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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 Nov 16. 2022

인도에서 생긴 일(5)

자마 마스지드에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오늘은 홀로 뉴 델리 인근 명소들을 둘러볼 생각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의 마지막 걸작이라 불리는 자마 마스지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지근거리에 있는 찬드니 촉에도 가야 한다. 찬드니 촉은 델리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시장통이자 어떤 이들에겐 최악의 장소라 여겨질 만큼 인도의 색이 뚜렷한 곳이란다. 가기 전부터 설렜다.


 옷은 뭘 입고 나가야 할까. 인도는 동양 여자들의 노출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분위기다. 서양 여자들이 민소매에 핫팬츠를 입어도 별 시선을 주지 않는데, 동양 여자들은 걸어가는 것만 보아도 옆에서 달려와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맨살이 자신들의 기준치보다 조금 더 드러난 것 같다 생각되면 대놓고 뭐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힌디어를 쓰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어서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맨살에 대고 삿대질을 하는 것을 보면 대충 감이 온다. 


 9월 달이었지만, 인도의 9월은 한국의 8월보다 덥다. 그리고 난 생각보다 더위를 많이 탄다. 갖고 있는 옷은 올 때 입었던 것을 포함해 티 세 개. 바지 둘. 당연히 반바지는 안 될 테니 긴 바지로 골라 입고, 반팔 티 세 개중 달라붙지 않으면서도 소매가 가장 긴 옷을 골랐다. 카메라도 확인해보고 현금은 여기저기 주머니를 나눠 깊숙이 집어넣었다. 여권은 옷 속에 찬 복대 안에 넣어야 한다. 긴 머리를 하늘 높이 끌어올려 둘둘 말아 고무줄로 질끈 감고 숙소를 나섰다.


 그래도 며칠 됐다고 어렵지 않게 릭샤를 잡았다. 가는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혼자서 온전히 숙소를 벗어나 관광을 하다니. 이제 인도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다음엔 사람이 직접 끌어주는 사이클 릭샤를 타봐야겠다. 그전에 다이어트를 좀 해야 할 것 같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자마 마스지드 앞에 다다랐다. 책에서만 보고 온 터라 크기가 별로 실감이 안 났는데 막상 마주하니 엄청난 규모에 입이 벌어졌다. 미리 공부해간 대로 신발을 벗고 모스크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이 샤 자한의 최후 걸작이라니. 인도 여행을 결심하기 전부터 타지마할이나 샤 자한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자마 마스지드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순간이었다. 샤 자한은 무굴 제국 5대 황제로 가장 번성했던 시대를 이끈 왕이다. 그때만 해도 인도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경제대국이었다 전해진다. 그래서일까. 그가 남긴 건축물은 거대하고 화려하다. 자마 마스지드도 그랬다. 인도 이슬람 사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단다.


 자마 마스지드는 이슬람 사원답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하얀색 터번을 두른 백발의 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를 주변으로 청년 무리가 빙 둘러앉아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분명 눈앞에서 목격하는 광경이었지만 그 장면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어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볼 법한 사진 작품 같았다. 나는 망설임 틈도 없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어딘가에서 또 셔터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대각선으로 한 남자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나와 같은 장면을 찍고 있었다. 주언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남자는 사진을 만족할 만큼 찍었는지 뷰파인더에서 시선을 거두고 모니터로 사진을 확인한다. 그리고 번뜩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주언이라는 이름의 남자의 앵글 안에는 내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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