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진행하는 업무 평가란?
사건의 발단은 인사팀의 매니저가 금요일 오후에 보내온 한 이메일이었다.
"안녕! 금요일 잘 보내고 있니? 다음 주 수요일에 Quarterly Review (분기별 업무 평가)를
할 예정인데 시간 되니?"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요, 매 분기마다 찾아오는 업무 평가의 계절이었다.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졌고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업무 평가라니, 중간고사의 날짜가 정해졌을 때의 그 암담한 심정이 왜 직장인이 되어서도 드는 걸까.
이 디자인 에이전시에 입사해 일하게 된 지 어느덧 6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 후 두 번째 직장이지만 제대로 된 공식 업무 평가는 처음이었던 나는 급하게 구글에 Quarterly Review를 검색해 폭풍 스크롤질을 하기 시작했고, 컴컴했던 앞 길에 등잔불이 비추듯 정보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시험을 앞두고 수험생이 교과서와 문제집을 다시 한번 복기하듯이, 업무 평가를 준비하기에 앞서 그동안 내가 몸 담았던 프로젝트 들을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입사한 첫 주에 상사가 맡겼던 자잘한 포토샵 업무에서부터, 최근의 클라이언트의 리브랜딩 프로젝트까지, 내가 맡았던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무엇이 있었는지 차례대로 열어보았다. 다행히 팀원들 여럿이서 사용하는 서버에는 한눈에 보기 쉽게 프로젝트 별로 파일이 정리되어 있어 이 부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에서 내가 어떠한 성과를 얻었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배운 점은 무엇이었는가를 중점으로 간략히 요점정리를 해놓는 것이다. 이 요점들을 중심으로 업무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잘 숙지하고 평가를 대비한다면 일단 반은 대비한 것이나 다름없다.
업무 평가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업무에 대한 평가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향후 6개월, 1년 동안의 나의 목표를 인사팀과 매니저와 상의하고 그것을 지키려면 어떠한 액션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기이다.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업무 평가에 대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자, 옆 자리의 시니어 디자이너 J가 나에게 그녀의 꿀팁을 전수해주었다. 사실 이번 업무 평가도 J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사실 암담하다.
사실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당장 내가 원하는 장/ 단기 목표가 무엇인지 정하는 것은 암담할 수 있다.
당장에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이 가장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에 틈틈이 내 매니저와 대화하며 디자이너로서 내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나는 햇병아리 디자이너이니까, 좀 더 발언권을 얻고 디자인 결정권을 갖고 싶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더 높은 직급의 디자이너가 되어야겠지! 시니어 디자이너를 장기 목표에 명시해둔다.
그렇다면 내가 승진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스킬과 능력이 무엇일까? 우선 내가 현재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좀 더 완성도 있게 결과물을 내놓는 것, 그리고 실수가 적어야 할 것. 가장 기본적이지만 지키기가 어려운 업무다.
그 이후에는 내가 앞으로 맡을 프로젝트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의 클라이언트가 새로 맡기는 프로젝트라면 무조건 망설이지 말고 발을 담가본다.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윗 직급의 아트 디렉터와 시니어 디렉터에게 다가가 내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음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그리고 주니어 디자이너로서 내가 도울 것이 없는 지를 물어보고 돕는다.
그리고 마지막이지만 근본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디자이너로서 배울 스킬, 능력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획과 디자인을 모두 할 줄 아는 멀티태스커가 되고 싶은 생각에 브랜딩과 마케팅 전략에도 관심이 있다. 그래서 틈틈이 다른 팀의 콘텐츠 전략 디렉터에게 읽어보면 좋을 트렌드 보고서나 뉴스 사이트, 그리고 다른 클라이언트들의 브랜딩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구해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당장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프로젝트와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엄연한 명분이 있는 '딴짓'이다. 내가 회사에 내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만큼 나도 이 회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하는 것. 회사의 집요정 도비에게는 어쩌면 조금 덜 억울할 수 있는 마인드셋이라 생각한다.
수요일 오후 1시 정각. 시곗바늘이 1시를 가리키기가 무섭게 시니어 디렉터와 인사팀 매니저가 나를 호출해 콘퍼런스 룸으로 불러들였다.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내가 준비해 간 리스트들을 다시 한번 꼼꼼히 챙겼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샐러드를 한편에 두고 시니어 디렉터가 랩탑으로 나에 관한 서류를 찬찬히 살피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그가 나의 직속 매니저가 작성한 내 평가 일지의 몇몇 부분을 읽어주었다. (대부분 나의 성과와 내가 평소에 요구하는 업무들, 혹은 건의 사항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보태고 싶은 부분과 근거를 들어 디렉터와 인사팀 매니저와 상의를 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지금 내 클라이언트뿐만이 아니라 다른 클라이언트들의 프로젝트에도 참여를 하는 것, 그리고 격주로 매니저들과 회의를 통해 프로젝트 타임라인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시니어 디렉터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 짧은 1초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다행히 시니어 디렉터는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업무 평가가 다행히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세세하게 내 평가 일지를 써주신 직속 매니저와 장/단기 목표 업무 평가 템플릿을 건네주었던 시니어 디자이너 J의 도움이 제일 컸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사실 앞으로 1년 동안 해야 할 일이 더 불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 생각을 하면 앞으로 늘어날 야근과 체력적 부담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하겠다고 나선 이상 후퇴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조그만 칭찬에도 춤을 추고, 따끔한 조언에 정신을 차리는 당근과 채찍형 회사원이라 한동안은 또 바짝 군기가 들어 일을 할 것 같다. 그러다가 또 금세 지쳐 일찍 퇴근 못하나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겠지만...
학교와 회사는 비슷하다면 비슷하고 또 다르다면 다른 곳이다.
아직은 햇병아리 주니어 디자이너지만, 이번 달 카드 값과 며칠 뒤 들어올 월급을 생각하며,
내일 출근 준비를 하러 이만!
J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찔했을 것 같은 이번 업무 평가를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었던 업무 평가 템플릿.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2TtYmRm32wz0BAKDeQG6otardTNUMvLm3LPh4HsY-Hc/edit?usp=sharing
분기별 업무 평가를 대비해 구글링을 했을 때 도움이 되었던 미디엄의 한 포스팅.
https://medium.com/@mikeybrand/goals-for-designers-7391b98afb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