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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를 빛내 Sep 30. 2019

2년 만에 한국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2>

<2> 비자 인터뷰 그 후, 방송 출연, 그리고 느낀 점.

제발 저 무서운 표정의 면접관에게 배정되지 않게 해 주세요!

신이 "옛다, 불쌍하니까 봐줄게." 라며 넘어가 주셨는지, 나는 그 면접관의 왼편에 앉아있는 한 온화한 표정의 여성 면접관에게 배정되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여권과 서류를 보여달라고 한 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일에 관련된 질문 몇 가지를 한 뒤 여권에 도장을 쾅쾅 찍어주었다. 3일 뒤, 여권이 집으로 배송될 거라고 하며.


이른 아침에 밥도 못 먹고 나온 터라, 면접이 끝난 뒤 몰려오는 피로감은 극심했었다. 나중에 보니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꾹꾹 찍혀있었고, 아침에 다려 입은 셔츠는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날 운이 좋게도 나는 여권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날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미국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고 서럽다. 누군가에게는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서 말도 안 통하고, 문화적 정서가 다른 곳에서 살아간다는 게 가끔은 무거운 짐처럼 버거울 때가 많다.


잠시 바쁜 일상을 벗어나 휴가차 방문한 한국에서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작년에 취업과 이직을 준비하던 상황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도 그때는 내 인생이 걸려있다는 생각과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잠 못 자면서 지내왔었으니까.


예전에도 했었던 이야기지만, 나는 잠 못 잘 때 종종 주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뭐하냐고 안부를 물으며 못살게 군 적이 종종 있다. 내가 봐도 나는 참 귀찮은 친구다. 그럴 때 잠을 떨쳐내고 같이 이야기꽃을 피워주는 친구들이 참 고맙다. 또한, 시차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종종 연락을 해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친구들이 한국에 몇몇 있다. 우리 언제 봐, 노래를 불렀던 친구들,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할 수 있는 연락수단이라고는 전화 통화나 문자밖에 없는데, 바쁜 시간 쪼개어 같이 모일 수 있어서 얼마나 미안하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여담이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모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이 소모임을 주제로 하는 촬영에 참여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연예인들과 미식에 일가견이 있으신 셰프님, 그리고 각양각색의 직업과 배경을 갖고 있는 언니 오빠와 동생까지. 처음에는 자기소개를 하며 쭈뼛쭈뼛 어색했었다. 그러더니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밥숟가락을 뜨고 술잔을 부딪히니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눈 녹듯 풀리더라.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다들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게 너무 아쉬웠었다. 각자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데, 그 경험을 공감한 사람들이 해주는 조언은 참 담백하고 솔직해서 그게 더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각자가 겪는 삶의 무게에 가볍거나 무거움을 논할 필요 없이, 이야기를 하고 풀어놓는 과정 자체에서 얻는 카타르시스가 주는 치유와 낯선이 와 돈독해지는 유대감을 다 같이 느끼는 자리였다.


짧은 시간 금세 친해진 우리들.  <같이 펀딩> 촬영이 끝나고 난 뒤 다 같이 한 컷.


혼자 외국에서 나와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집도 돈도 아닌 사람이라고 한 지인이 말했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 살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 때문에 울고 웃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뉴욕은 어떤 날은 외롭기도 하고, 어떤 날은 천군만마를 얻은 그 누구보다도 더 든든할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과 나누는 정은 참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그리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나는 뉴욕에 와서 깨달은 것 같다.


한국에 있는 동안 새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지만, 바쁜 시간 틈틈이 짬을 내서 달려와준 친구들, 그리고 뉴욕에서 살면서 알게 된 친구들 덕분에 '사람들이 주는 정과 교류'에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를 정도로 얼마나 든든한 시간이었는지 다시금 알고 가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 혼자 타지 생활을 하겠다고 선언한 딸을 지지해주셨던 부모님, 그리고 우울감과 무기력함으로 바닥을 치고 방황했을 때 도움을 주셨던 학교 선배님들과 직장 상사, 그리고 멘토 분들. 취업난으로 힘들 때 같이 술을 마시며 힘내자고 파이팅을 외쳤던 전우 같은 친구들.


설령 그것이 낯선 이에게서 받는 사소한 위로일지라도 그 날 나의 하루에 큰 위안이 된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감사하는 마음의 힘은 참 대단하다. 상황이 변함없이 힘들고 욕지기가 나올 만큼 풀리지 않더라도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어디야.'라고 되뇌며 끈질기게 버텨보겠노라는 괴물 같은 힘이 생긴다. 그것이 여태까지 이 바글바글하고 정신없는 도시에서 살아갈 원동력을 주었다면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내심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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