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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ul 28. 2021

5. 아직은 모자란 ‘부모다움’

 

 나는 식욕이 왕성한 편이었다.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었다면 엄청난 거구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5살 터울의 오빠와 자라며 생존본능처럼 식탐을 장착했고 맛있는 음식이 앞에서는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먹기에 바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이를 낳은 이후로 몇 년간 식탐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음식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며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점에 가도 아이가 잘 먹지 않으면 나까지 입맛이 뚝 떨어져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반대로 아이가 음식을 맛있게 잘 먹으면 내가 그만큼 먹은 것처럼 배부르게 느껴져 또 그다지 입맛이 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들이 아이들 것만 챙겨주고 본인 건 제대로 챙겨 먹지 않나 보다.)


 하루는 남편이 말하길, 사실 아이 낳기 전엔 자기 혼자 애를 다 키우게 될까 봐 속으로 걱정을 했었단다. 나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어서 ‘모성애’란 것이 없을 줄 알았다나.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이렇게 모성애가 강할 줄은 몰랐다.’며 속아서 결혼한 것 같다 했다.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아이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고 편하게 키우기를 수시로 강조했는데 실은 그것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바였다. 내려놓고 키우는 것이 더 좋은 육아라는 걸, 책을 통해 이미 머리로는 깨달았기에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산뜻하게 아이를 키우는 쿨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에게는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이 먹는 것부터 시작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하는 육아는 단순히 ‘힘들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상 너머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요구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운 지 4년 즈음.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2년 정도 전업맘으로 아이를 키우면서는 멘탈이 나갔고 이후 2년간 워킹맘으로 살면서는 몸이 망가졌다. 급기야 응급실에 실려 가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웠지만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바람직한 엄마는 결코 되지 못했다. 자주 욱하고 화내는, 그러고는 자책하고 반성하기에 바쁜 그저 현실 세계의 엄마였다. 그러던 와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최명희 교수의 책, <부모다움>은 내게 커다란 위로와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지금처럼 깊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덜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부모로 살고 있기 때문에 마치 향을 싼 종이처럼 당신의 삶에서 그윽한 향기가 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과열되는 ‘유아기 육아’를 어느 정도 진행한 엄마로서 공감가지 않은 글이 없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며 똑똑한 잔소리들로 넘쳐나는 육아서가 아닌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참 고생했다.’라며 지친 나를 다독여주는 책이었다. 아무도 몰라주는 것만 같은 내 마음을 보듬어주고 그동안의 노고를 인정해주는 듯했다. 이렇듯 좋은 양서를 만나면 삶이 한층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단 하나. 이것만큼은 부모로서 반드시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부모다움’은 아이 앞에서 어른답게 감정을 조절하는 것, 그래서 인생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아이를 낳기 전 세웠던 두 가지 육아 원칙(많이 사랑해주고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할,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원칙 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토록 중요한 것을, 가장 하면 안 되는 것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후회하는 것을 나는 왜 또 반복하는 것일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나는 왜 화가 나는 것일까?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화가 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의 근원을 찾기 위해 여러 서적과 영상들을 찾아보다 결국 두 가지 분야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첫째는 내부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  스스로가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마음을 닦는 수행에 정진하며 화가 덜 나는 사람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문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둘째는 외부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  육아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몸이 극도로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지치는 상황을 되도록 만들지 않아야 했다. 아이에게 10을 해줄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적당히 7~8 정도를 해주는 것이 바람직했다. 10 정도의 체력밖에 없으면서 그 이상을 해주려다 결국 제풀에 지쳐 화를 내고야 마는 것이었다. 이처럼 육아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간 쉽지 않다애써 외면해 왔던 ‘내려놓기’를 당장 실천해야 했다.


 찬찬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먹어도 아이에게는 최대한 몸에 좋은 걸 주고 싶어 지친 몸으로 홈메이드 요리를 했는데 이젠 몸이 힘들다 싶으면 쿨하게 배달음식을 시켰다. 아이가 어느 정도 먹어야 안심하고 먹기 시작하던 이전의 식사 습관을 버리고 일단 나부터 먼저 먹기 시작했다. 책을 5권 읽어줄 것도 2~3권으로 줄여 읽어주거나 웬만한 건 아이 스스로 하도록 알려주고 시키는 등 육체적 노동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들을 강구했다. ‘해줄 거 다해주고 화내는 육아’에서 ‘덜 해주고 화내지 않는 육아’로 방식을 바꾸어나가다 보니 차츰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전보다 화를 덜 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숙제는 남아있다. 결국은 ‘나’라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왜 화가 일어나는지, 감정 조절하는 데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성찰하며 나를 다스려야 한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건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일종의 수행자, 철학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부모다움’을 갖춘 엄마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오늘도 뇌며 천사처럼 잠든 아이의 가녀린 품을 살포시 끌어안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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