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교 교수 신간(2023.8)
글의 첫 줄을 우선으로 하여 그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던 때가 있었다. 첫 문장은 가끔 잘 나오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는데 첫 문장을 이끌어 내려 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오랜 연습을 보내고 요즘은 즉석 감성으로 쓰는 글이 많다 보니 무조건 생각나면 일단은 쓰고 본다. 쓰면서 풀어내는 과정 중에 첫 문장이나 그다음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을 알 수 있다. 탁월한 첫 문장이 안 나오면, 생각날 때까지 기다리며, 아니 아예 기다리지 않고 첫 문장을 멀리 밀어둡니다. p9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는 첫 문장을 통해 책이라는 세계를 깊이 읽어내는 책이다. 마지막 결론을 잘 맺어야 하듯 첫 문장의 중요성에 예를 들어 보이며 그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햄릿』『파우스트』 『죄와 벌』 같은 고전뿐 아니라 『아몬드』 『불편한 편의점』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 당대 최고의 총 서른일곱 편의 작품들을 저자가 선정했다.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하려 첫 문장을 잘 쓴 소설이나 산문집의 작품을 선정하는데 그리 쉽지는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식사하기 전 식탁이 잘 차려져야 하듯 그만큼 글의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덕분에 독자는 한 권의 책 속에 다양한 시대의 또 다른 책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결국 첫 문장과 제목은 가장 나중에 다가오곤 하지요. p9. 즉석 감성에 의해 쓰는 글이 대부분이다. 수정하고 다듬는 일은 차후에 이루어진다. 써놓고 나중에 전체적인 흐름이나 배경을 분석한 뒤에 제목을 정하곤 한다. 미리 제목을 정해 놓고 쓰는 글은 그 제목에 맞추기 위해 내용이 단절될 때가 있다. 써놓고 전체적인 배경과 흐름에 따라 고르다 보면 자연스러운 글의 제목이 나오는 것을 보곤 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파우스트」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이 문장은 괴테의 여성관을 대표한다. 괴테의 문학에는 가부장적 남성주의 보다는 모든 존재와 사물이 어우러져 공동의 생태계를 이루는 평화가 돋보인다. p65 저자는 시대의 배경과 흐름을 이끌어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을 예시로 들었다. 글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현시대를 넘나드는 책을 읽어 내며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드러내 보여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스스로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한 것을 알았다.「카프카. 변신」 p81 운명의 날은 갑작스럽고 첫 문장부터 당혹스럽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느 날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그다음 문장은 어떻게 이끌어 내고 풀어낼 것인가를 해석한다. 책 내용이 가지고 있는 인물과 어느 날이 가지고 있는 문장을 연결 지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전한다.
사람형태의 집이 여러 개 이듯 언어로 세운집 또한 다양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록 무수히 많다. 문장을 언어로 지은집이라고 한다면 첫 문장은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문장을 열고 들어가면 책이라는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만큼 첫 문장은 중요하며 책을 이해하는 첫 단추가 된다.(출판사 서평중)
읽다 보면 문해력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문장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들에게 꼭 이렇게 써야만 한다고는 제시하지 않는다. 저자는 작품 전체를 깊이 읽어낸 뒤 모든 작품의 첫 문장은 이런 식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고, 첫 문장은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제자리에 도착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이야기한다. 글 쓰기의 고민 없는 첫 문장을 풀어내고 마지막 문장까지 연결 지어 내는데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김응교 프로필』
저자 김응교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현재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다. 저자는 수락산 숲길을 산책하다 틈만 나면 글을 쓴다.
그동안 그가 펴낸 시집에는「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씨앗/통조림」「세 권의 윤동주 이야기」「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나무가 있다-윤동주 산문의 숲에서」「서른세 번의 만남-백석과 동주」가 있다.
장편소설에는 「조국」이 있으며 산문집 「그늘-문학과 숨은신」「곁으로=문학의 공간」「시네마 에피파니」「김수영 시로 쓴 자서전」「좋은 언어로 -신동엽 평전」「일본적 마음」등을 출간했다.(2007)
2017년 <동아일보>에 "동주의 길", 2018년 <서울신문>에 작가의 탄생을 연재했으며 <중앙일보>에 김응교의 가장자리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