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일상이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인데 뭔가 차분해지고 번잡함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은 일상에서 바쁨이 사라질 때 어느 순간 확인하게 되더라지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무던하게 지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아, 많은 사람이 정리가 되었구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무료하다 생각될 만큼 정리된 일상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이런 시간은 잠깐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북적이는 삶이 될 거라 기대하지만 이제는 정리된 삶이 현실이 됩니다.
필요에 의해 이어진 사람, 목적이 있어서 연결된 관계, 친하지 않은 사람이나 불편한 관계여도 끌고 가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끊어지고 정리가 되었습니다.
연결된 관계 속에서 벗어나면 큰일날줄 알았던 때도 있었는데요, 그중에는 분명 불편한 사람도 존재했습니다. 사회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유지되던 관계가 나이 들었다고 정리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나이 들고 보니 감정소비가 많은 관계에 목매지 않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나에게 도움이 안 되고 필요 없으니 정리하자, 그런 것도 아닙니다. 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상대가 있어야 맺고 끊기를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아마도, 정리되는 관계는 상대방도 나도 같은 마음이어서 그러할 것입니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아도 불편하거나 아쉽지 않은 사이가 된 것입니다.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젊은 시절과 다른 점은 특별하게 관계를 엮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설정을 위해 애쓰지도 않고 떠나는 인연에 애달아하지도 않습니다.
인연이 다 한 사람 중에는 변치 말고 오래도록 함께 하자 약속도 했을 텐데, 빛바랜 다짐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고마운 인연도 지금은 잊히기도 하고, 한때 관계유지가 필요했지만 많이 힘들게 했던 사람 또한 지나간 인연으로 기억되겠지요.
나이 들수록 친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새로운 인연도 좋지만 지금까지 정리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실속 있는 인간관계 유지 비결이 아닐까요?
스며들지 못해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만 관계라면, 만나지 못한다 해도 아쉽거나 미련이 남지도 않겠지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인간관계, 젊은 날보다 나이 드니 더 분명해지는 거 같습니다. 나이 들수록 좁아지는 관계 속에서 변함없이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오래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겠지요?
나이 드니 서두르지 않아도, 마음 쓰며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안달복달하며 마음 써야 했던 인간관계도 그런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