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한 해를 돌아보며
2년 차 사회 초년생은 출근하자마자 오늘도 여김 없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부여받는다.
고작 1.5 킬로그램 짜리 뇌가 모래알만큼 셀 수 없이 많은 뉴런들을 채찍질하며 슈퍼 컴퓨터처럼 윙 돌아간다.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간절한 이 시점, 좌뇌와 우뇌,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일단 생각이 나면 만들어놓고 본다.
컴퓨터 화면이 뚫어질세라 치켜뜬 두 눈은 이미 충혈된 지 오래다. (컴퓨터를 오래 들여다보는 직업 특성상 시력 저하는 어쩔 수 없다. ) 이따금 안경을 쓰고 출근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중학교 때의 범생이였던 모습이 영 우스꽝스럽다.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점심식사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가 있다. 고개를 들어 달력을 보니 벌써 12월이다. 2019년이 이렇게 지나갔다. 어느덧 이 회사에 몸담은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지금 다니는 회사 생활은 어떻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좋다"라고 대답한다. 입에 바른 소리가 아니라 나는 진짜 이 회사가 마음에 든다.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상사도 참 좋다. 가족 같은 분위기다.
2019년은 내게 있어서 감사함의 한 해였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배우는 기회가 참 많은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내가 무슨 일을 배우고 싶은지 상사와 상의하면 그 의견을 반영해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시켜주고, 대부분의 실무를 담당하는 주니어 디자이너의 업무 특성상 내가 만드는 디자인이 프로젝트의 뼈와 살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참 짜릿한 일이다. 저번 분기별 업무 평가에서 나는 좀 더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냈었고, 곧바로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같이 일하게 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비디오와 영상을 전문으로 한 프리랜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이 디렉터 밑에서 영상에 쓰일 스토리보드 디자인을 배우게 됐다. 하루빨리 이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는 걸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또 다른 감사한 일은 새로운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일이다.
뉴욕에서 살면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흔하지만 그 인연들을 통해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얻어가는 건 드물다. 내가 몰랐던 책이나 음악가를 소개해주거나, 같이 운동을 하며 건강한 마인드셋을 전파하는 친구도 있고, 나보다 더 폭넓은 와인 지식을 전수해주는 친구도, 뉴욕 곳곳에 숨겨져 있는 귀여운 가게나 맛집을 다 꿰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친구들 덕분에 나는 손 놓고 있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되었고, 퇴근 후 듣는 디자인 수업을 수강 신청했고,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하우스 뮤직을 들으며 유명한 디제이들의 콘서트를 가보거나, 저녁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이 주는 상쾌함도 느끼게 되었다. 배움의 의지를 갖고 있는 친구들을 가까이하게 되어 좋은 점은 나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나만의 취미를 갖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고, 그렇게 탄탄히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면, 나만의 색깔이 뚜렷한 그런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전 같았다면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이미 성공한 연예인이나, 훨씬 더 똑똑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을 보고 자괴감에 빠지거나 우울해지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생각이 바닥을 찍고 나니 깨달은 건, 열등감에 빠져 구덩이만 파고 있기엔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 다른 사람들과 마라톤 경주를 하고 있을 때 내가 그 사람보다 늦게 달린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건 비합리적이다. 내가 뛰고자 (아니면 걷는 것도 상관없다) 하는 의지를 갖고 한 발짝 내디뎠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게 훨씬 더 정신 건강에 이롭다. SNS의 역할도 점점 바뀌었다. 내가 존경하는 롤모델이나 즐겨보는 잡지 에디터들, 뉴스 플랫폼을 팔로우하면서 내게 더 유익한 정보들을 받아볼 수 있는 정보의 창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젠 내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의 사진을 보면서 부러워할 시간도 아깝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더 와 닿는 것은 가족들의 소중함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집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정신이 팔렸었는데, 요즘은 가족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중한지 천천히 깨닫는다. 한 달 전, 외할머니께서 오랜 지병을 앓고 나시고 돌아가셨을 때 한국으로 급하게 들어가게 되었는데, 수년만에 만난 사촌들과 발인 전날 장례식장을 지키며 술잔을 기울이면서 성년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회포를 풀었던 적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이뻐해 주던 사촌 오빠들과 어느덧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예전에 여름방학마다 계곡으로 놀러 가 같이 물놀이를 하던 사촌언니들과 같이 소맥을 마는 레시피를 공유했다. (다음 날,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으며 호되게 혼났지만 지금 와서 보면 아직도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들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가족이란 내 안의 지지대가 되고 방패가 되어준다. 어렸을 적에 집 밖 놀이터에서 놀다가 못된 고학년 학생한테 삥을 뜯기거나 맞고 돌아오면 언니가 대신 혼내줬던 기억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어른이 되고 나서 직접적으로 그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따금씩 힘들거나 지치는 하루의 마지막을 가족들의 목소리로 위안을 삼으려는 심리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새해 목표를 물어보는 요즘,
나의 2020년 새해 목표는 아직 구상 중이다.
우선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수강 신청한 그 퇴근 후 디자인 수업을 듣고, 더 비싸지기 전에 얼른 구입한 파리행 비행기표를 들여다보며 프랑스어 회화 수업을 유튜브로 찾아보고, 작년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운동도 부지런히 하고자 하는 대략적인(!!) 계획은 있다. 문제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까라는 점인데 (작심삼일 하는 나의 과거 성향으로 미루어보아) 단기 목표를 세우는 것이 우선일 듯하다.
그저 소박한 나의 바람은 작지만 한걸음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길, 멘탈이 더 건강해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