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글 Nov 17. 2022

인도에서 생긴 일(6)

찬드니 촉을 거닐며

 찬드니 촉으로 가는 길, 내 옆에는 주언이라는 남자가 함께 걷고 있었다. 혼자가 아닌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도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된다. 특히 모국 사람을 만나면 세상 둘도 없는 단짝이 될 수 있다. 그러하다 보니 자마 마스지드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것이 더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서로 속마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예상외로 둘 다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자연스레 다음 목적지의 동행이 되었다. 마침 남자도 찬드니 촉이 궁금하다고 했다.


 찬드니 촉까지는 가까운 거리였기에 릭샤가 필요 없었다. 물론 릭샤를 탔더라도 걷는 게 더 빠를 만큼 복잡해서 탈 엄두도 안 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소와 개와 사람이 엉킨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비포장도로인 탓에 이따금씩 물웅덩이를 갑작스레 마주하기도 했다. 그럼 자연스레 보폭을 넓게 점프를 뛰며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되죠?"


 남자가 먼저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야 물을 수 있지. 조심스러운 남자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름을 말해주고 내친김에 나이까지 말했다.


 "어? 저도요. 동갑이네요. 반갑네요."


 남자와 나는 나이가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너 나할 것 없이 서로 고향이나 사는 곳 등을 꺼내놨지만 나이 외에는 겹치는 것이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깨준 것은 길거리 바나나 장수였다.


 "맛있어. 이거 사. 예쁜 누나. 이거 사."


 어디서 한국말을 배운 걸까. 웃음이 터졌다. 예쁘다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누나일 것 같지는 않았다. 약간 기분이 상해서 살까 말까 망설였다가 넉살 좋게 웃는 모습에 무장해제가 되어 바나나 한송이를 냉큼 구입했다. 가격도 조금 비싼 것 같았지만 대충 넘어갈 정도의 바가지였기에 모른 척 돈을 건넸다. 바나나 장수는 세상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바스락거리는 봉투에 바나나를 곱게도 담아줬다.


 "이거 이따 나눠먹어요. 숙소 가서 반띵."

 "제가 들고 갈게요. 주세요."


 그깟 바나나를 서로 들겠다고 약간의 실랑이를 하다가  이기는  넘겨줬다. 그리고 다시  의미 없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거리를 거닐었다. 사실 거닐었다는 표현보다는 떠밀린 것에 가깝다. 현지인들과 여행객, 장사꾼, 릭샤와 짐승들이 뒤엉켜 정신이 없었다. 바닥에는 다양한 오물들이 있었기에 피하기 급급했다. 마치 현실판 플랫폼 게임 같았다. 슈퍼마리오빙의되어  공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애물을 피하느라 구경할 정신도 없었다.


 복잡한 거리를 빠져나와 조금은 한산하고 넓은 도로에 다다랐다. 가게들도  정비된 길거리였다. 남자와 나는 그제야 숨을 렸다. 그와 동시에 작은 상점을 발견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것처럼  콜라를 하나씩 집어 었다. 계산이 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진짜 정신없었다. 그죠? 적응하려 해도 적응이 쉽지 않은 곳이네요."


 남자의 말에 무한 동조의 뜻을 담아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반쯤 남은 콜라병을 들고 다시 걷기 시작할 때쯤 서너 발자국 앞에서 구걸하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깡마른 몸으로 바닥에 위태롭게 앉아 두 손을 구부정하게 뻗으며,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미처 주머니에 넣지 못한 거스름돈을 노인에게 건넸다. 남자도 나와 거의 동시에 노인의 손 위에 콜라를 사고 남은 잔돈을 올려놓았다.


 노인은 두 손위에 놓인 동전 몇 개를 훑어봤다. 순간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너무 적게 주어서 기분이 상한 걸까. 생각 없이 건넨 돈이어서 미처 액수까지 계산하지 못했는데, 동전을 보니 내가 들고 있는 콜라 한 병값도 안될 것 같았다. 아차 싶은 마음에 괜히 해코지를 하진 않을까 싶어 노인의 심기를 달랠 요량으로 서둘러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때였다. 노인은 우리를 향해 두 손 모아 인사를 하더니, 우리가 건넨 동전에 입을 맞추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렸다.


 남자와 나는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행색만으로 너무 큰 오해를 했다. 너무 잔혹한 편견이었다. 남자도 노인의 눈빛을 보고 움찔했다고 털어놨다. 우리의 화두는 자연스레 종교로 바뀌었다. 남자도 나도 무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신을 믿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생각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부터 남자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 졌다.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이전 05화 인도에서 생긴 일(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