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들의 기억
실은 친구들이 먼저 "오, 결혼기념일 여행이구나."라고 이야기해줘서 알게 되었고, 12월 마지막 주에 3박 4일 제주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사실 큰아이의 어린이집 방학과 남편의 집중 휴무기간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방학과 휴무가 겹치는 이 경사에 들썩들썩 여행 준비를 한 것이 아니고 일주일 내내 돌림노래처럼 남자 네 명을 먹여낼 생각을 하니 매우 심란해져서 쫓기듯 구상한 여행이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결혼 4주년 기념으로 제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 돌도 채 되지 않은 큰애를 데리고 괌이며 싱가폴이며 부산이며 다녔던 내공을 밑천 삼아, 우리는 두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탈 용기를 내어보았다. 사실 애가 하나일 때도 아기 데리고 하는 여행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방법"이 매 순간 떠올랐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일은 거대한 생연어를 상하지 않게 살펴 모시는 고군분투와도 같았으므로. 설상가상으로 이번 여행에는 생연어에 그치지 않고 노인과 바다에나 등장할 법한 거대 청새치도 한 마리 추가된 셈이다. 이제 네 살이 된 큰 아이는 겨우 키가 1미터 남짓이라 산티아고 노인이 건져낸 5미터가 넘는 청새치에 비할 데는 아니지만 흡사 그 고집과 힘만은 고 청새치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이 문장을 쓰면서도 승모근이 뻐근하게 아파온다. 아이고 두야.)
아직 뚱뚱한 몸뚱이를 이겨낼 방법을 몰라 뒤집지도 못하는 둘째와 사방팔방 구르면서 자는 첫째를 따로 재우려니 방이 2개 있는 콘도가 제격이다 싶어 섭지코지에 있는 리조트를 3박 예약했다. 연말이라 꽤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는데 아주 최신식은 아니었지만 화장실이 두 개라서 편리했고,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카시트를 두 개나 설치해야 하니까 7인승 SUV를 빌렸고 긴 이동거리에 지쳐버린 아들들은 렌터카에서 곯아떨어졌다. 모처럼 조용한 뒷좌석에 우리 부부는 오붓한 드라이브를 즐기며 숙소에 도착했다.
1999년 나의 부모도 이런 설렘과 기대를 품고 결혼 10주년 여행을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로 떠났었더랬다. 10년 전 큰맘 먹고 묵었던 하얏트 호텔이라며 우리를 데려와서는 다짜고짜 우리는 신행으로나 겨우 와봤는데 어릴 때부터 부모 잘 만나 이렇게나 좋은 호텔에서 묵는 호강을 감사하라며 잔소리 폭격이 떨어진 것을 시작으로 이 여행은 그닥 좋지 못한 기억들을 많이도 남겼다.
이 여행의 가장 끔찍한 하이라이트는 바로 눈 덮인 한라산 등반이었는데 나의 부모는 반짝이는 눈으로 뒤덮인 설경을 아이들과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야심 차게 잡은 스케줄이었으나 실로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뒷산만 올라가더라도 고어텍스 등산복들을 차려입는 지금 같아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롱이 하프가 될 때까지 입느라 닳아빠진 얇은 모직 코트에(엄마가 큰맘 먹고 사온 브랜드 있는 옷이었다.), 작아진 지가 언젠데 어차피 올해만 버티면 된다며 사이즈를 키워주지 않은 싸구려 부츠 차림이었고 아빠는 설상가상으로 정장구두를 신고 눈 덮인 한라산을 올랐다. 지금 이야기하자니 이 모든 상황이 실로 충격적인데 그때는 이게 별 충격이랄 것도 없는 수준의 무식한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니 이후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는 H라인 교복 스커트 차림으로 성판악 코스를 올랐다. 사복이나 체육복은 일절 금지되었다. 사복을 입는 것은 학생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 옷을 사줄 여력이 안 되는 학부모들의 원성을 듣기 딱이기 때문에 피해 가야 할 선택지였다 치고, 그럼 튼튼하고 질긴 학생 신분에 딱 적합한 체육복은 왜 안되느냐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인 한라산에서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으로 네년들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보이는 것은 학교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당시 학생 주임 선생님의 기똥찬 판단이었다. 그때는 확실히 그런 정서(?)가 통용되는 시절이었다. 훗날 집 앞에서 등교하는 중고생들이 활동복이라는 것을 입은걸 보고 신기한 마음과 함께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했달까.
우리 가족도 이 무식한 시절엔 전혀 TPO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겨울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 그날 도합 하여 스무 번 즈음 넘어지고 눈물이 얼어붙어 고드름이 될 지경에 이르러서야 등반을 중단했다. 진달래밭 대피소는 백록담을 바로 목전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고지를 눈앞에 두고 하산하는 것이 아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으나 함께 동행했던 택시 기사 가이드 아저씨가 추위에 바들바들 떠는 아이들을 긍휼히 여겨 조기 하산을 시켜주었다. 그는 나에게 그날의 영웅이었는데 나의 부모는 그가 돈값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는 자식들에게 절대 등산 같은 것을 강요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지금은 좀 힘들어도 올라가면 좋아!라는 말은 아이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얼마나 폭력적인 발언인가.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견디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 상쾌한 성취감을 지금의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고통일 확률이 더 크다. 등산의 재미를 알 정도가 되려면 사는 게 항상 순탄한 호흡으로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가 되어야 한다. 그저 서너 시간의 인내로 얻어지는 성취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부단히 좌절해본 사람일수록 등산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린아이가 숲길을 걷는 가벼운 수준의 트래킹이 아닌, 본격적 의미의 등산을 좋아할 확률은 정말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지각 있는 부모이므로 큰애가 좋아할 법한 공룡을 잔뜩 구경할 수 있는 포레스트 사파리로, 실제 크기의 상어 박제 모형을 볼 수 있는 해양동물 박물관으로 렌터카를 달렸다. 길가에 다랑쉬 오름 입구라고 쓰인 버스 정류장을 보고는 남편이 우리 지난번에 갔던 곳이다, 너무 좋았지! 아이들 데리고 또 가자라고 말했을 때 나는 정녕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절대 안 된다고 대답했다. 나는 나의 편협한 시선으로 자식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희도 좋아하라는 강요를 하는 그런 부모가 아니다. 뭐 이렇게까지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의 부모에게 엄청난 유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무식한 시절이었고, 그 안에서 당신들은 우리를 최선을 다해 양육하셨을 것이므로.
그래서 지각 있는 부모인 내가 기획한 이 여행에서 과연 나의 아이는 행복했을까? 아직 먹고 자는 것이 일과의 전부인 둘째는 차치하고, 아직도 말이 트이질 않아 소통은 힘들고 생떼는 늘어버린 큰 아이에게 흡족한 여행이었을까? 여행 도중 드문드문 반짝이는 아이의 행복한 순간을 목격하긴 했으나 그것은 결코 내가 의도하거나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아이는 리조트에서 레스토랑까지 잠깐 올라가는 미니버스가 생전 처음 타보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라고 생각했는지 오고 가는 그 버스를 탈 때 가장 신이 나 보였고, 길가에 빈 미니버스가 서있으면 당장이라도 그걸 잡아 타고 싶어서 내 손을 뿌리치고 내달리기 바빴다. 야심 차게 데려갔던 공룡사파리는 더 총체적 난국이었는데 지나치게 크고 사실적인(어른의 눈으로 보기엔 조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리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거대한 공룡 모형들은 그저 아이에겐 공포였다.
꽤 먼길을 차를 몰고 온지라 실망스러운 것도 잠시, 구석에 작게 마련된 어린이 놀이터에서 (이 역시 어른의 눈으로 보기엔 낡고 허접하기 짝이 없었지만) 자석낚시놀이와 물기둥에 탁구공 집어넣는 놀이를 하며 어찌나 즐거워하던지. 다채로운 해양 동물의 박제를 마주하는 것보다(실제 제주 해협에서 잡힌 것들이라 하니 우리에겐 매우 흥미로로웠다.) 아이에게 즐거운 것은 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조그마한 오두막을 그저 아무 의미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행동이었고, 정작 박물관 구경은 몇 분 하지도 못해 한숨이 나왔지만 계단 몇 칸을 오르내리며 아빠와 술래잡기를 하느라 숨이 넘어가게 깔깔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워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나 역시도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최선인 부모 노릇을 하는데 도취되어 아이의 행복에 대해 돌아보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는 요즘 내가 큰맘 먹고 구입한 새 도서 전집을 즐겨 읽는데, 실은 아주 즐긴다기보다는 처음으로 큰돈을 들여 집에 사놓은 책 한 질이라 뽕(?)을 뽑아보고 싶은 엄마의 그저 속 보이는 전략으로 자꾸만 이 책은 아이 앞에 내밀어진다. 나는 귀찮아서 생전 읽어주지 않던 동화책을 애써 꾸민 밝고 상냥한 톤으로 반복해서 읽어주며 이걸 몇 권이나 몇 번이나 읽어야 내가 지불한 돈만큼의 가치를 하는 것일까 잠깐 생각하곤 했다.
어제부터 자꾸만 "원숭이는 요거트 먹고, 기린은 바나나 먹어!"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또 심드렁하게 으응 요거트는 네가 먹는게 요거트고 바나나는 원숭이가 먹는거지, 다시 이야기해봐 라며 아이의 문장을 교정해주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집스레 자꾸 원숭이가 요거트 먹는다고만 이야기했다. 그래 뭐, 원숭이가 요거트를 먹을 수도 있겠지 하고 마지못해 대꾸를 해 주고 나니 남편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추피가 동물원에 갔어요"라는 책을 들이민다. 내가 거금 들여 산 전집의 예순여섯 번째 편인데 아기 원숭이가 엄마 젖 대신 요거트를 먹는 장면과 기린이 바나나 잎을 먹는 장면(텍스트 상으로는 바나나를 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이 그려져 있었다. 글 모르는 아이에게 이리도 비싼 책을 사주었으면 부모가 같이 잘 읽어줘야지 그저 허영심에 친구들이 샀다는 책을 또 덜컥 사 왔다며 남편은 나의 대단한 육아를 실컷 비웃어주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주섬 주섬 책을 뒤적거릴 수밖에. 거금 들여 산 저 책 한 질은 무려 70여 권에 달한다. 책만 펼치면 눈이 침침하고 하품이 나오는 마당에, 저녁만 되면 목소리가 피곤에 푹푹 잠겨오는데 어느 세월에 저것을 다 구성진 억양을 넣어 읽어준단 말인가. 대략 신입생 시절 지원림 민법총칙을 펼쳐놓고 철야를 해야만 하는 그런 막막함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주 오래전, 무슨 맥락에선지 모르게 아주 자주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는데, 아마 그대들의 어머니들도 매우 자주 쓰시는 대사일 것이 틀림없는 이 대사는 바야흐로 이것이다.
너도 낳아서 키워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