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비 오는 수요일 아침. 요가원은 한산했다. 그럴 만도 하지. 우선 비가 오면 어디든 나가기 싫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한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이나 화요일까진 그나마 운동에 대한 의지가 불타지만, 모든 게 좀 귀찮아지기 시작하는 수요일. 게다가 아침 수련. 매트 위에 앉아 수련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드르륵' 미닫이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들어온 사람은, 바로 선생님. 정말 나 혼자야?! 이쯤 되면 눈치 없이 수련에 나온 나 때문에 선생님이 쉬지 못하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마저 밀려온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반기며 말했다. "여기 가운데로 오세요. 오늘은 일대일 수업이네요!"
정말 저 혼자라도 수련을 하는 건가요?! 가끔 인스타그램 광고에 뜨던 프라이빗 요가 레슨, 회당 오육 만원씩 한다는 비싼 레슨을 어쩌다 꽁으로 받게 된 것이다. 귀찮음을 이기고 꿋꿋이 요가원에 나와 매트 위에 앉은 나에게 결국 이런 선물이 주어진다니 참으로 기쁘기는커녕, 긴장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일대일이라 하면...? 선생님이 내 동작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 지금까지는 수련을 하면서 힘들면 쉬엄쉬엄, 자세가 잘 안 나와도 얼렁뚱땅, 몸이 안 따라주면 힘으로 우당탕탕 넘겨왔는데. 이건 마치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선생님 앞에 나가 실기 테스트에 임하는 기분이었다. 평소에 잘하던 것도 꼭 실패하고 마는 그 긴장감 넘치는 시간. 다들 알려나 모르겠다. 나의 떨리는 마음은 관심도 없는지 선생님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수련을 시작했다.
"바닥에 배를 대고 누운 상태에서, 손으로 얼굴 옆을 짚고 상체를 들어 올리며, '부장가사나', 코브라 자세."
'우따나사나', '차투랑가단다아사나', 그리고 '부장가사나'로 이어지는 플로우. 가장 기본이 되는 '수리야나마스카라A' 세트의 시작이다. 요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나도 족히 수백 번을 해봤을 동작들. 아직은 이 일대일 테스트에서 실수는 없었겠지. 나는 평소처럼 동작을 이어갔다. 그 순간. 선생님이 눈동자가 매섭게 빛났다.
"음, 잠깐만요. 상체를 내리고 누운 상태로 다시 시작해볼게요."
뭐라고? 다시?! 평범한 코브라 자세인데, 뭘 잘못한 거지...? 선생님은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온몸에 힘을 빼고 누운 상태에서 시작할 거예요. 여기서 등에만 힘을 줘서 아주 조금이라도 올라와 보세요. 허리 말고 등이에요. 견갑골 바로 아래 여기요. 할 수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면, 그 힘을 유지한 채로 이제 윗 허리에 힘을 채워 조금 더 올라와 볼게요. 척추에 힘이 찼다면, 그다음엔 손으로 가볍게 땅을 밀어내고, 그다음은 엉덩이를 조이는 힘을, 마지막으로 허벅지와 발등에 힘을 줘 땅을 누르세요.' 잠깐, 결국 등에서 시작해 온 몸을 거쳐 발등까지 힘을...? 선생님, 코브라 자세가가 이렇게 힘든 거였나요?!
불현듯 내 머릿속엔 헬스장 기구마다 붙어있는 '운동 부위' 그림이 떠올랐다. 생물시간에 봄직한 근육 조직이 다 드러난 인체도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빨간색 동그라미로 운동하게 될 부위를 칠해놓은, 다들 한 번쯤은 보았을 그 그림 말이다. 지금 코브라 자세를 하고 있는 나의 몸을 그 그림으로 표현하려면, 아마도 검은 선으로 그려진 그 인체 위에 빨간색 페인트통 아이콘을 눌러 '채우기'를 하면 참 쉽겠다. 이 간단한 동작을 하는데도 온 몸을 다 써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요가 자세가 그렇다. 특정한 하나의 부위가 아닌, 몸 전체를 조금씩 다 써야 하는 자세들. 아무래도 한 두 개의 빨간 동그라미로 칠해진 '운동 부위' 그림은 요가원에선 써먹을 데가 없겠다.
언젠가 헬스장에 등록을 하러 갔을 때였다. 등록신청서에는 '운동 목적'을 고르는 칸이 있었는데, 항목 중에 생경한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바디 쉐이핑'이라는 단어. 요즘은 유튜브에 넘쳐나는 홈트 콘텐츠에서 이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지만, 그때 난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몸을 깎는다고...? 트레이너와 상담을 하며 들어보니 단어 그대로 몸을 '빚어내는' 것이 맞았다. 등록신청서의 뒷 장에는 아예 크게 몸이 그려져 있고, 키우고 싶은 부위와 빼고 싶은 부위에 각각 체크하라고 말했다. 어휴 뭘 이런 걸 다, 싶으면서도 난 또 헛된 희망과 함께 몇 군데를 읊었고, 트레이너는 아무렇지 않게 볼펜을 들어 종이 속 어깨와 가슴에 '플러스' 표시를, 배에는 '마이너스' 표시를 쓱쓱 그어 놓았다.
바디 쉐이핑이라고 부르건, '몸짱'이라고 부르건, 사실 그 안에 숨겨진 욕망은 같다. 보다 멋진 몸을 가지고 싶은 것. 물론 나에게도 그런 욕망이 있다. 그래서 여름이 다가오면 급하게 헬스장에 등록해 열심히 몸을 빚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넓은 어깨, 커다란 가슴, 선명한 복근, 그런 몸 말이다. 아쉽게도 요가에서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요가원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칠해진 인체도도, 플러스 마이너스 기호도 없으니까. 대신 난 요가를 통해 '자연스러운 몸'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오랜 시간 앉아만 있으면서,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하면서, 몇 군데의 근육만 키우면서, 서서히 부자연스러워졌던 내 몸이 다시 자연스러워지기를 기대한다. 어딘가 아픔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 구석구석 고루 균형 잡힌 몸, 가장 나다운 몸. 어쩌면 그것은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내가 가지고 태어난 '제로' 상태의 몸을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
"오늘 아주 잘했어요. 힘쓰는 게 많이 좋아졌어요."
코브라 자세의 고비를 겨우 넘긴 뒤로도 선생님은 매의 눈으로 내 자세를 바로 잡아주었고, 고작 몇 가지 자세를 하는 사이 수련 시간이 다 흘렀다. 마침내 긴장감 넘치는 일대일 수련이 끝이 났다. '사바나사', 송장 자세에 이르러 드디어 매트 위에 누우니, 부장가사나를 하며 잔뜩 조여낸 견갑골 아래쪽과 갈비뼈의 바깥쪽에서 작은 뻐근함이 느껴졌다. 아마 오늘 수련을 마치고서도 거울에 비친 내 몸은 그대로일 게 틀림없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근육이 짠 하고 나타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만은 분명 느낄 수 있다. 내 몸은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