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와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여행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모순이란 단어였다.
자본주의의 취약점이 집약된 과소비와 환락의 도시. 당연히 거부해야 하는 곳.
평생에 한 번은 경험해 볼 가치가 있는 꿈과 낭만과 도시.
우리 세대는 미국을 영화와 노래로 배웠다.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의미. 당시는 외국 여행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화면이나 라디오로 밖에 접할 수 없는 곳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역시 노래나 영화로.
라스베이거스는 마론 브란도의 대부로 상징되는 마피아의 자본으로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카지노의 도시.
엘베스 프레슬리와 앤 마그릿이 화면 속에서 노래하던 젊음과 낭만의 도시. 이름하여 "비바 라스베이거스."
우리나라에서는 "멋대로 놀아라."란 제목으로 1964년에 개봉된 영화다. 노인도 낭만은 안다.
과소비라는 거부감과, 최대의 환락가란 호기심으로 무장한 채 가족과 함께 1-15n 고속도로에 올랐다.
LA와 라스베이거스까지 대략 5시간 정도 걸리는 도로다.
LA시내만 벗어나면 지금까지 본 도시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풍경이 펼쳐진다. 차 안에서도 보이는 도로변의 석유 채굴기들. 다른 생각하기 전 와우! 란 감탄사가 먼저 나오는 큰 땅덩이. 우리는 구절양장이란 말을 쓴다. 이곳은 굽이 하나 없는 곧은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수도 없이 나타나는 터널,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서 있는 도시들, "여기까지, 여기서부터" 재수 없으면 교통체증까지, 이런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냥 황량한 도로밖에 없다. 이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의 땅덩이도 과학의 발달과 함께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지금 가는 라스베이거스도 후버댐 건설과 함께 세워진 도시다.
한참을 달려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 우리 식으로 하면 고속도로 휴게소 정도. 간단한 점심. 주문하는 사이. 미국 메뉴판을 구경하고 있으니 누가 와서 묻는다. “라인...?” 뒷 말은 못 알아듣지만 “노” 자리를 비키니 주문하러 간다.
미국인은 준법정신이 투철하다? 그럴 수밖에 없단다. 이민 국가여서 수많은 민족 집단이 함께 하는 미국이 법까지 무르면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단다. 식당에서 청소를 할 때엔 반드시 주위가 미끄럽다는 표시를 한다. 그게 없으면 소송이 들어 올 수가 있다. "식당이 미끄러워 넘어져 다쳤다."
베버리힐즈! 그 화려함! 인증샷 한 장 못 찍은 아쉬움이 약간은 엷어진다. 잠시 차만 대면 인생 샷... 이건 인정에 호소하는 우리 방식. 문화에 우열은 없다. 단지 차이가 있을 뿐. 배가 부르니 주위의 풍경이 보인다. 식당 밖 의자에서 점심을 때우는 사람. 약간은 지친 듯한 모습이 영화 “터미네이트”의 주인공들이 로봇에 쫓기며 쉬어 가는 미국의 풍경과 같다. 어쩜 이것이 미국의 참모습이 아닐지?
왔던 길과 꼭 같은 길을 달린다. 어릴 적 본 서부영화에서 말을 탄 인디언들이 나타나던 그 언덕을 보면서. 나무로 된 작은 전신주와 출입금지를 나타낸다는 줄만 없다면 영화의 한 장면이다. 캘리포니아 주가 끝나는 지점에 망루가 보이고 그것이 주립 교도소란다. 캘리포니아 흉악범 수용소. 그곳을 지나면 네바다주. 도시 하나를 지나 두 번째 도시가 바로 환상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드디어 도착했다.
다른 생각은 않겠다. 40년 가까운 세월의 가족을 위한 노력과 등에 15cm가량의 흉터를 남긴 두 번의 암 수술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며 이곳의 낭만만 즐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