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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를 빛내 Mar 05. 2019

뉴욕 직장인의 점심시간.

뭘 먹어야 잘 먹었다는 소문이 날까?

아침 9시 반에 회사에 도착해 뜨거운 물 한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아직 잠이 덜 깬 내 몸 구석구석에 '이제 일할 시간이다!'라고 알람을 보내야 한다.

아침 내내 주어진 업무를 하나하나 해치워나가다 정신을 차려보면 벌써 12시. 시장기에 배가 슬슬 고파질 시간이다. 오늘은 어떤 점심 메뉴를 고를까. 행복한 고민이다.


좋은 회사를 결정짓는 요소는 단순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케미, 내가 하는 일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회사의 위치, 접근성, 워크 라이프 밸런스, 그리고 주변의 맛집 분포도 또한 아주 중요하다. 다 먹고살고자 하는 일인데, 먹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지 않은가. 먹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이 사회 초년생 직장인에게 있어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아주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다.


소호에 위치했다는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주변에 위치한 레스토랑과 테이크-아웃 가게들을 그 날의 내 기분에 따라 골라 찾아간다. 옆자리 동료들과 구글 맵 등 모든 자원을 활용해 끌어모은 점심 맛집 리스트를 오늘 다뤄보고자 한다.




1. 전 날 과식을 했다면, 양심적으로 샐러드

내가 느낀 뉴욕은, 샐러드의 도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남녀노소 점심시간만 되면 샐러드 가게 앞에 긴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되길 기다린다. 오죽하면 줄 서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리 앱으로 자신의 먹고 싶은 샐러드를 골라서 결제, 그리고 가게에 들러 바로 픽업하는 효율적인 서비스도 존재한다. 회사 근처에는 2개의 샐러드 가게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Sweetgreen과 Chopt, 이 두 곳이다. 두 가게 모두 약 11-14달러 정도 하는 가격으로 아주 싸지는 않은 가격이지만 양은 1.5-2인분을 넘는 양으로 먹다 남으면 저녁도 해결 가능하다. Sweetgreen과 Chopt 모두 시즌별로 새로운 메뉴를 앞다투어 내놓는데, 최근에는 아시안들의 입맛을 겨냥해 된장소스 베이스의 샐러드나 한국의 비빔밥 샐러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전 날 과식을 했거나 다이어트 중이라면 점심은 샐러드로 선택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물론, 통곡물 빵 추가 여부는 양심이 허락한다면.

 

원하는 샐러드를 커스터마이즈해 선결제 후 픽업할 수 있는 Sweetgreen (좌측), Chopt (우측)의 앱.  각 브랜드의 개성과 브랜딩이 인상 깊다.



2. 건강하고 든든한 미국 가정식을 먹고 싶다면 이곳, Dig Inn

샐러드가 질려갈 때쯤 좀 더 무게감 있지만 건강한 한 끼 식사를 하고 싶을 때 나는 Dig Inn을 간다. 모든 재료들이 뉴욕 주 근방에서 유기농으로 재배되어 무척 신선하고 질이 좋다. 계절마다 조금씩 바뀌는 제철 채소 메뉴들도 눈여겨볼만하다. 약 5 블록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에 있어서 추운 날은 찾아가기 조금 귀찮지만, 그래도 간간히 이곳의 매콤한 닭다리살과 케일 샐러드 보울이 생각날 때가 있다. 예전 회사에서 일할 때, 고혈압 병력이 있는 보스가 Dig Inn을 워낙 좋아해서 책상에 전 메뉴의 나트륨 함량과 칼로리 표를 뽑아 붙여놓고 메뉴를 골라먹기도 했다. (같이 곁들여 먹는 드레싱들의 나트륨 함량이 생각보다 높으므로 참고하고 먹는 것이 좋다.) 햇살 따사로운 날 점심시간에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일광욕을 하며 먹었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 봄이 오면 조만간 야외의 벤치에 앉아 먹어볼 예정이다.


제철 채소와 원하는 고기메뉴를 선택해 구성할 수 있는 Dig Inn의 테이크아웃 볼.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고기 대신 두부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3.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이 그리울 때

한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일을 하면서 제일 그리운 것은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이다. 예전과는 달리 뉴욕에서도 한식 음식점이 널리고 널렸지만 (심지어 곱창 음식점도 있다!) 이 곳의 어마 무시한 물가 때문에 지갑을 열기가 주저스러울 때가 많다. 이틀에 한 번은 한식을 먹어줘야 하는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가게는 바로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Tofu Tofu이다. 회사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면 이곳이 중국인지 뉴욕인지 헷갈릴 정도로 바글바글한 차이나 타운이 나타나는데 많고 많은 중국 음식점들이 늘어선 거리 한가운데에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순두부 찌개 가게가 콕하고 박혀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서 오세요!" 하고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사장님이 계신다. 혼자 밥을 먹으러 와도 민망할 필요가 없는 것이, 점심시간만 되면 이 곳은 혼밥을 하러 오는 사람들로 꽉 찬다. 자리에 앉아 외투를 벗고 메뉴판을 쓱 훑으면, 엄마 같은 인상의 사장님이 나물과 김치, 소시지 반찬 접시 대여섯 개, 그리고 서비스로 나오는 뚝배기 계란찜을 쫙 깔아놓으신다. 늘 이렇게 장사하시면 사장님께 남는 이윤이 있으실지 걱정하면서 계란찜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진하게 우린 멸치육수로 간한 계란찜이 감칠맛 난다. 라면부터 시작해서 해물파전, 버섯전골까지 다양한 메뉴가 많지만,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선택해야 할 당연 베스트는 해물순두부와 부대찌개이다. 혜자스러운 양과 얼큰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뚝딱해치우게 된다. 부대찌개는 3인분 같은 2인분이 나오는데, 남은 양은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 라면사리를 넣고 다시 끓이면 감동스러운 맛을 다시 느낄 수 있다. 더욱더 감동스러운 것은, 이렇게 푸짐한 가정식 백반 메뉴가 결코 15불을 넘지 않는다는 것. 엄마 같은 사장님의 푸근한 인심이 느껴지는 곳이다.


Tofu Tofu - 96 Bowery, New York

 

어마 무시한 양의 부대찌개와 반찬들.




4. 전 세계의 음식은 모두 여기에 모였다, 카날 스트릿 마켓

증권가가 몰려있는 월 스트릿이나 그랜드 센트럴과는 달리 소호와 근접한 차이나타운은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이다. 이런 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다양한 국가의 음식에 대해 거부감과 진입장벽이 낮다. 카날 가 Canal Street에 위치한 실내 푸드코트 Canal Street Market은 다양한 음식뿐만이 아니라 여러 아티스트들과 브랜드들의 수공예품이나 옷, 그리고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복합적 공간이다. 차이나 타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이 곳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가게들이 잇푸도의 테이크아웃 라면 체인 쿠로오비 Kuro-Obi,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가게 아줌마 Azumma, 미션 세비체 Mission Ceviche의 페루 음식, Box의 레바논 음식 가게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 라멘을 좋아해서 종종 들리는데 진한 돼지 사골뼈 국물에 차슈, 그리고 면이 참 일품이다. 옆자리 동료는 미션 세비체의 대표 요리인 해산물 세비체를 좋아한다. 신선하고 세비체 특유의 톡 쏘는 상큼한 맛이 최고라고 한다. 점심을 다 먹고 돌아가는 길에 Boba Guys에서 타피오카 펄과 팥을 추가한 얼그레이 밀크 버블티를 사 마시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진한 국물의 Kuro-Obi 라멘과 깔끔하고 발랄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날 스트릿 마켓 내부.



5. 7불짜리 행복

자금난에 시달릴 때면 어김없이 더 싼 점심을 파는 곳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The Goods Mart와 Cafe Mamán 이 그 두 곳이다.

The Goods Mart는 캘리포니아의 실버레이크 도시에서 온 건강한 편의점이다. 이 곳에서는 입이 심심할 때 사 먹는 작은 간식에서부터 버터, 화장실 휴지, 샴푸까지 파는 간이 편의점인데, 질 좋지만 저렴한 가격의 제품들만을 파는 편의점으로 유명하다. 어느 카페에 가도 한잔의 아메리카노가 3달러를 웃도는 뉴욕 물가에 비해 이 곳은 같은 한잔의 커피가 1.25달러 밖에 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갓 구운 빵으로 만든 살라미 샌드위치나 터키 햄 샌드위치가 있는데, 7달러 밖에 안 되는 비현실적인 가격의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옆 블록에 위치한  Cafe Mamán은 귀여운 간판과 소박한 프랑스풍의 카페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인데, 점심시간마다 이 곳은 지나다니는 직장인들의 핫 플레이스로 바글바글하다. 커다란 볼에 가득 담은 시저 샐러드, 파스타 샐러드, 그리고 쪽파를 썰어 넣어 매콤한 Farro (보리와 비슷한 맛을 내는 이탈리아의 곡물) 샐러드가 단돈 7달러 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건강까지 챙기고 싶다면 주로 찾는 곳이다.


The Goods Mart - 189 Lafayette St, New York

Cafe Mamán - 239 Centre St, New York


The Goods Mart (좌측) 와 Cafe Mamán (우측)의 내부.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나와 폐에 바깥바람을 넣어주고 머리를 식히는 것, 호화스럽지는 않지만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사소한 행복. 나 자신을 위한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를 선택하는 것이 열심히 일한 보람이 되고 성실히 일했다는 것에 대한 보상이 된다. 비록 고독한 미식가만큼 깐깐하고 넘치는 표현력은 아닐지라도 앞으로도 다양한 매력을 가진 맛집들을 찾아 소개하고 점심시간의 사소한 행복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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