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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날 Apr 26. 2021

캘리포니아 롤을 먹지 않는 이유

녹진한 아보카도와 감칠맛 나는 연어살, 아삭한 오이를 감싼 달콤한 크림치즈, 토독토독 터지는 신선한 날치알. 신선함과 고소함이 색색이 박힌, 생김새 만큼이나 이름도 예쁜 캘리포니아롤. 


내가 대학교 4학년이던 2000년도 초중반, 이 이국적인 이름의 메뉴가 조금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여기저기 식당에서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김밥처럼 생겨서 김밥의 10배 정도 하는 가격을 형성하고 있던 이 음식이 평범한 대학생에게는 그렇게 자주 사먹을 만한 건 아니었다. 데이트 하거나 소개팅 할 때 주로 먹는 세련된 메뉴였고, 어느 선배가 누구한테 점심에 캘리포니아롤 사주고 카페 창가에서 빙수 먹었다고 하면 며칠 안가 둘이 손잡고 교정을 걷고 있었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은 캘리포니아롤을 참 좋아했더랬다. 첫째라고 대우받는 언니에 치이고, 막내라고 받아주는 남동생에 밀려 가끔하는 가족 외식 메뉴 선정에는 그녀의 지분이 없었다. 비단 메뉴 선정 뿐일까. 그녀의 성장 과정에는 내가 알고 모르는 끼인 둘째의 포기와 수용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런 내 동생이 대학생이 되고 과외를 시작하고 직접 번 돈이 생기면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직접 결정해 사먹는 행위는 일반적인 짐작보다 더 큰 종류의 기쁨이었던 듯 하다. 별로 식탐도 없던 아이가 밖에서 밥 한번 먹을라 치면 먹고 싶은 음식을 신중을 기해 고르고 고르느라 옆에서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나와 내 동생은 경기 외곽지역인 본가에서 강북지역 대학까지 매일 다니기 어려워 동생 이 다니던 여대 근처에 자리를 잡고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다. 가끔 각자 일정을 마치고 밖에서 만나 같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어느날 동생이 우리 학교 정문에 와있다며, “언니, 맛있는거 사왔어! 먹고 같이 집에 버스타고 가자.” 라고 연락이 왔다. 동생은 곱게 포장된 캘리포니아롤 두줄을 들고 언니! 하며 반갑게 뛰어왔다.      


당시 나에게는 간절히 해결하고 싶은 삶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살이었다. 호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1년동안 나는 10킬로가 쪘고 체급이 못해도 두 계단은 상승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달라져 있는 외모에 놀라는 기색이었고 남자 선배들은 야 건강해 보인다, 라며 무심한 인사를 던졌다. 아니, 그들은 나의 다소 변한 외모에 큰 관심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원체 나를 바르고 꾸미고 입는것에 관심이 많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던 나는 살이 쪘다, 못생겨졌다, 라는 스스로의 낯설고 강렬한 인식이 나 자신을 이토록이나 갉아먹을 수 있다는데 가장 놀랐고 무서웠다. 늘 자신감이 충만했던 나는 자신없고 어둡고 사람을 피해다니는 사람으로 바뀌어갔다. 살을 빼려고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할수록 음식에 대한 갈구와 마음의 허기짐은 폭발했다. 그리고 그렇게 욕구와 현실사이에서 불안해 하던 그날, 동생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캘리포니아롤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 


먹을 만한 장소에 자리를 펴고 그 다음은 어떻게 먹었는지 모른다. 해가 어스름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그날도 원푸드다이어트를 한다며 전날에 이어 사과 세알을 먹은게 다였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대부분의 롤을 다 먹은 듯 했다. 배가 불렀다. 정신이 돌아왔다. 아 나는 다시 실패했구나. 이렇게 허무하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고 어제 하루를 그렇게 사과 세알로 버텼나. 오늘까지만 이겨냈어도 내일은 수월했다. 그 다음날은 더욱 안정적이었겠지. 그랬다면 어쩌면 난 이번에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다이어트의 고리를 끊어낼 성공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매일 외면하고 있는 거울도 친구도 내 눈에 보이는 터질듯한 허벅지도 모두 안녕하고 다시 나도 웃으면서 당당하게 저 교정을 뛰어다닐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화가났다. 오늘 날 찾아온 동생에게 화가났고, 내가 다이어트 중이라는걸 알면서도 저따위 음식을 들고온게 화가났고, 이성을 잃고 먹고 있는 나를 방치한 것에 화가났다.        


얼굴이 시뻘개져 자리에서 벌컥 일어났다. 뭐라고 퍼부엇는지 자세히는 기억하지 못한다. 왜 이따위걸 갑자기 사와서는 난리냐, 뭐 맛있는 음식이라고 살만찌지, 넌 왜 시키지도 않은짓을 하냐,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맛있게 잘 먹던 언니가 갑자기 괴물처럼 화를 냈을 때 내 순한 동생이 지엇을 당황한 표정같은 것도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 내 배를 채운 음식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내 다리를 학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미칠듯한 초조감에 집에 걸어갈거야! 라고 소리지르며 가방을 들고 획 나가자 펼쳐놓은 롤 포장지, 소스 뭍은 젓가락, 휴지따위를 허겁지겁 대충 봉지에 쑤셔놓고 언니! 하며 낯선 교정을 따라 달려오던 동생의 모습만은 아프게 기억한다. 안암동에서 쌍문동 주택가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2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길을 한마디 말도 없이 걸었다. 해가 어스름할 무렵이었는데 집에 도착했을때는 가로등불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어두운 저녁이었고 발가락엔 쓰라린 통증이 있었고 종아리에 쥐가 날것 같았다. 그날은 동생이 과외비를 탄 날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어제 채 버리지 못하고 챙겨온 캘리포니아롤 용기와 포장지등이 담긴 비닐봉지가 종량제 봉투에 담겨있었다. 보기가 힘들어 반도 안찬 종량제 봉투를 묶어 내다 버리고 학교에 갔다.     


난 이날 이후 캘리포니아롤을 먹지 않는다. 이제 캘리포니아롤은 결혼식 뷔페에서 생선회초밥 코너 가짓수 채우는 정도의 느낌으로 전락하긴 했지만, 어찌되었건 캘리포니아 롤이 아니고 비슷하게 생긴 롤 사촌 같은건 다 먹지 않는다. 살이 찔까봐도 아니고 (살 문제는 그 이후 취업을 하면서 고된 돈벌이에 자연스래 해결되었다.) 맛이 없어서도 아니다. 15년이 지난 일인데 그 음식을 보면 아직도 마음 한켠에 희미하지만 묵직한 통증을 느낀다. 열등감에 시달리며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젊고 어렸던 나, 그리고 캘리포니아롤을 참 좋아했고, 언니를 그보다 많이 좋아했던 순하디 순했던 내 동생. 가끔 웃어넘길 사진 한 장 같은 추억이라기엔 다소 따끔하게 판화같이 새겨지는 장면들이 있는 법이니깐.     


오랜만에 친정에서 만난, 이제 같이 아기 엄마가 된 동생이 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에서 3개에 만원 떨이하는 캘리포니아롤을 사서 저기 앉아 먹자고 한다. 각자 어린 아기를 옆에 앉히고 가재 수건으로 침과 코를 닦아줘가며 집어먹는 15년만의 캘리포니아롤. 넌 아직도 이걸 좋아하는 구나. 동생을 꼭 닮은 네 살배기 조카를 함참을 꼬옥 안아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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