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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날 Jul 07. 2021

눈물 젖은 샌드위치

친절 한 모금, 눈물 한 방울

마지막 천국이라는 산후조리원도 끝나고, 마지막 기댈 언덕이라는 산후도우미도 끝났다. 머리를 빗고, 아기 토가 안묻은 깨끗한 옷을 입고, 몸에 바디로션을 바르는 행위는 저 세상 사치로 분류되었다. 그저 먹고, 자고, 씻고, 싸는- 날 위한 최소한의 본능 충족이 불가능 했다. 호르몬은 널을 뛰고 내가 나인지 이 몸이 내 몸인지 내 정신세계가 어디까지 혼돈스러울 수 있는지 시험하는 듯 했다. 이 시기의 엄마는 누구나 힘들다지만 누구나 이정도로 힘들며 둘도 낳고 셋도 낳고 우리 외할머니는 열도 낳고 하며 꾸역꾸역 이 언덕빼기를 넘어왔다는게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엄마가 위대해 보이고 아이가 셋인 아랫집 주인분도, 가끔 아이가 숙제하고 있는 동네 세탁소 여사장님도, 모두가 위대해 보였다. 산후풍이라는 단어를 얼핏 들어만 왔는데 내 경우일 줄 몰랐다. 베개에 붙인 머리카락을 움직이기만 해도 날카로운 두통이 오고 하루 종일 손가락 마디, 발톱 끝까지 묵직한 통증이 일었다. 내 몸도 맘도 약한데 더 약한 생명이 내 품에 쥐어졌다는 책임감은 아무리 내려놓으려 해도 자꾸만 예민해 지게 했다. 사람이 어디까지 잠을 안자고 잘 수 있나 자체 임상 실험 하는 기분으로 노력했건만 좋은 엄마의 필수 요건이라는 모유수유는 도무지 잘 되지가 않았다. 아이는 신생아 답지 않게 잠이 없었다. 칭얼대는 이유를 찾느라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어째서인지 남편은 도움은 커녕 고통만 안되면 다행일 지경이었다. 사랑스럽다. 소중하다. 감사하다. 그 사실은 분명한데, 처음 겪는 혼돈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선명했다. 버티는게 아니라 누리는 거라고, 독박 육아가 아니라 독점 육아라고, 어쩌고 저쩌는 긍정의 메시지도 수면부족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게 있어 갓난쟁이 아기 육아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은 다음과 같은 것에서 비롯됐다. 이 모든 혼돈이 내가 기꺼이 선택한 일이라는 것, 나도 설명이 안되는 이 혼돈의 시기를 나와 같이 아이를 만든 남편에게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도 정확히 전달이 안된다는 것. 아이를 낳고 길러본 여동생, 엄마, 조리원 육아동지들은 나를 백분 이해했지만 어찌됐건 이 시간은 내가 오롯이 견뎌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 종일 말 못하는 아가와 단 둘이 마치 세상과는 차단된 듯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사무치게 외로웠다. 스마트폰 너머 뉴스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듯 한데, 나와 아기는 집이라는 동굴에 갇힌 기분이었다.


아기가 태어난지 130일 정도의 어느 날, 물 한잔 입에 대지 못했던, 조금씩 날이 풀려가던 어느 초봄의 오전 11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은 살짝 싸늘한 바람과 아직 서툰 유모차 사용으로 아기와의 단 둘이 하는 바깥 외출이 조금 불안하고 낯설기만 하던 때. 칭얼대는 아기와 가지 않는 시간, 바싹 건조한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하다 졸려하는 아기를 유모차에 조심히 태우고 동네를 산책했다. 바람을 쐬니 이제야 허기가 몰려와 유모차에 올린 손이 달달 떨려왔다. 마침 눈에 들어온 손님없이 한가한 카페 입구에 샌드위치 그림을 보고 말 그대로 허둥지둥 손목보호대를 한 손으로 유모차를 들쳐 올리고 들어갔다. 샌드위치랑.. 블루베리 스무디요. 카페를 혼자 운영하시는 중년의 여사장님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온 부스스한 아기 엄마의 지치고 간절한 허기를 단순에 알아봤다. “이를 어째,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가 없어서 시간이 걸릴텐데” 멀리 앉은 내게 느껴질 정도로 사장님의 손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아기엄마 일단 샌드위치 먼저 내왔어요. 어서 먹어요.” 마침 유모차에서 잠이 든 아기 옆에서,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스스로 제어가 안되는 속도로 아기가 깰까 곁눈질 하며 먹어 치웠다. 사장님은 아기 깰까봐 틀어놓은 음악도 끄고 차 소리나는 창문도 다 조심히 닫으셨다. 분명 블루베리 스무디를 시켰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자리로 가져다 주셨다. “스무디 갈면 소리가 커서.. 커피 마시고 있다가 나갈 때 갈아줄게요”


샌드위치를 한가득 씹어 삼키는데 눈물이 톡 떨어졌다. 창피하고 당황스러웠는데 한방울로 그치지가 않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사이, 사장님은 카운터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쓱 사라지셨다. 음악소리도 없이 고요한 카페에 평온히 잠든 아기와 울다 먹다 하던 나.


타인의 작은 친절에 기대어, 그날 하루도 그렇게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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