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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29. 2024

중단 없는 사랑
- 영화 <헤어질 결심>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20

오늘 발행할 초고를 보냈더니 동선 작가님이.

그럴 때 있지 않나요? 할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입술만 달싹거리고 말이 터지지 않는. 이번 회차가 그랬어요. 캡쳐해 놓은 것도 많고 하고픈 말도 많고. 그냥, 여기, 가슴에, 뭐가, 막, 넘실대는데, 그걸 싹 게워내면 좋겠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저를 너무 잘 아는 동선 작가님 예상대로 대폭 늘어난 분량. 이런 공산당!)


16시간이라는 시차 때문에, 그리고 8000km라는 거리 때문에 본격적으로 책 만들기에 돌입하고부터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열린 아침 '메일' 회의. 누가 먼저랄 것도, 언제 끝난다는 말도 없이, 휙휙 날아들고 날리는 편지, 편지들. 그러다 보니 뭘 하나 찾으려면 메일함에 고갤 처박고 눈알 빠지게 뒤져야 할 정도로 쌓인 편지 더미. (그 더미 속에서 오늘 새벽 찾아냈어요. 내고야 말았어요!)


거의 다 나오긴… 꿈도 야무져라!

동선 작가님이 설마 이 글을 기억하고 말한 건 아닐 거예요. 동선 작가님은 걸핏하면 남다른 기억력으로 평생 고생했다구 하는데… 글쎄요. 어째 그 유별난 기억력은 결정적인 순간에 시치미를 뚝, 떼는 건지. (예를 들면, 지난 토요일 같은 경우에 말이에요. 안 그래도 혼이 쏙 빠져 있는데, 도움은 못 줄 망정 삐질삐질 식은땀 나게스리.)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처음 볼 때만 해도 잘 만들었구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 궁합 참말 부럽네, 이 감독이 마침내 어떤 꼭대기에 이르렀구나, 모든 면에서… 그랬어요. 그게 다였고 리뷰도 그리 썼고. 영화보단 영화 너머, 어떤. 그런데 이상하죠? 한 번, 두 번자꾸 보게 되더라고요.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안개 같은 '모호함'이 저랑 통해서 그런가. 볼 적마다 다른 장면이 보이고 다른 대사가 들려와 막 쓰고 싶게. 그래서 썼어요. 이렇게 저렇게. 그러면서 동선 작가님하고 드문드문 이야길 나누기도.




(이어서) 

짧게라도 글쓰기에 대해.


형식적인 부분 그러니까 기술적인 건 어찌어찌 배우면 될 것도 같았다. 쉬울리야 없겠지만. 내 보기에 중요한 건 '틀'에 담길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런 글이다. 쓰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마땅한 쓸 거리를 찾고 자료조사하고 기술자처럼 틀에 맞춰 재단하는 게 아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글을 냅다 받아쓰는. 형식이고 나발이고 없이. 내 안에서 미쳐 날뛰는 뜨거운…. 그 글이 시쳇말로 문학도 뭣도 아닌 글이라도. 아무튼 나는 일단 그걸 좀 비워내야 틀이 보이고 거기에 담길 내용을 찾아 나설 마음이 생길 것 같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뭘까?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잘 전달하는? 말하고자 하는 걸 미학적으로 뛰어나게 표현하는? 기존에 없던 문체로 그 누구도 한 적 없는 이야기를 하는? 뭐든, 몇 번은 할 수 있을 지도. 죽을 듯이 노력하면. '틀'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세상과 인간, 자연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현상과 사건에 대한 남다른 시선과 사유. 어디서 주워듣고 본 걸 내 것이라고 착각해서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좀 부족하고 엉성해도 오롯이 나만의 느낌과 생각인. (그런 이유로 줄거리 없이 리뷰 쓰기를 연습 중이다.) 그러려면 오랜 시간 공들여 들여다보고 파헤치고 읽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고통스러우면서도 기뻐야. 뭣보다 오래, 깊이 쓰려면 당연히 재능과 열정도 있어야겠지만 그보단 자기만의 시선과 품격 있는 사유, 그리고 세상과 인간과 자연과 맞닿고 소통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그게 자신 없었다. 비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더듬이가 지금 당장 그쪽으로 향하지 않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에 놓인 간극을 메울 재능도 열정도 없다. 많은 나이와 암 환자라는 건 둘째 치고라도. 이야기가 부글부글 끓어 넘쳐도 될똥말똥한데, 쥐어짠 글로 틀을 채울 마음이 지금으로선 눈곱만큼도 없거니와 그렇게까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없다. 그런 글만  '글'이고 내가 쓰는 글은 '글'이 아니라면… 그런가 보지, 뭐. 그럼에도 글에 대한 방향성은 있다.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세상은 사사건건 물었다. 서래에게 밀려들던 밀물처럼, 숨 막히게.'


얼마 전 영화 <헤어질 결심>를 보고 쓴. 상식.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은 뭘까? 그 '상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처럼 일반적이고 보편적일까? 그러면 그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건 정말 '일반'적이고 '보편'적일까? 말꼬리 잡으려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하다. 암이라는 질병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암 환자가 되기 전까지 암은 내게 일반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았다. 그때 내게 암 환자가 사는 세상은 버젓이 있으면서 없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암 환자의 현실과 생명존중은 안중에도 없고 이윤추구에만 눈이 벌건 의료계 현실, 환자 주머니 사정은 뒷전인 의료보험의 불합리함이 있는 세상이 나한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세상이 되었다. 질병과 죽음에 이토록 무지하고 무관심한 사람이 넘쳐나는 비상식적인 세상 또한. 여성, 장애, 소수자, 지구온난화, 동물권, 실업, 난민, 가난, 폭력, 전쟁, 사회 불평등, 아동학대, 질병…. 내 일로 닥치기 전까지 이런 주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수준의 상식을 갖고 있으며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연애질이나 하겠다니까 그 '연애질'을 이성 간의 연애로 오해하는 사람들이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또한 포함되어 있는 건 사실이니.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연애질은 세상과 인간과 자연을 끌어안는 비인본주의적 연애질이다. 삐딱하고 다르게. 그러면서 중단 없는. 쓰게 된다면, 쓴다면, 그 연애질을 쓰고 싶다. 언젠가. 언제까지라도.


문제는 자꾸 딴 길로 샌다는. 근데 그게 너무 재밌다는. 이름하여 농땡이.


삐꾸눈 막걸리 트럭 뒤꽁무니 따라와서 그런가. 술 한 잔 안 마시고도 술주정하듯 횡설수설… 어푸, 취한다.


이런 글쓰기가 그렇게 나쁩니까? (2022년 칠월에.)




뚝, 끊긴 사랑을 향해 빛처럼 뻗어나가는, 그럴 줄밖에 모르는, 보일 듯 말 듯… 잡힐 듯 말 듯… 한 서래, 그녀의 그 마음은 뭘까요. 1년 전, 한 달 전, 아니,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보고 만지던 이의 증발. 그 감쪽같은 사라짐에도 컴컴한 어둠으로 질주하는 그 마음은. 땀내 나는 그 담박질. 등 돌린 사랑 앞에서 우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밥알을 어떻게 씹어 삼키고 어떤 표정으로 떨어지는 오후 햇살을 바라봐야 할까요? 잔뜩 펼쳐놓은 마음은 어떤 모양으로 접어야 하고 한껏 벌린 두 팔은 언제 오므리고? 다른 별, 그 어떤 우주에서도 만나지 마.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마주치지도 마. 가 잘 가. 머뭇대지도 질척이지도 않고 멀어지는 이를 향해 흔드는 손짓. 거둔 마음에 대한 깍듯한 배웅. 철갑처럼 차디 찬. … 서래, 그녀는 좀 달랐어요. 할큄과 뜯김의 내버려 둠. 상처를 겁내지 않았달까. 아니, 어쩌면 사랑을.


'음, 우리가 다시 만났더라도 옛날과 다른 뭔가가 시작되진 않았을 것이다. 혹 만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는, 드러낼 수 없는 사랑만이 제자리에서 (누군가는 바보 같은 결말로 이어지거나 쓸쓸하게 감정이 식고 말 것이 두려워 승부수를 두지 않는 이런 사랑을 두고,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달콤한 실개천이나 지하의 암반수처럼 계속 살아남는 것이다. 그 위를 덮은 이 새로운 정적과 봉인의 무게를 안은 채 그 어떤 모험도 무릅쓰지 않고.' (앨리스 먼로, <쐐기풀> 중에서)


달겨들고 무릅쓰지 않아 잃어버린 달콤함은 얼마나  많고 많을지. 그런데요 무릅씀과 승부수의 눈을 비껴 흐르는 실개천도 있어요. 있지 않을까요. 그 어떤 모험도 무릅쓰지 않는, 쓸 수 없는제자리. 쉬이 내보일 수 없는 요와 돌덩이를 끌어안고 흐르는, 흐를 수밖에 없는 달고도 쓰디 쓴.


영화 <고스트>는 <고스트 스토리>의 오타!



"아, 씨발. 내가 사랑한다구! 내가 사랑해서 이러는 거라구! 근데 뭐! 형님이 뭐! 씨발. 내가 사랑해서 식혜를 팔든 수정과를 팔든, 뭐가 문제냐구!" (이기호, <누가 봐도 연애소설> 중에서)


오래 곱씹은 글귀….


어느 소설가가 한 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그렇구나. 사랑은… 시름시름하고 곰새 시들해질 누군갈 상상해 주는 거구나. 세상 그 누구보다 근사하고 빛나게. 우산 없이 나섰다 비를 만난 어느 여름 저녁, 영화 <헤어질 결심>을 또 봤어요. 다섯 번째던가 여섯 번째였나. 후려갈기듯 쏟아지는 빗줄기에 홀딱 젖어 돌아와 누운 그 밤, 귀에 마음에 들러붙은 어떤 말. 습하고 끈끈한 공기를 가르고 달려와… 척. 마음보에 꿰매놓고 허구한 날 질겅질겅 되새겼더니 고만 피딱지가 된, 피비린내 진동하던 그때 그 말.


"아, 됐고… 가인이한테, 너때매 고생깨나 했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주세요."


너때매 고생깨나 했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고생깨나 했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내 인생 공허했다… 공허했다… 너 아니었으면… 공, 허, 했, 다………… 너 아니었으면.


요즘 곱씹는 글귀는 모니카 마론이 소설 <슬픈 짐승>에 쓴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아프고 나서 몰려온 까닭 모를 허기에 휘적휘적, 어지러운 꿈길을 걸으며 읽고 보고 쓰고.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이지러져… 숱한 날을 접으며 당도한 이 계절. 일만 겁 인연, 씀벗 동선 작가님이랑 2년 가까이 수다 떨면서 쓴 글을 모아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를 냈어요. 그리고 지난 토요일, 열린 출판 기념회. 눈 뜨기 싫은 이른 주말 아침, 용인에서 달려와 진행해 준 폴폴 작가님, 감사해요. 그 새벽, 수원에서 달려와 궂은일 도맡아준 인정 씨, 또 고마와요. 대구에서, 여주에서, 경기도 광주에서. 연천, 강화, 예산, 파주, 인천…. 바다 건너 먼 캐나다에서, 미국에서, 호주에서, 일본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여기, 당신, 당신들.



그날, 저는… 봤어요. 사랑의 얼굴, 얼굴들. 제가 편애할…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매끄럽지 못한 진행으로 듣지도, 입도 벙끗 못하게 해서… 죄송해요.. 우리 사이, 못다 한 이야긴 글 오솔길 걸으며 마저 나누어요. 속닥속닥.


그날(출판기념회)표정, 표정들.



이날을 위해 동선 작가님이 답례떡에, 간식에 붙이고 케이크에 넣으라고 만들어 준 그림. 영화 <토니 에드만> 그림은 답례로 준비한 뜨끈뜨끈 백설기랑 방금 만든 모나카 위에 스티커로, 딱! 책 제목은 큼지막하게 뽑아서 가방에, 떡허니! 표지 그림은 케이크 위에, 사사삭! 혼이 쏙 빠져나가는 바람에… 케이크는 자르지도 못하구. 흑.

                        


바로 먹어야 바삭, 맛있대서 스티커 붙이고 어쩌구 정신없을 줄 알면서도 행사 직전 오토바이 퀵으로 받아놓고도 넋이 나가서 지금 바로 드시라는 말을 까먹는 바람에 짜부된 모나카…. 자기 차례 돌아오면 말하려고 적어뒀다는 캐나다 세라 작가님이 뽑은 한 문장. (그러나 돌아오지 않은, 못한 '차례') 그럼에도 테이블마다 놓아주고 싶었다며 그녀가 보낸 꽃.


이날 전시를 위해 동선 작가님이 다시, 작업한 영화책 <영화처럼 산다면야>에 수록된 영화 포스터 열 장.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사람>, 영화 <남색 대문>, 영화 <박쥐>, 영화 <체리향기>, 영화 <파라노만>, 영화 <업>, 영화 <시>, 영화 <죽어도 좋아!>, 영화 <토니 에드만>, 영화 <500일의 썸머>. 여러분 눈에 마음에 와닿은 동선 작가님 작품은 어떤 걸까요?



그날 현장에 온 분들 눈에, 마음에 젤 와닿은 작품은… 영화 <죽어도 좋아!>!



조조 모예스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더 라스트 레터>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한 문장'으로 시작해요.


'당신과 함께 없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예요.'


고요와 돌덩이를 끌어안고 흐르고, 흐를

사랑 땜에 고생깨나 했어도 사랑으로 인생 공허하지 않은, 않을…

헤어질 결심 따위 개나 줘버리고 영원히 당신의 미제 사건이고픈…

바람등에 올라타고 시리고 푸른 어둠 향해 날아가는 검은 새 한 마리,

난 사랑이에요. 중단 없는.


이 방학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 여름이.



글 제목은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 글귀에서 인용, 변주했어요. 그림은 동선 작가님이 아이디어 내고 그린 스캐니메이션을 활용한 책 표지고요. 보자마자 반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선택되지 못해 퍽 아쉬운. 블로그 이웃으로 만나 오랜 독자였다 기꺼이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의 편집자가 되어준 출판사 위시라이프 전미경 대표님, 감사해요.


지난 유월, 설렘과 떨림으로 시작한 이 매거진도 어느덧 끝에 다다랐어요. 돌아볼 요량으로 시작한 이 매거진은 돌아봄과 나아감을 동시에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침내 닻을 내릴 곳이, 어딘지, 지금은, 몰라동선 작가님과 저는 돌아보며 예까지 흘러왔고 어디론가 흘러가는지라. 여기, 당신, 당신들도, 영화롭게, 흘러가시길요.


당신에게 부치는 '더 라스트 레터'가 될,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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