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어 강을 따라 걷다.
호텔에서 보낸 기간 중 이삼일은 주변 지리도 익힐 겸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돌아다녔다. 호텔에서 준 도시 지도를 꼼꼼히 보며 내가 다닐 대학교를 먼저 가보기로 했다. 일부러 시내로 접어들지 않고 낡은 건물과 골목으로 들어찬 시내 옆길을 택했다. 지도를 보니 레스터 중심을 관통하는 소어 강을 따라가다 보면 드몽포트 대학교를 만날 수 있다.
벨그레이브 게이트 길을 지나 강을 따라가다 보면 녹지가 많아 도시 전체가 공원과도 같다. 레스터는 얼마 전까지 의류 제조업 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골목 골목에 더 이상 작업을 하지 않는 오래되고 작은 공장들이 눈에 띈다.
강 위 다리를 두어개 건너가다가 초원처럼 펼쳐진 랄리 파크(Rally Park)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축구를 하건 풀밭을 뒹굴건 내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넓다란 공원의 모습에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영국은 인위적으로 공원을 만들기보다는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둔다.
공원 한켠은 스케이트 보더를 위해 근사한 경주용 로드를 만들어 놨다.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들에 눈을 빼앗기다가 보니 어느새 캐슬 가든(Castle Garden)에 도착했다. 에비 파크와 랄리 파크가 대형 공원이라면 캐슬 파크는 오솔길과 소어 강 주위로 나무와 풀숲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곳이다. 이 작고 아름다운 정원이 학교 옆에 있다니... 학교에서 수업하다가 점심에 이곳에 와서 풍경을 음미하며 샌드위치 한입 베어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았다. 이 작은 공원은 빅토리안 시대에 캐슬 가든 옆에 병원이 있었는데 환자들을 위한 산책 공간으로 조성된 곳이다. 지금은 역사적인 곳임을 알려주는 이정표만 남아있다.
공원 바로 옆에 학교로 들어선다. 도시 전체가 대학 교정인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드몽포트 대학도 도시의 꽤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래된 빅토리아 시대 건물과 모던한 건물, 친환경적인 건물 등이 섞여 있는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를 보니 감개무량하다. 학교 다닐 나이를 지났음에도 교정에 들어서니 벌써 열혈 학생이 된 기분이다. 학생관, 도서관, 각분과대 등을 차례로 둘러본다. 학교 옆에는 뉴워크 뮤지엄과 매거진 게이트 라는 유서깊은 관광지가 인접해 있다. 학교 끝자락에 GP(병원)가 있는 것을 보고 더욱 안심이 됐다. 혹시나 아이들이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하므로.
GP 건너편 드넓게 잔디밭이 펼쳐진 베데 공원(Bede Park)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고 길 것 같은 미끄럼틀에서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벌써 친구들을 만들어 깔깔대며 놀고 있다.
학교와 바로 접해 있는 시내로 들어선다.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시내 중심부(City Centre)가 상당히 발전돼 있어서 놀랐는데, 이는 몇 년 전에 건축을 끝낸 하이크로스 쇼핑센터(High Street Centre) 덕분이었다.
존 루이스, 더반함, 펜윅과 같은 백화점은 물론, 각종 고급 상점, H&M, Zara 같은 SPA 의류들, 고급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세인트 제임스, 카렌 뮐렌, 클락스, 막스앤스펜서 등 웬만한 영국의 인기 브랜드들이 모두 몰려있어서 쇼핑을 위해 굳이 런던에 가지 않아도 될 듯한 생각이 들었다. 빈티지한 도시 느낌은 한껏 느끼면서 생활의 편리함까지 갖춘 레스터, 잠시 머물다 가기에는 아까운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