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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Oct 22. 2021

어느 운동 중독자의 운동 부족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요가에 대한 책을 읽다가 놀라운 내용을 발견했다. 인도의 요가 구루들을 소개하는 챕터였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빈야사 요가'를 정립한 사람은 '티루마라이 크리슈나마차리야(1888-1989)'라고 한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첫 번째로 사람 이름이 어쩌면 저렇게 길까 하는 것과, 진짜 놀라운 두 번째는 이름 옆에 적힌 숫자였다. 1888년에 태어나서 1989년에 돌아가셨다고...? 어디 한 번 뺄셈을 해보면... 무려 102세?! 서둘러 다음 구루의 이름을 찾았다. '아쉬탕가 요가'를 창시한 '파타비 조이스(1915-2009)'씨는 95세를 살았고, '아헹가 요가'를 정립한 'BKS 아헹가(1918-2014)'씨는 97세. '시바난다 요가'의 창시자 '스와미 시바난다(1887-1963)'씨 역시 그 옛날 옛적에 78세를 살았다. 여기서 또 내 특기인 성급한 결론을 내려 보자면, 요가를 하면 장수를 한다는 것! 나는 이 놀라운 사실을 어서 아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소파에 누워있는 아내를 일으켜 세워 외쳤다. 이것 좀 봐! 요가를 하면 오래 사나 봐!!! 아내는 이건 또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답했다.

  "당연하지. 그 사람들은 평생 동안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으니까."


  아내는 요가의 이 오래된 비밀을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놀라운 장수의 비결을! 내가 요가를 시작하기 직전,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연초를 맞아 새해 계획을 세우던 중 아내가 말했다.

  "난 오빠가 요가했으면 좋겠어."

  "나? 나 운동 많이 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요가까지 해."

  "꾸준히 하는 건 하나도 없잖아!"

  아내의 말이 맞다. 일 년 내내 등록만 되어 있는 피트니스센터도, 맨날 새 운동화를 사고 나서 한 두 번 뛰고 마는 러닝도, 어쩌다 날씨 좋은 날 한 번씩 가는 등산도, 다 내가 한다는 '운동'들이지만 그중에 매일같이 꾸준히 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건강 상태에 있어서도 빨간불 까지는 아니지만 노란불 정도는 이미 켜졌다. 몇 해 전부터 건강검진 결과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나오더니, 지난해에는 '고지혈증' 경고가 떴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고지혈증의 원인을 묻자, '비만'과 '운동 부족'이란다. 최근 뱃살이 좀 찌기는 했지만, 내가 비만? 거기다 운동 부족?! 운동을 이렇게나 많이 하는데. 헬스장도 (띄엄띄엄) 다니고, 러닝도 (가끔) 하고, 등산도 (간혹) 하는데, 운동 중독이면 모를까 운동 부족이라니. 충격에 빠진 나에게 아내가 친절한 해석을 덧붙여줬다.

  "내가 보기엔, 오빠한테 필요한 건 '규칙적인 운동'이야."


  아내의 운동은 요가 하나 뿐이다. 대신 요가를 매일 한다. 요가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집에서 매트를 펴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수련을 한다. 컨디션이 아주 좋지 않은 며칠을 빼면, 정말로 일 년 내내, 매일 요가를 한다. 그렇게 벌써 8년째. 당연하게도 아내의 요가 실력은 수준급이다. 물론 나는 아내의 요가 수준이 어떤지 알 길이 없지만, 처음 가는 요가원마다 수련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이 다가와 아내에게 이렇게 묻는걸 내 눈과 귀로 확인하고 있다. '와, 너무 잘하시는데요?! 어디서 수련하셨어요? 지도자 과정 받으신 적 있으세요?' 하지만 정작 아내는 지도자 과정이나 '요가의 고수' 따위가 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요가를 하는 그 시간이 좋다고 한다. 이제는 요가를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몸이 너무나 찌뿌둥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아내에게 요가는 하루의 당연한 일과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걸 두고 '규칙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나 보다. 나의 러닝과 등산에는 붙일 수 없는 그 수식어, '규칙적인' 혹은 '꾸준한'. 그래서 우리 부부가 새해 계획을 세우며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자고 했을 때, 결국 요가를 선택한 건 그 꾸준함 때문이었다. 아내와 같이 요가를 하면 나도 조금 더 자주, 더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나도 요가가 좋아졌다. 요가원에 가는 것, 혹은 집에서 매트를 펴고 그 위에 오르는 것은 여전히 조금 귀찮지만, 수련을 할 때와 수련을 마치고 나서 느끼는 '기분 좋음'의 상태를 이제 알게 되었다. 이제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는 요가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운동을 할까 말까 했던 이전의 나에 비하면 꽤 큰 발전이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게 된 나는 규칙적이고 절제된 삶을 통해 요가의 구루들처럼 오래오래, 한 120세까지 살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내 앞에 펼쳐지는 걸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전보다 조금은 더 건강해진 것 같다. 사실 난 '오래오래' 사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건강하게' 쪽은 매우 중요하다. 그냥 '오래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적당히 사는 것이 나의 희망사항이다. 병실에 누워서 100세까지 살 바에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일상을 누리며 60세까지만 사는 게 훨씬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내가 꿈꾸는 노년이란 이렇다. 인생 3막이니, 4막이니 하는 달라진 인생을 사는 대신, 지금과 다르지 않은 노년을 사는 것. 그때도 내 능력을 발휘해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었으면, 아내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도 건강한 몸으로 아내와 함께 꾸준히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 운동이 '요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꾸준히 요가를 한다면, 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매트 위에서 함께 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나의 요가는 서투르다. 다운독을 할 때 여전히 뒤꿈치는 땅에 닿지 않는다. 까마귀 자세를 하다가 여전히 콧등부터 땅으로 떨어지곤 한다. 선생님의 터치나 요가블럭의 도움 없이는 못하는 자세 투성이다. 그런 모든 것들을 잘 해내는 것이 지금 내 요가의 목표다. 하지만 조금 더 멀리 보면 그보다 중요한 목표가 있다. 지금처럼 꾸준히, 오래오래 요가를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그렇게 하는 것. 어느 늦은 밤, 소파에 누워 잠이 든 아내 옆에서 요가 구루들의 나이를 셈하며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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