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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Oct 27. 2023

자연은 비약하지 않다

10월의 나 홀로 등산


     

아침마다 운동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동네의 나뭇잎들이 울긋불긋하길래 며칠 전 없는 시간을 쪼개어 등산을 다녀왔다. 혹시나 이번 가을 단풍 덮인 산을 내 눈에 담지 못하고 흘려보낼까 싶은 마음에.     


 

몇 번 다니다 보니 이제 차를 대는 최적의 장소도 한 번에 찾게 되었고 등산로 입구에서도 더 이상 헤매지 않았다. 등산복이나 등산화, 스틱 따위는 갖추지 않고 그냥 평소에 아침 운동 갈 때와 똑같은 복장으로 러닝화를 신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이 흐리기도 했고, 수요일 오전 시간이기도 해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등산로에 들어서자마자 내 앞에 가던 아저씨를 살짝 앞질러줬는데 그 아저씨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계속 스틱 소리를 내면서 뒤따라와서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이번 등산의 목적은 대외적으로는 가을산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서였지만, 내적으로는 작년의 나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작년 이맘때 첫 나 홀로 등산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 기억으로 검단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 1시간이 걸렸기에 이번에는 그 시간을 단축시켜 보자는 나만의 목표를 세우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갔다.

     

검단산을 오르는 경로가 3군데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가족과 함께 올 때는 조금 더 완만한 길을 택하고, 혼자 오를 때는 조금 더 가파른 길을 택한다. 가파른 길을 쉬지 않고 오르다 보니 중간중간 1~2초 정도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한번 후 내쉰 적은 있지만 물도 마시지 않고 정상을 찍었다.      


시간을 체크해 보니 54분~!

    

오~작년보다 기록단축~작년의 나를 뛰어넘었네~장하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의 100m 달리기 모습을 한 화면에 보여주면서 <작년의 나 vs 올해의 나>를 비교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와 비슷한 장면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 이번 등산의 또 다른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구나.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 성취감을 통해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내려오는 길에 길게 보였던 내 그림자만큼이나, 위로 위로 쭉쭉 뻗은 나무들만큼이나 당분간 내 자존감도 뿜뿜 하겠구나.      


비록 울긋불긋 알록달록한 세상을 보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눈앞에는 구름인지 안개인지 자욱이 덮인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귓가에는 위에서 아래로 순리에 따라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 소리가 들리고, 새로 산 폰으로 찍어본 팝콘 같은 꽃 사진까지 더해져 내 마음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워졌다.      



내 오른쪽 팔뚝에 새긴 ‘자연은 비약하지 않다’는 문구를 오롯이 느끼며 비약하지 않은 자연에서 기운을 얻어 비약했던 내 자신을 위로하는 날이었다.     


아마도 11월 초중순 정도에 한번 더 등산을 하게 될 것 같다. 제대로 단풍에 물든 산을 보기 위해, 그리고 또 그때까지 흔들릴 상처받을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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