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돈인데, 퇴직을 하고도 안정된 노후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았는지 의문이다.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안정된 자금인지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서 금액을 정할 수는 없지만, 여유롭다고 느낄 만큼 많은 돈을 모았을까? 치열하게 이어온 직장생활은 무엇을 남겼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규모는 작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므로 나름 전문직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이어진 직장생활은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을 느끼며 즐거움도 많다. 수습기간을 거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많은 일을 경험하며 열심히 했다.
수습기간을 마치고 처음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할 일이 주어졌을 때 두근거림과 뭉클했던 기분이 새삼 떠오른다. 정말 신나서 일했고 일에 푹 빠져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일해도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도, 건강한 체력과 열정으로 채워진 젊음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규모가 작았던 직장은 열정을 갈아서 일을 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뿌듯함으로 채워져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곤 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경험을 쌓아가는 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간혹, 열심히 했는데 경제적으로 보상이 충분하지 못할 때는 복지와 보상이 두둑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가 되기도 해서 잠시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작아지는 자신을 확인해야 했지만, 일할 때만큼은 즐거웠고 일이 주는 만족감이 컸기에 견딜 수 있었다.
많은 어려움을 딛고 이뤄 낸 직장생활은 경력이 쌓여가는 만큼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쌓여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이들은 자랐고 스스로 헤쳐나가며 서로가 적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받아들이고 이해해주었고 일에 온전하게 집중하여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노력하며 직장인으로 일하는 엄마로 모두에게 인정받게 되었을 때 면목없게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이 우선이 되어 살아온 세월 덕분에 내 몸을 스스로 챙기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였고, 안정된 생활이 이어질 즈음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열심히 살아온 대가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생각해보면 자초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까지 건강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 번에 일깨워준 일이기도 하다. 이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흔들릴 만큼 일상은 무너졌고 절망을 느껴야 했지만 포기할 수 없어서 이겨내기로 마음먹었고 결국 대장암을 극복해냈다. 그런데 시련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대장암의 상처를 겨우 이겨낼 즈음 다시 안면마비가 찾아왔고 오히려 대장암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안면마비는 모든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었지만 이 또한 이겨내리라 다짐하며 훗날 웃으며 얘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한 번 무너진 몸은 면역력이 떨어져 내가 생각하는 몸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도미노처럼 몸의 이곳저곳을 돌아가며 아픔을 선물하곤 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라도 남겨주듯이 무관심했던 몸은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었다. 열심히 일한자에게 주어진 어처구니없는 보상에 어이없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컸다.
세상에 일하는 엄마들이 모두 아픔을 선물 받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과 건강을 모두 챙기며 멋지게 사는 인생도 많음을 보고 듣는다. 저의 경우 여유로운 삶인데 일이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라기보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기 위해 일을 하다 보니 좋아졌고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했다. 아무리 보람된 일이라도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고 일한 만큼 보상을 기대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은 처참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돈은 벌었지만 건강을 잃었다. 이렇게 살아온 것이 맞는 일이었는지 헷갈린다. 자기만족을 위해 일하는 삶을 선택하였지만 과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는지 묻고 싶다. 만약,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누구도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쉼 없이 일하며 얻고자 했던 것은 경제적인 여유를 갖는 것이었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배움에 대한 즐거움은 덤이었다. 지나고 보니, 모든 희생과 맞바꿀 만큼 큰 것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일하지 않았다면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 궁금하지만, 지난 삶을 후회하지는 말아야겠다. 그 모든 것이 치열하게 살아온 소중한 순간이니까. 그 또한 내 삶의 흔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