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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ul 29. 2021

6. 다 가질 수 없는, 엄마

 세상 밖으 나가고 싶지 않은 전업맘이 과연 몇이나 될까? 돌봄의 문제로 상당수의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지만 가슴 한 편엔 다시 어디론가 출근하고 싶은 마음, 내 이름을 찾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산다. 나 역시 그랬다. 그간 쌓아온 커리어가 출산과 육아로 단절되는 것이 내심 억울하기도 했고 생생한 육아의 현장에서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불사하지만 노동의 대가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도 서러웠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육아 아닌가. 그래서 도망치듯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올라왔지그러자니 당장 아이가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눈 한번 질끈 감고 가시를 삼켜보려 큰 맘을 먹어도, 이번엔 세상이 날 받아주지 않았다. 이미 경단녀가 되어버린 탓이다.


 아이를 낳을 때쯤, 막연하게 3년 정도는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아이와의 애착형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 3년. 그렇게 아이 옆에 있으면서도 3년 동안 안일하지 않게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조리원을 나온 직후부터 내 몸값을 높이기 위한 책을 읽었다. 언론대학원 다니며 과제에 매달리느라 정작 제대로 보지 못했던 전공서적부터 일할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챙겨보지 못했던 사회과학, 저널리즘 분야의 책들을 하나둘씩 정독해 나갔다. (기자 지망생이 있다면 김옥조 저자의 '미디어 윤리'와 새뮤얼 프리드먼이 쓴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냥 읽는 것에 그친다면 정리된 지식을 갖지 못할 것 같아 블로그에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가 잠자는 틈틈이 어떻게든 책을  자라도 더 읽고 서평을 꾸준히 쓰면서 생각하고  쓰는 감각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3년은 생각보다 꽤나 먼 시간이었다. 1년은 육아를 그럭저럭 할 만했는데 (심지어 즐겁게 했다) 반년 정도가 더 지나자 답답함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외벌이로 꾸려가는 가계 경제도 팍팍했고 재취업이 안될 것 같은 불안감도 날이 갈수록 커졌다. 결국 방송사, 신문사 할 것 없이 언론사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면접장에서건 가장 첫 번째로 듣게 되는 공통질문이 있었다. ‘근무하게 되면 아이는 누가 돌봐주나?’였다. Oh my god! 경력직 기자 면접에서 내가 예전에 어떤 취재를, 어떻게 했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술자리가 많은데 몇 시까지 있을 수 있나? 시부모님이 아이를 봐주신다면 몇 시까지 봐주실 수 있나? 가까이 사시나? 너무 늦으면 택시 타야 되는데 괜찮나?’ 뭐 이런 황당한 질문들을 받았다. 세상에! 경단녀, 저출산 문제의 현실을 지적하는 곳이 언론사 아니던가. 그럼 다른 일반 회사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란 말인가. 나뿐만이 아니라 육아로 공백이 있었던 아는 후배 여기자 역시 재취업을 위해 시험을 보러 가는 곳마다 그 질문을 집요하게 받았다고 한다. 이거 정말 실화냐?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인데 과연 어떤 용감한 여성들이 아이를 속 편하게 낳을 수 있단 말인가.  


 한편으론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질문을 했나?’ 싶기도 했는데, 시부모님의 육아 퇴근시간까지 걱정해주던 보수 언론사로부터 놀랍게도 합격 전화를 받았다. 운이 좋게 연봉협상도 꽤 만족스럽게 해냈다. 경단을 극복하고 정규직으로 취업에 골인하다니! 쾌재를 불러야 했다. 다시 내 명함을 갖고 역동적으로 일하며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인즉슨 이제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 씨름하며 맘 편히 씻지도, 먹지도,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생활에서 드디어 해방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가슴 한 편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역시나 아이가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합격을 해도 기뻐할 수 없는 것이 엄마라는 자리라는 걸, 아이를 낳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나와 같은 경단녀는 냉혹한 세상에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출근 준비하다 문득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1주일 후에 출근할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지인이었다. 회사의 분위기를 미리 전해 듣고 이런저런 마음의 준비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현타가 왔다. 이곳 회사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가 있어서 빨리 퇴근하는 여기자들은 밤 11시에 가고 자신을 비롯한 남자 기자들은 보통 새벽 1~2시에 퇴근한단다. 술 좋아하는 지인은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눈치였다. 아뿔싸. 면접 중에 시부모님 육퇴 시간을 걱정한 것은 100% 진심이었구나. 전화를 끊고 기분이 촤-악 가라앉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내 발 밑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아이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엄마가 화장실 가는 잠깐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20개월 껌딱지. 그런데 이제 1주일 후면 이 아이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엄마를 아예 못 보게 될 것이다. ‘아…. 이를 어찌해야 하나.’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가시’를 삼키지 못했다. 회사에는, 개인 사정으로 출근이 어려울 것 같다는 짤막한 사과의 인사를 남긴 채 쓴맛을 삼켜야 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당시 일을 포기한 것은 나름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6살이 된 아이는 아직도 엄마의 품을 찾는 꼬꼬마 껌딱지인데 상황 판단이 안 되는 20개월 아기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그것도 하루 종일 엄마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건  말 그대로 세상이 사라지는 듯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의 소개로 이름 없는 작은 방송사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취재 현장에만 가면 되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곳이었다. 업무 시간을 내 뜻대로 조율할 수 있으니 전업맘처럼 아이와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도 일은 일대로 할 수 있었기에 엄마에게는 최상의 근무 환경이라 여겼다. 물론 인지도도 없고 앞선 회사에 비해 월급도 적고 고용 형태도 불안정했지만 엄마에 가장 금쪽같은 '시간'을 얻지 않았는가. 엄마가 되고 나서 깨달은 세상의 이치가 하나 있다면 ‘전부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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