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들이 일상을 보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퇴근 후 뉴욕은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가끔은 내가 거대한 어른들의 놀이터에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길거리 곳곳에 숨은 보석 같은 레스토랑이며 카페, 그리고 자잘한 가게들부터 대형 랜드마크들. 하나하나 다 찾아가는 재미에 제 아무리 오래 머물렀어도 전혀 질리지가 않는 도시가 뉴욕이다.
그 뉴욕에서 매주 열리는 다양한 이벤트와 액티비티들은 또 어떠한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기발하고도 신기한 이벤트들이 무척이나 많다. 게다가 지금은 7월,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이 곳 사람들이 제일 사랑하는 계절이다. 겨울 내내 두꺼운 외투를 싸매고 동면하던 이들이 개화하는 꽃처럼 활짝 피고 벌처럼 부지런히 활동하는 시기. 오늘은 뉴요커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퇴근 후 뉴요커들의 일상을 엿보고자 한다.
뉴욕의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는 워낙 무궁무진해서 조금만 검색해도 로컬들이 즐겨 찾는 진정한 맛집을 찾아볼 수 있다. 미슐랭 스타를 훈장처럼 달고 있는 파인 다이닝 Fine Dining 레스토랑들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서비스와 기발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요리한 메뉴들을 내놓기 때문에 눈으로 즐기고, 냄새를 맡고, 혀로 음미해보는 진귀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처음 한 두 번은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영수증에 적힌 숫자를 보고 경악할 수도 있지만, 파인 다이닝을 좋아하는 미식가들은 이 곳이 단순히 음식의 재료값과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디자이너들에게는 창의적인 플레이팅과 퍼포먼스. 그릇이나 포크, 메뉴의 디자인을 포함한 브랜딩을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ELEVEN MADISON PARK나 MOMOFUKU KO 같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는 식사가 끝난 후 주는 초콜릿이 담긴 상자에 고급 소재로 감싸고 그들의 로고를 집어넣거나 오늘 내가 먹어보았던 코스 요리의 재료와 설명이 담긴 메뉴에 고객의 이름과 기념일을 축하하는 멘트를 넣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느껴볼 수 있게 한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을 방문하며 먹은 사진을 포스팅하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Ellen Ost, 이따금씩 올라오는 그녀의 귀여운 고양이 사진은 덤이다. https://www.instagram.com/ellenost/?hl=en
*Time Out에서 소개한 뉴욕에서 꼭 가봐야 하는 레스토랑 100곳 웹사이트 링크
https://www.timeout.com/newyork/restaurants/100-best-new-york-restaurants
집에서 요리를 해 먹기 귀찮은 날, 혹은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는 날이면 늘 의식처럼 구글맵을 켜서 친구와 내가 만나기로 한 동네를 훑어본다. 아, 위대한 지성과 기술의 집약체, 구글맵! 내가 구글맵 예찬론자인 이유는 편의성과 신뢰성을 꼽을 수 있는데, 내가 가보고 싶은 가게나 레스토랑을 저장해놓고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능이 잘되어 있고, 또한 경험상 평점이 4점 중 후반대의 레스토랑들은 믿고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또한 뉴욕에 놀러 온 친구가 나의 베스트 프렌드고, 관광객이 넘치는 곳이 아닌 진정한 로컬 맛집을 알려주고 싶다면 살포시 공유 기능을 눌러서 내가 알뜰살뜰 모은 맛집 리스트를 전달할 수 있다.) 물론 더 신중한 성격이라면 사람들의 리뷰와 사진을 보고 내가 원하는 분위기인 곳인지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6년 차 뉴요커로 살아본 결과, 좋은 레스토랑에는 언제나 줄이 있기 마련이다. 1시간 동안 배고픔과 싸우며 기다리는 동안 친구에게 점점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여주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가고자 하는 레스토랑에 예약을 하고 찾아가는 것은 필수다.
카페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단순히 카페인 충전을 위해 눈에 보이는 가까운 카페나 스타벅스를 찾는 게 아니라면,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는 좀 더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검색이 필요하다. 커알못이었던 내가 맛있는 카푸치노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여기게 된 데까지는 커피를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의 영향이 꽤 크다. 직장인들에게 식곤증이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시간 오후 3시, 책상을 박차고 나와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마시는 플랫 화이트는 잠시 컴퓨터 모니터의 블루라이트에 시달린 두 눈을 쉬게 해주는 휴식처와 일상에 대해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인 스트레스 해소처가 된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카페의 호불호는 갈리기 때문에 어디 카페를 무조건 가보라고 강권할 수는 없지만, 조심스럽게 추천하자면, 내가 자주 찾는 카페는 Birch Coffee (이곳의 oatmilk를 넣은 카푸치노는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풍부하게 느껴져 제일 좋아한다), Variety Coffee 그리고 Stumptown 이 세 곳이다. Variety와 Stumptown은 주말에 책 한 권을 가지고 나와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종종 찾는데, 공간이 꽤 있어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업무나 독서를 즐기기가 좋다. 이 카페들은 커피 원두들도 로스팅해서 판매, 유통하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무심코 들어선 다른 작은 카페들이 이 브랜드의 원두를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이 카페 브랜드들의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도 다뤄보고자 한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지독한 집순이이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편한 잠옷 차림에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침대와 한 몸이 되는 것을 사랑하고, 그것이 내 일상임을 아무렇지 않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맨해튼에 나와 살게 되면서 나의 이런 집순이 성향을 바꿔놓을 만큼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센트럴 파크에서 친구들과 하는 피크닉이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초록 잔디밭,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맥주와 와인들, 그리고 나무 밑 시원한 그늘에 누워 신선놀음을 즐기다 보면 짧은 주말이 아쉬울 정도다.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캐치볼이나 럭비공을 던지며 놀기도 한다. 10불 후반대의 저렴하지만 맛있는 와인 몇 병과 안주거리들을 들고 돗자리 위에서 즐기는 친구들과의 피크닉은 어느덧 연례행사가 될 정도로 여름에는 필수적인 액티비티가 되었다. 센트럴 파크에서는 Sheep's meadow, 윌리엄스 버그의 Domino Park, 브루클린의 Brooklyn Bridge Park 등등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뉴욕 곳곳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으니, 일에 치이는 힘든 한주를 보냈다면 주말에는 마음껏 광합성을 하며 여름을 만끽하는 것이 힐링의 좋은 예가 아닐까.
맨해튼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칵테일이나 한잔씩 마시면서 루프탑 바에서 보는 것이다. 맨해튼은 Manhattan henge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름의 노을이 가장 예쁜 도시 중에 하나인데, 날씨가 좋은 여름날 루프탑 바에 앉아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수채화처럼 물들이는 로즈골드빛 하늘을 감상할 수가 있다. 햇빛이 수많은 고층건물들의 유리창들을 반사하면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광경도, 깜깜한 밤에 수백, 수천만 개의 불 켜진 오피스 건물들의 물결 또한 놓칠 수 없는 광경이다. 저 바쁜 도시 풍경을 바라보면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들은 사회생활을 하게 된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당신이 새내기 직장인이라도 바 출입을 담당하는 바운서 Bouncer는 당신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성인인지 알 수 없다. 신분증은 꼭 챙기자.
뉴욕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구나라는 걸 또 한 번 깨달은 곳은 다름 아닌 헬스장에서이다. 새벽 4시에 헬스장에 출석 도장을 찍으며 아침의 포문을 여는 뉴요커들의 부지런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한번은 새벽 6시 반에 필라테스 수업을 수강했다가 금세 나가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퇴근 후 집에서 홈트레이닝 비디오를 보면서 따라 하는 걸로 만족하기도 했다. 많은 뉴요커들이 시간을 분단위로 나눠 쓰며 일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임을 옆에서 지켜보며 드는 반성은 덤이다.
실제로 맨해튼은 뉴요커들이 운동하기에 정말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맨해튼 한가운데에 위치한 센트럴파크는 59가 콜럼버스 서클에서 110가 할렘에 이르기까지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완주할 수 있는 기다란 러닝 코스가 있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곳을 뛰는 러닝 동호회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또한 뉴욕 전역에는 수많은 헬스장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이들은 경쟁적으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늘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예전 포스팅인 아모리 쇼 방문기 'https://brunch.co.kr/@wisdomtooth/11 ' 에서 소개했듯이 뉴욕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갤러리들이 상주해있다. 그곳에는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부터 큐레이터가 야심 차게 내놓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첼시 갤러리부터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아름다운 브라운 스톤 건물들 안에 숨어있는 갤러리, 차이나 타운의 중국인 가게들 틈에서 온갖 개성과 감성을 자랑하는 신진 작가들 갤러리들까지. 이 갤러리들을 하루에 한 지역의 갤러리들을 돌아도 다 못 볼 정도로 부족하다.
더우면 갤러리 내의 벤치에 앉아 쉬면서 잠시 땀을 식히면서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을 노트에 적어놓고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작품 전시를 직접 전두 지휘한 큐레이터에게 설명해달라고 당당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대부분 큐레이터들은 당신의 물음에 자신 있게 작가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말해주려고 할 것이다. 교과서나 인터넷으로 작품 사진을 보는 것보다 직접 발로 뛰며 감상하는 것이 제일 생생하고 가슴에 와 닿는 감상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