 점검하며 이미 수많은 물건(특히 옷)들이 집 안에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몇 개 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물건 구매 시 불필요한 지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재고 파악'을 위한 정리부터 해야 했다. 그런데 정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역시나 관련 책을 여러 권 읽기 시작했는데 그중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는 정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책이었다. 물건을 많이 사는 것이 윤택한 삶이라 여겼던 생각의 틀을 깨부수어 준 책. 오히려 정말 필요한 물건만을 소유하며 정갈하게 사는 것이 더 우아한 삶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옷을 버리기 시작했다. 사과 박스에 차곡차곡 옷을 모아 기부를 하거나 중고00에 팔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그냥 버렸다. 정리 책들이 제시한 조언에 따라 '설레지 않은 옷, 최근 5년간 입지 않은 옷' 위주로 몇 날 며칠을 버렸다. 스스로 놀랄 만큼 진짜 많이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옷장을 열면 또 버릴 옷이 있었다. 그렇게 옷을 버리기 시작하니 계절별로 내 옷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드디어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옷을 사지도 않았는데 입을 옷들이 넘쳐났다. 옷을 버리면서 빈 공간이 생겨나자 집을 넓혀 이사한 듯한 효과마저 들었다. 쇼핑보다 더 즐거운 것이 비우는 일이라는 걸, 생애 34년 만에 알게 되었다. 점차 집 안의 다른 물건들까지 하나씩 비우기 시작했다.


 ‘결국 다 이렇게 버릴 건데, 이 많은 물건을 사느라 그 많은 돈을 쓰면서 집의 공간까지 다 내어주고 살았구나. 물건을 찾느라, 정리하느라 귀한 시간까지 쓰면서...’ 물건을 버리면서 수십 번도 넘게 든 생각이다. 비우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물건을 사기가 싫어졌다. 그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 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절약을 해야지’라는 결심을 하기도 전에 그냥 쇼핑이 그다지 즐겁지 않은 행위로 다가왔다.


 불필요한 물건을 비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 정돈하는 습관까지 생겨났다. 정리의 재미를 맛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집에 남아 있는 물건들은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들뿐이었다. 고백하건대, 이전의 나는 정리를 무척 못하는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는 내가 정리를 못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정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실천하다 보니 정리에 심취하게 되었고, 특히 책의 한 구절 ‘내가 사는 공간이 곧 나 자신이다.’라는 문구에 꽂혀 나를 아끼듯 내 공간을 아끼게 되었다. 와 더불어 아이에게 늘 정돈된, 깨끗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욕구는 새로운 습관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동력이 되었다.


 얼마 전, 예전 회사에서 같은 책상 라인을 썼던 후배들이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선배, 집이 왜 이렇게 깨끗해요? 선배 책상의 먼지... 분명히 기억하는데...”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랬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련의 변화는 ‘아이’로부터 시작되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비우고 정리한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도 정리해나갔다. 기자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느라 소위 말해 ‘기가 빨리고’ 사람들에게 많이 지쳐있었다. 때문에 일부러 사람들을 덜 만나고 특히 새로운 관계를 굳이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조리원 동기’였는데 육아 정보가 조금 부족할지언정, 엄마라는 역할이 서투를지언정 불필요한 관계 때문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아껴 차라리 아이한테 쓰고 싶었다. 또한 엄마들 채팅방에서 오가는 신박한 육아템들을 나 몰라라 할 만큼 귀가 두껍지도 못했다. 실제로 아이를 한참 키우고 나서 알게 된 생소한 육아템들이 상당한데 귀 닫고 눈 닫고 살았기에 새로운 소비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불현듯 아이 출산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아빠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아이를 돈으로 키우려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키워라.” 나는 여전히 그 말이 정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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