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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 Nov 12. 2022

인도에서 생긴 일(3)

저녁 먹을래요?

 인도에서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전날 새벽 2시에 겨우 잠들었지만 몇 시간 채 자지 못하고 깨어났다. 약속이 있기도 했고, 불안한 마음에 깊게 잠들지 못한 탓이다.


 가만히 누워 천장에 달린 커다란 팬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윙윙하고 돌 때마다 미적지근한 바람이 온 방을 맴돌았다.


 조금만 더 누워있자는 생각으로 로밍도 안된 휴대폰을 한참이나 뒤적였다. 볼거리라곤 지난 문자함과 사진첩이 전부였지만, 왠지 마음이 평온해졌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이곳은 순간온수기가 없는 호텔로 물을 데워서 갖다 달라고 말해야 한다. 한낮 땡볕에 있다 돌아왔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잠시 고민이 됐다. 하지만 전화하는 것도 귀찮고, 낯선 사람이 내 방에 올라오는 것도 싫어서 찬물로 대충 샤워를 했다.


 어제  남자 약속한 시간은 오전 9.

다시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방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있기 싫어, 호텔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입맛이 없어 다른 건 주문하지 않고, 콜라 한 병을 시켰다. 빨대로 쭉쭉 원샷을 하고 있는데, 누가 내 등을 톡톡 건드렸다.


 콜록콜록.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어제 악몽이 떠올라 기침을 쏟아냈다.


"아, 죄송해요. 일찍 나오셨네요. 저도 시간 남아서 올라왔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였다. 번쩍번쩍한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에는 여행책자를 한쪽 어깨에는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아, 네 콜록콜로안녕하콜록세요."


 그 남자가 사이다를 하나 시켜서 마실 때까지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다 목적지로 향했다. 후마윤의 무덤에 가잔다. 떠나오기 전 한번 가볼까 했던 장소였다.


 이동수단은 오토릭샤를 선택했다.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작은 택시로 지붕이 쳐져있고, 뒷자리에 두 명 정도 앉을 수 있다. 인도에서는 자동차보다 흔하고 지하철보다 자주 이용되는 이동수단이다. 미터기가 있긴 하지만 무용지물이다. 대부분 흥정을 해서 요금을 정해놓고 출발한다. 하우머치? 투 익스펜시브! 만 연발했지만, 릭샤꾼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한국에 오기 전 알아두었던 힌디어 몇 마디 중 하나였다.


"깜까로~~~ 깜까로나"


 깎아줭~~깎아주세용~~ 과 같은 의미다.

인도 배낭여행객들에겐 생존 언어이자 필수 언어로 통한다. 릭샤꾼은 피식 웃더니 원래 말했던 가격보다 반이나 깎아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마저도 약간 바가지를 쓴 것이었다. 망할 놈.


 그리고  명당 가격인지, 일행 통틀어 가격인지도 흥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착해서 원래 말했던 가격을 인원수대로 받는다고 했다며 박박 우겨댄다. 이미 그러한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이치 프라이스냐고  번이나 되물었다. 대답하는  망설이며 우물쭈물하던 릭샤꾼은 그렇다고 대답했고  순간  남자와  입에서는 동시에 깜까로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상황이 너무 웃겼지만, 왠지 크게 웃기가 머쓱해져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손바닥으로 부여잡고 릭샤에 올랐다.


 이윽고 후마윤의 무덤에 도착했다. 인도 최초의 정원식 무덤이라는  말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냥 보기에 독특하고 멋진 것은 알겠으나, 내용을 모르니 감흥이 있을 리가.


 남자는 몇 번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더니 자연스레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공부를 좀 하고 왔거든요. 여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래요."


  남자의 친절한 설명이 더해지니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한참이나 골똘히 둘러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국적인 건축물도 멋스러웠고 정원식으로 꾸며진 경관도 묘지라곤 생각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넓디넓은 공간을 낯선 사람과 함께 걷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따금 살랑이는 더운 바람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후마윤의 무덤을 빠져나와 우리는 번화하다는 칸 마켓으로 향했다. 역시 깜까로를 외치며, 무사히 오토릭샤를 잡았고 그렇게 칸 마켓에 도착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각자 메뉴와 함께 나는 콜라를 그 남자는 사이다를 시켰다.



 남자는 과묵했다. 주문을 할 때나, 어딘가를 이동해야 할 때를 빼곤 그다지 말이 많지 않았다. 나도 굳이 대화를 이어가진 않았다. 그냥 그 상태가 편안했기 때문이다. 말없이 각자 그릇을 비워내고,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본 후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다시 찬물로 대충 샤워를 했다. 속옷만 입고 침대 위에 널브러져 책을 읽었다. 너무 오래 돌아다녔던 탓일까.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되어 선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들리는 노크 소리에 황급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보니, 문 앞에 콜라 하나와 메모가 놓여 있었다.


'콜라 좋아하시나 봐요. 좀 쉬시다가 8시쯤 같이 저녁 먹을래요? 옥상 레스토랑에서 8시에 만나요. 힘드시면 안 오셔도 괜찮아요.'


 방금 산듯 차가운 콜라와 병에 서린 물에 달라붙은 메모지 하나. 문을 닫자마자 거울을 꺼내 들었다. 순간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착각할뻔했다. 아무리 거울을 봐도, 눈코입 뚫린 오징어만 보일 뿐이었다. 갑자기 꼬질꼬질한 모습이 신경 쓰여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 와중에 뱃속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시계를 보니 오후 7시.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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