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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를 빛내 May 27. 2019

저는 잘 지내고 있는 걸까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은 무기력함을 불러온다. 

잘 지내고 있지?라는 안부 인사는 늘 어렵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검열과 반성을 요하는 질문이다. 



나의 2019년의 시작은 새 직장과 함께했다. 

소호에 위치한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에 출근해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다 보니 어느덧 벌써 5월의 끝자락을 마주하고 있다. 친구와 밥을 먹다가 문득 시간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점점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공감대를 같이 했었다. 정말 그러하다는 걸 요즘 톡톡히 느낀다. 


취업 비자를 받고, 정신없이 새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4개월이 훌쩍 넘었다. 

중간중간에 학교 후배들이나 주변 지인분들의 취업 비자 상담을 해드리면서 작년에 무척이나 고생했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 


"잘 지내? 나 뉴욕에 잠깐 출장 왔어. 시간 되면 우리 저녁 식사나 같이 하자." 

추운 겨울이 지겨워질 무렵, SNS로 날아온 한 통의 메시지가 나를 설레게 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마침 뉴욕 출장 겸 온 대학 선배의 연락이었다. 

과도 다르고 (나는 산업 디자인과였고, 그 선배는 패션 디자인과였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뜨문뜨문 마주치기만 했지 밥 한번 제대로 같이 먹지 못했었다.), 졸업도 나보다 훨씬 일찍 한 그 선배는,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도 직장 생활하면서 월급 벌어먹느라 정신없이 지내는데,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의외의 연락에 문득 학교를 다닐 때 그 선배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뉴욕에 오면 밥 한번 먹자'라는 연락은 메마른 생활에 지친 나에게 있어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느라 서로 메신저를 들여다보는 시간도 자꾸 엇갈려 어렵사리 평일 저녁에 외진 일본풍 재즈바에서 만나 안주를 저녁 삼아 술 한잔 하기로 했다. Speakeasy Bar (19세기 초, 금주령으로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간판도 없이 숨어서 운영하는 술집) 콘셉트로 무심코 지나치면 찾기 힘든 어느 주택가 반지하에 위치한 작은 술집이었다. 명란 파스타와 오므라이스가 맛있어 종종 들리는 술집이었다. 


웨이터가 건네주는 메뉴판과 물컵을 받아 들고 선배를 기다린 지 어엿 10분쯤 지났을까, 추운 겨울 칼바람을 뚫고 선배가 술집에 들어섰다. 학생 때 통통한 젖살이 빠지고 이제는 이십 대 후반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더 멋있어진 선배의 얼굴이 나는 무척 반가웠다. 회사에서 막 퇴근하고 온 직장인의 복장이 우리가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본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깨닫게 했다. 


"잘 지내고 있었어? 어떻게 지냈니?" 라며 선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 글쎄요.."


몸 건강하고, 직장도 잡혔고, 부모님 무탈하시고. 

잘 지내요, 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와야 할 텐데 왜 나는 머뭇거렸을까. 분명히 잘 지내고 있는데 내 일상과 삶에는 무엇인가가 빠진 듯 공허했다. 


선배의 물음에 나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그냥 그렇죠, 뭐'라고 얼버무렸다.  


그러게, 나는 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지? 

나는 열심히 살고 있나? 왜 다들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즐겁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하는 것 같지? 그 날 저녁은 맛있었고, 칵테일은 달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던 이야기들은 공기 중으로 흐트러졌고, 크게 울려 퍼지던 음악은 장르를 바꾸어 흘러나왔다. 

선배와 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그녀는 곧 뉴욕에서의 볼일을 마무리 짓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날 그때의 선배의 질문에 답을 못한 것 같은 찝찝하고 무거운 느낌을 안고 돌아와 지금까지도 답을 못한 채 여전히 끙끙대고 있다. 


내 주변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음악을 좋아해 한강에서 버스킹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길 좋아하는 한 후배가 있는가 하면, 밤을 새우며 촬영장에서 연극 연출일을 도우던 중학교 동창 친구는 어느덧 자기 이름으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올리기까지 했다. 언젠가 자기가 디자인한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한 언니도 있다. 그들은 좋아하는 것이 뚜렷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 궁리하며 동분서주한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는데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좋아하던 것에 대한 열정이 나무장작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지금은 하얗게 타고 재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은 남자 친구에게 '요즘 나는 우주 속 먼지같이 느껴져.'라고 말하며 엉엉 운 적도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던 그에게 살짝 미안해질 정도였다. 

스펙과 능력을 줄자로 재단하고, 경쟁을 붙이는 사회의 영향인 걸까? 언제부턴가 좋아하던 것에 대해 열정을 갖고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서까지 경쟁을 붙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수레를 질질 끌고 가는 동안 그들은 F1 경주 자동차를 몰고 슝하고 앞서가는 느낌이 든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과, 과제가, 그리고 졸업 논문이 나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열심히 답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사회인이 되고나서부터는 그 질문을 하는 주체가 내가 된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는 가끔 오지선다형을 넘어서 무한대의 선택지로 넓혀지는데 그것이 때로는 숨을 턱턱 막히게 버겁다. 햇병아리인 나는 그래서 오늘도 나의 자신에게 할 질문을 신중히 고르고 또 고른다. 나는 잘 지내고 있는가? 


글을 쓰는 행위는 마치 일기처럼 나에게 치유의 역할을 한다. 브런치는 나에게 그런 존재라는 걸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느낀다.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리고 답을 얻는다. 제 아무리 내가 먼지같이 느껴지는 날이 있더라도 나는 계속 찾고 또 찾아 나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이 자갈처럼, 바위처럼 크게 커져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제 아무리 내가 먼지같이 느껴지는 날이 있더라도,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자갈처럼, 바위처럼 크게 커져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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