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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Jun 03. 2022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던 날

거짓말쟁이 K-장녀의 하루

  수혜자 검사는 입원하여 2박 3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사이 나는 B병원에서 미처 받지 못했던 정신건강의학과 검사와 사회복지사 면담을 C병원에서 진행했다. 지나 놓고 나니 별 일 아니었으나 그 당시는 매 단계가 challenging 했고(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한글로 표현할 단어가 없다) 긴장이 되었다. 혈액검사나 영상의학과 검사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라 치더라도 어느 정도 의지가 반영되는 검사 및 절차는 더욱이 바짝 신경이 곤두섰다. 여기서 미끄러지면 다른 병원에 가서 처음부터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나는 (조금 쓸데없이) 무진장 의욕적으로 임했다.


  그리하여 나는 난생처음으로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게 되었다. 정신과 상담을 거치는 이유는 기증자가 온전한 정신과 판단력으로 기증을 결정하였는지, 기증의사가 충분히 자발적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 역시도 초진이기 때문에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상담을 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상담에 앞서 수 장의 문진표가 내 앞에 들이밀어졌다. 의도를 짐작하기가 너무 쉬운 문진표들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때때로 화를 참을 수가 없다. 매우 그렇다, 조금 그렇다, 보통이다, 아닌 편이다, 절대 아니다. 가끔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 같다. 귀하는 일주일에 술을 몇 잔 정도 마십니까? 한 번 마실 때의 음주량은 어떻게 됩니까? 2병 이상, 1병 이상, 5잔 이상, 3잔 이상, 1~2잔, 전혀 마시지 않는다. 

  이제야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문제성 음주검사 파트는 거의 거짓말로 작성하고야 말았다. 나는 불과 6주 전까지만 해도 끼니때마다 맥주 500이 없으면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증의 알코올 중독자에 가까웠고 자리만 주어진다면 때때로 폭음도 서슴지 않았다. 한 번 술 마시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때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뻔뻔스럽게도 전혀 없다고 응답하였지만 한 달에 한두 번 꼴로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병 더를 외치다가 장렬히 전사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음주 후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했던 것도 정정해야 할 판이다. 나는 매 번 후회했다. 슬슬 숙취를 가눌 수 없는 나이가 된 탓도 있으나 무엇보다 나의 두 아들들은 숙취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아직 십수 년은 더 살아야 한다.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못한 채 소싯적처럼 침대 속에 파묻혀 길고도 끈적끈적한 휴식을 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예진실에서 만난 의사는 이 모든 정황을 알 리가 만무했다. 그녀 앞에서 나는 그저 만 32세의 매우 건강한 여성이었으며 두 명의 아들을 기르는 엄마였기 때문에 술 같은 건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나의 깜찍한 거짓말은 아주 감쪽같이 먹혀 들어갔다. 그녀는 상냥한 얼굴로 내가 아주 빠르게 채워낸 문진표를 확인하더니 다시 한번, 이 검사가 기증자의 의사가 자발적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고 법령상 필수로 시행되는 것임을 고지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본인이 기증하려고 하시나요?"


  이 간단한 질문을 처음 들어보게 된 이유는 그동안 모든 외래와 코디네이터와의 상담이 수혜자와 함께 있을 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 홀로 의료진 앞에서 기증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실은 여태껏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았지, 왜 내가 하려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결국 예기치 못한 질문에 허가 찔린 채로 그녀의 질문에 대해서도 약간 그런 방향으로 답변을 하게 되었다. 1남 1녀의 장녀인데, 모친은 오래전에 백혈병으로 사망하였고 수혜자는 모계 수직감염으로 보균자가 되었기 때문에 형제자매가 모두 B형 간염 보균자이며 남동생은 20대 초반부터 간수치가 매우 높아 지방간 소견이 있었으며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과 치료제 복용 전력이 있어.... 종합하자면 내가 바로 적임자입니다. 이런 종류의 답변을 했던 것 같다. 나름 나의 설명이 조리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혹시 장녀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기증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하는 질문이 돌아왔다. 


  그런 걸까? 내가 장녀로서의 책임감 때문에(이런 바보 같은 책임감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큰 일을 벌였을까?라는 순간의 생각보다 더 다급하게 다가왔던 것은 따로 있었다. K-장녀로서의 선택이었다고 결론지어진다면 나의 선택은 비자발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걸까? 나는 이 시험에서 탈락하는 걸까?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뒷받침 주장을 해 보았지만 갑자기 논지가 빈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육아휴직 중이라서 시간도 여유가 있고요(?), 동생은 대학교를 다시 가서 지금 1학년 1학기를 보내는 중인데 휴학이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상담의사는 나를 예진실에서 내보냈고 다시 대기실에서 한참 동안 진료를 기다리게 되었다.

  일종의 리허설을 겪어서인지 진료는 훨씬 수월했다. 이미 내 정신의 명정함과 알코올 비의존성이 확인되었는지(...)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이 가능하다면서 덧붙여 정신과 전문의는 이 수술이 미치게 될 정신적인 부작용과 이에 따른 치료에 대해 안내를 해 주었다. 이따금씩 우울감과 불면증을 겪는 환자들이 있는데 주저하지 말고 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을 요청하면 간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약물 치료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잠들기가 약간 힘든 편이었기 때문에 혹 했지만 아마도 나는 사전 문진표에 있는 "불면증이 있습니까?", "때때로 생각이 많아서 잠들기가 힘이 듭니까?"라는 질문 등에 모두 아니오라고 대답했던 것을 떠올리고 의례적인 대답만으로 진료를 마쳤다. 상담이 길어지는 통이 진료가 지연되어 나도 130분가량 늦게 진료를 보았는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도 남았을 시각, 내 뒤에는 무수한 환자들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전광판을 이글이글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 다 식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며 식사를 못하셔서 큰일이네요, 밥을 꼭 챙겨 드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이 시국에 대체 나는 왜 그런 오지랖과 여유를 부렸는지 다시 생각해보니 좀 우습다. 그 의사도 내 살가운 인사가 고마우면서도 좀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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