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상상해보자. 때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1학년 교실. 서먹한 표정으로 낯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여덟 살 남자아이가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이제부터 이 '교실'이라고 이름 붙여진 공간에서, 친구를 사귀고, 어울려 놀고, 끝내는 살아 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교실 뒤로 나가 유행하는 아이돌 가수의 춤을 춰야 할까? 반장 선거에서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저는 저를 추천합니다!'라고 외쳐야 할까? 아마 가장 쉬운 방법은 이걸 거다. 체육시간이 되면 가장 먼저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축구공을 차는 것.
나는 그렇게 컸다. 아니,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선생님의 주목을 받지만, 운동을 잘하면 친구들의 주목을 받는다. 친구를 빨리 사귀고, 내 편을 만들고, 학교 생활이 즐거워진다. 그러므로 운동을 잘해야만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시절의 그 운동이란 대개 축구와 농구였다. 체육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공 하나를 운동장 한가운데로 뻥 찬다. 그리고는 외친다. '오늘은 축구다!' 그러면 남자아이들은 죄다 우르르 공을 향해 몰려가, 알아서 편을 나누고 경기를 시작한다. 거기서 소외된다면? 내가 있을 자리는 운동장 옆 스탠드가 될 게 뻔하다. 나는 다행히 부모님으로부터 나쁘지 않은 운동신경을 물려받았다. 초등학교를 넘어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내내 나는 교실에선 조용한 학생, 운동장에선 활발한 학생이었다. 거의 매일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 덕에 나에겐 친구가 많았다. 그때의 우리에겐 친구란 곧 운동을 함께 하는 사이였고, 운동이란 곧 인간관계 그 자체였다.
'헬스장'이라는 곳에 처음으로 가 본 건 대학생이 되고서였다. 그즈음엔 '지큐', '에스콰이어'와 같은 남성 잡지가 한창 인기를 끌었다. 나는 매달 한 권씩의 잡지를 사다 읽었고, 잡지들은 하나 같이 남자라면 멋진 옷, 비싼 시계, 근육질의 몸을 가져야 한다고 꼬드겼다. 나는 집 앞 헬스장에 다니며 열심히 바벨을 들어 올렸고, '간고등어 코치'가 쓴 '운동의 정석'을 사다 놓고 집에서도 팔 굽혀 펴기 따위를 하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몸짱'의 대열에 한 번이라도 끼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 먹고 마시며 떠드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던 20대의 내가 식단 관리를 제대로 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헬스장의 운동들이 지독히도 지루했다. 왜 같은 동작을 열두 번씩 다섯 세트나 반복해야 하는지, 거기서 오는 재미와 보람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멋진 몸에 대한 욕망은 마치 좀비처럼, 죽은 듯 하지만 다시 살아나 느린 듯 빠른 걸음으로 나를 쫓아오기에, 또 여름이 다가오면 나는 집 근처 헬스장에 얼굴을 내비친다. 그때의 나에게 운동이란 곧 자랑할만한 멋진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서른이 다가올 즈음, 드디어 취직을 하고 '회사원'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이제 나도 돈을 벌고, 얼마쯤은 내 맘대로 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겨울이면 스키장 한 두 번쯤은 갈 수 있는, 그야말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이제 나의 운동은, '액티비티'나 '레저 스포츠'같은 이름이 더 어울리는 쪽으로 흘러갔다. 한 때는 소위 '물뽕'을 맞아서, 일 년에 한 번씩 동남아로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스노보드 장비를 한 아름 사들여 겨울이면 주말마다 스키장에 가기도 했다. 그 밖에도 요즘 '힙'하다는 운동은 빠지지 않고 발을 담갔다. 크로스핏, 테니스, 서핑 등등. 나의 SNS에는 늘 자랑할만한 액티비티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누르는 '좋아요'의 숫자가 늘어날 때면 난 꽤 재밌게 사는 사람이라는 뿌듯함을 얻곤 했다. 회사에선 개처럼 벌어서 밖에선 이렇게 신나게 쓰는 거지 뭐. 일상에서 지쳐가는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 운동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시들해졌다. 마치 여름이 끝나버린 뒤의 바닷가처럼. 축구나 농구는 여전히 좋아하지만, 같이 할 사람을 모으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조기 축구회에 가입해보기도 하고, 회사 동아리에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바쁜 회사 스케줄 탓에 매번 빠지기만 하다 자연스럽게 탈퇴하기를 반복했다. 헬스는 여전히 재미가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는 똑같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비싼 돈을 들여 개인 PT도 여러 번 받아봤지만, 늘 횟수만 겨우 채울 뿐 내 몸은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다이빙이나 스노보드를 즐기기 위해 멀리 떠나는 것도 귀찮아졌다. 무거운 장비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먼 길을 떠날 생각을 하니, 그 시간에 차라리 가까운 곳에서 편히 쉬는 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과거의 이 모든 운동에 영영 작별을 고한 것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가끔 친구들과 만나 축구공을 차고, 여름이 다가오면 집에서 거울을 보며 덤벨을 들고, 겨울이면 아내와 함께 스노보드를 타러 강원도로 떠나곤 한다. 하지만 내 인생의 운동 연대기에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여기서 만약 골프를 시작한다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30대 후반 남성'이라는 과녁에서 정중앙에 있는 동그라미에 화살을 꽂게 될 것이다. 이미 회사에서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이 차장도 이제 골프 시작해야지? 클라이언트랑 공도 치고 사우나도 가고 해야 영업을 하지. 얼른 연습장부터 다니라고.' 주변의 친구들도, 동료들도 하나 둘 골프 연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같이 스크린 골프장에 가자는 연락도 자주 받았다. 나도 슬슬 골프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매일 같이 긴 막대기를 골프채 삼아 휘둘러 대는 부장님들은 너무 꼴 보기 싫지만, 골프가 막상 해보면 재밌는 운동이라는 얘기는 워낙 많이 들은 터였다.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얼마나 많이들 골프를 치던가. 사회적으로도, 시대적으로도, 내가 골프를 시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 같아 보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난, 골프 대신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운동과는 꽤 다르다. 어린 시절의 축구나 농구처럼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멋진 몸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다. SNS에 올려 '좋아요'를 얻을 수 있는 사진 한 장을 건지는 것도 지금의 나에게 턱없는 일이다. 어찌보면 지금까지 나의 운동들은 꽤 '사회적인'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골프만큼 '사회적인' 운동이 또 있을까. 몸의 어디에 좋다던가, 어떤 즐거움이 있는가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어느 골프장에서 누구와 공을 치느냐가 더 중요한 운동. 그에 비해 요가는 철저히 '개인적인' 운동임에 틀림없다. 남에게 보여줄 것도, 자랑할 것도 별로 없고, 나의 커리어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보다는, 나 자신과 마주하는 운동, 느끼는 것과 깨닫는 것이 많은 운동. 다시 말해, 오로지 나를 위한 운동. 어쩌면 내 인생의 새로운 계절은 나 자신을 향해 안으로, 끊임없이 안으로 흘러가고 있는도 모르겠다.
살면서 온갖 운동을 섭렵해온 자칭 '만능 스포츠맨'의 최후가 하고 많은 운동 중에 요가라니.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결말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 한 편이 있다. 나희덕 시인의 '속리산에서'라는 시.
가파른 비탈길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라는 듯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계절의 변화는 어쩌면 이 시구와 같은지도 모르겠다. 더 높이 오르는 대신, 더 깊이 들어가는 삶. 비탈길을 남보다 빨리 오르기보다는, 길고도 깊게 이어진 길을 걸으며 나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삶. 그런 삶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계속해서 매트 위에 서는 것이다. 이 계절 안에서 나의 몸과 마음을, 그리고 이 순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산다는 일은, 아무래도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