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건지 알 수 없지만, 무슨 일이든 다 해줘야 할 거 같은 생각을 하며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결하면서 보낸 시간이 꽤 길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안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언제나 해결사처럼 행동하곤 했다.
그런 시간이 모여 세월이 흐르고 보니, 어느 순간 그런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기고 갈수록 힘든 시간이 많아지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그나마 견딜 힘이 있었다. 순간순간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괜찮아져서 또다시 그런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집안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별다르지 않았다. 친구나 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어지간하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이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도움이 필요할 때 거절하면 상대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일까? 가끔, 난 못하겠다고 안 되겠다고 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기억이 또렷하다. 물론, 어떤 일이든 나서서 돕게 되는 경우 잘 해결되었을 때는 상대도 좋고 나도 좋고, 서로 힘이 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좋은 의도로 함께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마음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는 것도 기억한다.
나이를 먹으니, 생각이 단순 해진 것일까? 아니면 행동이 과감해졌을까? 그것도 아니면 능력이 떨어진 것일까? 어떤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젊은 날처럼 남 일에 힘을 빼는 일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냥 줄어든 것이 아니라 거절을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도와달라는 부탁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나이 먹은 영향이 큰 거 같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거절을 못해 떠안은 일도 많았던 젊은 날에 비하면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못하겠는데~ 미안해."
"그 일은 하면 안 될 거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보세요."
"그런 일을 왜 제가 해야 할까요?"
"그 일은 안 되겠어요."
어렵고 불편한 마음을 안겨주던 일이 직장에서, 가정에서, 지인과의 관계에서도 거절이 쉽게 되더라. 거절한다고 관계가 단절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거절하기 힘들었을까? 나보다 상대방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컸던 것은 아니었을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과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오지랖스런 마음이 앞섰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거절이 쉬워졌다고 상대방을 나 몰라라 하며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젊은 시절과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만큼 행동하는 나로 변한 것일 게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여전히 마음으로 응원하고 잘 해결될 수 있기를 마음을 담아 응원할 것이다.
나이 들어 거절이 쉬워진 것은, 어쩌면 나를 먼저 챙기는 마음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싶다. 이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