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광대스러움에 대하여
제가 지난 3년 동안 침대 위에서 배운 건,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서라도 사람은 무엇인가 배울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이라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병원의 창문에서는 항구가 보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항구까지 걸어가 바다 내음을 가슴 가득히 들이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이 왜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라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침대 위에서 생을 끝낸다고 해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며칠 전, 올해 마지막으로 부산에 다녀왔다. 이제 부산에 가는 첫 번째 목적은 요양원에 입원 중이신 아빠를 잠깐이라도 보고, 이름에 사내‘남’ 자가 들어가 가장의 역할을 하는 거라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엄마를 잠깐이라도 위로해 주기 위해서지만, 더 큰 목적은 내 마음 편하자고인 것 같다.
부산에 내려가는 행위를 SNS나 주변 지인들에게 효도하러 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딱 나의 마음이다. 나를 보는 것이 그들에게 위안이 되는지, 힘이 되는지, 기쁨이 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을 보고 오면 어느 정도는 마음이 가벼워지기는 한다.(물론 쇠약하고 지쳐 있는 모습을 봐서 또 한편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이번에 아빠가 하루에 한 번씩 휠체어를 타고 바람 쐬러 나간다는 공간에 같이 가보았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그 공간을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실 와병 환자를 휠체어를 태워 병실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몸에 달린 줄들, 살갗에 꽂힌 주사 바늘들을 잘 잡은 채로 살은 빠졌지만 이상하게 무게는 더 나가는 것 같은 아빠를 부축해 휠체어에 앉히고 가디건을 입히고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를 씌우고 담요를 덮이고 슬리퍼도 신겨야 한다.
그냥 양말을 신은 채 휠체어를 타도 크게 상관이 없을 텐데 슬리퍼를 안 꺼내주면 짜증을 낸다. 본인의 목소리가 작고 말이 어눌한 것보다 우리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 화를 낸다. 그래도 최대한 비위를 맞추어 겨우겨우 병실 밖을 나와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다.
드라마에서 보던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진 옥상정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휑한 옥상인데 여기가 하루에 한 번 아빠가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에 자식으로서 속이 상한다.
요양병원도 시설과 규모에 따라 병원비가 다른데, 지금 아빠가 계신 곳은 글쎄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봐야 할지. 사실 그전에 잠깐 더 열악한 곳에 있었던 적이 있어서 그나마 지금 있는 곳이 더 나은 것은 알지만 여기보다 훨씬 좋은 곳이 왜 없겠는가. 그런 곳으로 모시기는커녕 지금 지내는 곳의 병원비도 책임 아니 일부 보태는 것도 쉽지 않음에 덩달아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휠체어를 밀고 좁은 옥상을 몇 바퀴 돌다가 저 멀리 낙동강이 보이는 방향에 잠깐 멈춰 섰다.
왜 멈추냐 묻는다.
“잠깐, 저기 강 좀 보라고.”
“... 보면 뭐하노...”
“...”
이 좁은 옥상 그럼 돌면 뭐 하는데 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애써 참아본다.
내 나이 또래 일반인들 치고는 아마 내가 책도 많이 읽겠지만, 그 책들 중에 종종 죽음을 앞둔 또는 직업적으로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에세이집을 많이 읽어왔다. 그런 글들에서 보면 아프고 힘든 와중에도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환자들, 또는 병상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공부를 하거나 아무튼 무언가를 남기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아빠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건 무리인 걸까. 건물 바깥으로 보이는 푸른 강물이나 하늘의 구름 한 조각으로도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건 너무 내 위주인 걸까. 아빠 역시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어왔는데, 병상일기라도 써보라고 권유하는 것은 이기적인 걸까.
금토일, 사흘을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열이 39.4도까지 올라 엄마와 내가 갔을 때 많이 힘들어하고 짜증을 냈었다. 열이 나면 이불을 걷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어서인지 자꾸만 이불을 덮으라고 했다. 몸만 덮으라는 게 아니라 얼굴까지 덮으라고 했다. 자기 얼굴도 보여주기 싫고 우리도 보기 싫다는 뜻이었겠지.
속상한 일이 있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그 속에서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들었다가 잠에서 깨면서 툴툴 털고 일어난 적을 떠올려보니 얼굴을 덮으라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얼굴까지 이불을 덮은 아빠는 그 이불 밑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편에 몸을 실어야만 했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가장 오래도록 가장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부모자식 관계일 것이다.
45년 동안 나의 아빠였고 아빠이고 앞으로도 얼마 동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의 아빠일 사람에게 바란다. 이불을 덮은 그 속에서 몸은 점점 더 굳어가겠지만 부디 마음만이라도 툴툴 털고 가벼워 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