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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토끼 Jul 07. 2023

선생님께 부치는 편지

나는 고백한다


선생님,

저는 ‘나는 고백한다’는 주제를 받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 주제를 제가 어떻게 다루는 게 좋을지, 왜 하필 이런 어려운 주제가 저한테 걸렸는지와 같은 생각요. 도대체 저는 무엇을 고백해야 할까요?


먼저, 편지 형식의 글을 취한 이유는 최근에 읽은 책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에세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그들처럼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번 기회에 편지를 써보고 싶어 졌습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지가 참 오래되었더라고요. 이렇듯 저는 콘텐츠의 영향을 굉장히 잘 받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이게 저의 첫 번째 고백이겠네요.


저는 일요일 아침 8시에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면서 자란 디즈니 키즈입니다. 디즈니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던 작품은 <라이온킹>, <레이디와 트램프>처럼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였어요. 강아지 도감을 보며 글자를 익힐 정도로 개를 좋아하던 저는 그때부터 레이디와 비슷하게 생겨 보이는 카발리어 킹 찰스 스패니얼이라는 종의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대주의에 빠진 어린아이에게 저 품종은 상당히 권위 있고, 왕족 같아 보이는 이름이었나 봅니다. 물론 지금은 종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압니다.


자라면서 ‘디즈니 만화동산’ 대신 똑같이 일요일 오전에 하는 ‘TV동물농장’을 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는지도 모릅니다. TV 속 개는 솜사탕처럼 귀여웠고, 저는 초등학생 시절 내내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살면서 강아지와 함께했던 기억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저는 발가벗은 채로 강아지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기도 하고, 진돗개에게 올라타서 놀기도 했었습니다(쓰고 보니 학대였네요). 이는 모두 사진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4살 때쯤의 일이라 제 기억에는 없기 때문이죠. 저의 부모님은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책임감부터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들이어서, 애석하게도(그리고 개들에게는 다행하게도) 저는 개를 키울 수 없었습니다.


대신 부모님은 동물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동물 박람회와 동물원을 자주 데려가 주셨습니다.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면서도 ‘귀엽다’,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뿐 불쌍하다고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박람회에서 희귀 동물을 만져보기도 하고, 뱀을 목에 걸어둔 채로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게다가 중학생 때는 제가 살던 도시에 큰 아쿠아리움이 개관했고, 저는 그곳을 여러 번 방문해서 수조에 갇힌 바다 생물을 보며 즐거워했습니다. ‘갇힌 동물 구경하기’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22살이 되어서였습니다. 그들의 삶에 대해 알고 나니 마음이 불편해졌고,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동물원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개는 키우지 못하게 했던 부모님은 어쩐 일인지 소동물에 대해서는 관대하셨습니다. 개 대신 동네 마트에서 햄스터를 사 왔고, 흰색 햄스터에게 ‘베르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1년 정도 키우던 베르체는 알 수 없는 혹이 엉덩이에 생겼고, 동물병원에 데려가 보았으나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당시 햄스터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온 사람은 저희가 처음이라며 난색을 보이던 수의사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이후에도 저희 가족은 햄스터를 키웠고, 햄스터에 대한 지식이 적었던 저는 햄스터 한 쌍을 한 케이지에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번식력은 놀라웠어요. 두 마리로 시작한 햄스터는 스무 마리가 넘게 되었고, 결국 저희는 아파트 게시판에 무료 분양 쪽지를 붙여두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종에 대한 이해 없이, 사랑이라는 명목만으로 동물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이제는 압니다. 저의 마지막 햄스터 ‘완이’는 3년을 살고(햄스터로는 꽤나 장수한 편입니다)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대학생 새내기였던 저는 그날 학과 행사에 무단결석하고 집에서 몇 날 며칠을 울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동물이더라도, 저에게는 한없이 큰 동물이었으니까요.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우연히 저희 가족에게 오게 됩니다. 사촌 언니가 결혼하며 이민하게 되면서 키우던 개를 우리 집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1살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의 사연을 듣고 보니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긴 것도 불쌍했습니다. 비쩍 꼴아 있었거든요. ‘비쩍 꼴았다’는 부산말로 매우 마른 것, 히바리가 없어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 히바리도 사투리이군요(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불쌍해 보이던 강아지 ‘두나’는 알 수 없는 매력으로 일주일 만에 저희 가족을 사로잡아 버렸고, 그 이후로 13년을 저희 가족과 함께 살다 강아지별로 소풍을 떠났습니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넘쳐났지만 미성숙하던 저는 두나와 함께하면서 좀 더 넓고 깊게 동물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동물 단체에 후원을 시작했고, 동물권에 대해서도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처음이라 서툴고 해 준 것도 많이 없는 저에게 두나는 참 많은 것을 주고 갔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는 유기견 봉사활동을 다녔는데, 직장이 생기고부터는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단체에 쥐콩만 한 기부금을 내면서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이요. 동물권에 관해서 공부하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는 내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실천하고 있으면 알아서 세상이 바뀔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지금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동물권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며,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어 졌습니다. 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애쓰고, 실천하고 싶어 졌어요. 이것이 먼저 간 두나를 기억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작년부터 반려인과 함께 유기 동물의 입양 프로필을 찍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입양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생명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특히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라면요.

(동행부부 https://www.instagram.com/companion.bu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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