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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Oct 22. 2021

요가 친구가 생겼습니다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요가원을 옮겼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백수가 되면서 조금 더 자주 수련을 하고 싶었고, 평일 오전 수련이 다양하게 있는 요가원을 다니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도 앱을 켜고 집 주변 요가원들을 둘러보다 한 군데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 회사 동료가 추천한 적이 있는 요가원이었다. 게다가 남자도 다닐 수 있다고! 나는 그곳에서 체험 수련을 해보고 나서, 요가원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이건 나로서는 꽤 커다란 결심이다. 요가원을 옮긴다는 건, '나 혼자' 요가원에 다닌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회사에 다니는 아내는 평일 오전 수련을 갈 수 없다 보니, 이전의 요가원에서 주말 수련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는 더 이상 '아내와 함께 요가하는 남자'가 아니라 온전히 '요가하는 남자'가 된 것이다.


  새로운 요가원,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마음가짐.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나 혼자 남자라는 것. 어쩌다 한 번씩 다른 남자 회원님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수련에서 남자는 늘 나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나도 이제 요가원에서 '청일점'이 되는 것에 면역력이 생겼나 보다. 나는 새로운 요가원에 금세 적응해 갔다. 새로운 선생님들도 좋았고,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이상했다. 모든 게 마음에 드는데, 이 해소되지 않는 아쉬운 기분은 뭐지. 요가 초보인 내가 감히 짚어낼 수 없는 단점이 새로운 요가원에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요가원을 옮기는 데에도 향수병 같은 게 있는 건가?


  나는 곧 그 아쉬움의 정체를 밝혀냈다. 수련을 마치고 나서, 오늘의 요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진 것. 지금까지 그 대상은 당연히 아내였다. 아내와 함께 요가원에 다닐 때는, 수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항상 수련에서 느꼈던 것들에 대해 조잘조잘 수다를 떨곤 했다. 오늘 그 자세 할 때 아파 죽는 줄 알았잖아, 신기하게 나 그 자세 갑자기 되더라, 아까 그 아로마 향 너무 좋았지, 이런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 나보다 훨씬 오래 수련을 해온 아내에게 물어볼 것도 많았다. 여기선 이렇게 힘을 쓰는 거야? 이건 되는데 왜 비슷한 저건 안 되는 거지? 여기가 아픈 게 정상인 거야? 물론, 요가원을 옮긴 지금도 아내와 요가 이야기를 자주 하지만, 예전처럼 같은 수련을 하고 나서 대화하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요가의 기쁨과 슬픔과 아픔에 대해 이야기할 친구가 사라졌으니, 아쉬울 수밖에.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가 된 녀석들이니까 벌써 20년 가까이 친구로 지낸, 흔히 말하는 X알 친구들이다. 술기운이 오르면서 각자 요즘 자신의 근황을 신나게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근황의 팔 할을 차지하는 건 요즘 각자 하고 있는 운동 이야기다. 한 녀석은 최근에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암, 이제 30대 중반이니까 골프를 시작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적 수순이다. 얼마 전에 머리를 올렸느니, 어디 골프장이 예약하기 쉽다느니, 그런 이야기들이 잘 맞은 골프공처럼 높이 솟아올랐다. 또 다른 녀석은 요즘 테니스에 푹 빠져 있다. 그렇지, 테니스도 요즘 핫한 운동이지. 서브가 어쩌고, 발리가 어쩌고, 어느 동호회의 어느 누가 어쩌고, 그런 이야기들이 테니스공처럼 테이블 위를 신나게 오갔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친구 하나가 물었다. 너는 요즘 무슨 운동해? 나? 나 요즘 요가하잖아. 이어지는 반응이란 이런 것이다.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대체 요가를 왜 하는 거야? 와이프 때문에?"

  아닌데, 진짜로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골프와 테니스 이야기에는 아무런 토가 달리지 않았지만, 나의 요가 이야기에는 계속해서 의문과 질문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요가가 운동이 돼? 요가원에 남자가 있어? 너는 좀 남자다운 운동을 해야 한다니까, 격투기나 복싱 같은 거. 나는 남자에게 요가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입이 닳도록 설명했으나 이 놈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결국 요가를 하는 이유를 '마음의 평화'로 결론 내리면서 대화를 매듭지었다. 그제야 친구들은 어렵사리 수긍했다. 그래, 요가를 하면 명상은 많이 하겠네. 요가가 무슨 운동이냐, 너도 빨리 골프나 같이 치자.


  술자리에서 오간 실없는 대화지만 나는 약간의 외로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운동들이 이다지도 이유와 설명이 필요했었던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웠던 적이 있었나.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이 기분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나를 충분히 이해했다. 아내도 사실 친구들과 운동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내가 같이 요가를 하게 되면서, 요가 이야기를 할 사람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나는 생각했다. 요가는 혼자 하는 운동이라지만, 달리기를 할 때도 '러닝 메이트'가 있으면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요가에도 그런 친구가 있어야 하는구나.


  그리고 얼마 뒤, 요가원에 앉아 수련을 준비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ㅇㅇ님! 잘 지냈어요? 드디어 만나네!"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보니, 나에게 요가원을 추천해줬던 바로 그 회사 동료였다. 나는 주로 평일 오전 수련에 참석하다 보니 그동안 같은 요가원을 다니면서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것.

  "와, 여기서 만나니까 더 반갑다! 수련 끝나고 커피나 한 잔 할까요?!"


  회사를 그만두기 전부터 매번 '밥 한 번 먹어요'를 반복하다 결국은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퇴사를 해버렸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우리는 수련을 마치고 함께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동안 못했던 회사 이야기,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다, 화제는 요가 이야기로 흘러갔다. '요가하니까 어때요?'로 시작된 이야기는 각자의 '요가 간증'으로 이어졌다. 저는 스트레스 때문에 숨이 잘 안 쉬어져서 요가를 시작했어요, 정말 숨 쉬려고 요가한 거예요. 저는 사무실에서 맨날 어깨가 치솟아 있었더라고요, 요가를 하고 나서야 그게 긴장해서 그런 거란 걸 알았어요. 우리는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다음에 또 수련에서 만나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회사 동료의 SNS 계정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요가 매트를 어깨에 메고, 쪼리를 신고 해맑게 걷고 있는 나의 뒷모습. 사진엔 내 계정이 태그 되었다는 표시와 함께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요가 친구 생겼다!!!'


  나에겐 두 명의 요가 친구가 있는 셈. 가장 가까운 친구인 아내. 그리고 새로운 요가원의 요가 친구. 물론 여전히 요가는 나 혼자 한다. 수련 공간엔 대부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여전히 남자는 나뿐이다. 하지만 나의 요가를 응원해주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나의 외로움은 얼마간 사라진다. 작은 욕심을 가져보자면, 내 곁의 더 많은 사람들이 요가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과 더 많은 요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 몸이 어땠는지, 너의 마음은 또 어땠는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사뭇 기다려진다. 그런 사람이 생기면 나도 SNS에 이렇게 외쳐봐야지. 나도 요가 친구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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