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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를 빛내 Jun 13. 2019

기대에 부응하는 햇병아리 디자이너가 되겠습니다.

햇병아리에게 있어서 멘토의 중요성이란. 

중학생일 적 나의 일상은 학원 공부 아니면 만화책으로 나뉜다. 

나의 집은 학교 후문을 벗어나 약 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다. 그 거리 중간에는 학생들이 자주 들리는 만화방과 컵볶이 집이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 신간이 나오는 날이면 하교 마자마자 가방끈이 끊어져도 모를 만큼 우당탕 달려가 주인아저씨한테 만화책이 들어왔냐고 묻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즐겨보던 만화책은 박소희 작가의 <궁>, 그리고 윤미경 작가의 <하백의 신부>였었다. 

다른 순정만화들도 곧잘 보았지만 나는 특히나 사극 풍의 만화책들을 즐겨 읽었다. 

내 용돈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만화책 빌리는데 지출하고 그것들을 집에 소중히 안고 들어오면, 만화책을 싫어하는 엄마 아빠에게 들킬세라 가방 안 깊숙이 숨겨놓고 밤에 자기 전에 읽고 또 읽었었다. 줄거리를 다 읽고 나면, 빈 무지 공책을 꺼내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고운 한복 의상이나 나비 떨잠 같은 장신구를 베껴그렸었다.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그것들을 베껴그리고 나면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내가 상상하는 세계의 주인공이 입을 법한 옷들과 장신구들을 상상해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상상에서 비롯된 작은 것들이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게 된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종종 빈 공책에 소설을 쓰고 표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쓴 소설들은 반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몰래몰래 돌려보았다. 연재 중이던, 완결이 난 글이던 상관없이 친구들은 자신의 대기번호 차례대로 돌려 읽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중2병 가득했던 한 여자애가 지어낸 오글거리고 다시 읽으라 하면 민망한 내용이었지만, 그때에는 열심히 친구들이 좋아할 것 같은 소재와 막장드라마 버금가는 전개로 다음 편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썼다.


이따금씩 나는 그때 쓴 글들과 그림들이 생각난다. 

물론 지금 내가 디자인하는 광고들과 글은 10년 전과 비교해 다른 무게와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나는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화지 (컴퓨터 스크린에 떠있는 아트보드)에 내 머릿속의 형체와 글을 옮겨서 보기 좋게 짓는 행위는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만화책을 베껴그리고 쉬는 시간에 소설을 쓰던 한 중학생 여자애는 10년이 지난 지금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 언어가 다르고 정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같은 팀에 소속되어 광고를 만들고 브랜딩 업무를 맡는다. 주니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큰 뼈대를 만드는 일을 할 '짬밥'은 아니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아트디렉터의 전두지휘 아래 열심히 로고를 만들고, 광고를 만든다. 


한 달전쯤, 우리의 팀에 한 아트디렉터가 새로 채용되어 들어왔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프리랜서로 활동했던 그녀는 (편의상 A라고 부르겠다) 들어온지 만 하루 만에 우리가 일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꿰뚫더니 40장 남짓한 클라이언트의 안내 책자 브로셔 프로젝트의 숨겨져 있던 오탈자를 귀신같이 찾아내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매의 눈을 갖고 있었다. 5개월 동안 2명의 프리랜서와 3명의 크리에이티브 팀이 놓친 실수들을 그녀는 출근 첫날만에 짚어낸 것이었다. 그녀는 OCD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강박장애, 정돈 행동, 확인행동) 덕분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A는 나와 내 또래의 한 주니어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트 디렉터 사이의 교각 역할을 했다. 출장이나 재택근무로 자주 자리를 비우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대신해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가이드하게 된 것이다. 


나는 A가 좋은 롤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나 재치 있는 입담의 소유자였지만 무엇보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종종 나를 포함한 주니어 디자이너들을 불러 앉혀놓고 어도비 소프트웨어의 숨겨진 기능이나 대형 프린트물을 출력할 때의 설정값에 대해 가르쳐주는 등 다양한 튜토리얼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들을 스펀지처럼 쏙쏙 빨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일을 잘 해내서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A는 내 상사이자 동시에 선생님과도 같았다. 당근과 채찍을 잘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따금 디테일을 미스하거나 아이디어가 막혀 작업이 진행이 되지 않을 때 A의 따끔한 조언이나 디렉션은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하기 어려우면서도 가까이 대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고 느꼈다. 


학교를 벗어나서 사회생활의 문턱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혼란과 당혹스러움은 무척이나 크다.  직장이라는 곳이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결과를 생산해내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곳이 아닌 배움의 장이여야 한다는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가 공감할 부분이다. 그런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좋은 시니어 디자이너, 좋은 멘토의 존재란 참 감사한 존재다.  '나는 어떤 디자이너가 될까?'라는 질문에 A는 바람직한 예가 되어준 사람이랄까. 아직은 2년 차지만, 나중에 내 뒤를 이어 프로젝트에 참여할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내가 어떤 선배로 보였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같은 반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열심히 그림과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중학생 작가의 즐거움과 보람이었듯이, 멘토의 조언과 기대에 부응하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쥐어짜 내고, 그것을 결과물로 옮겨야 하는 것이 한 햇병아리 디자이너가 요즘 회사에 다니며 경험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서 나중에 경력이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체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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