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22/100
<조금 늦게 돌아보는 2017년> 에서 정말 깜빡! 하고 적지 않은 꼭지가 있다. 시력 교정 수술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산 시간을 세 토막으로 나누면 그 중 두 토막만큼이 내가 안경을 쓰고 산 기간이다. (하다못해 나머지 한 토막도 시력이 덜 잡혔을 깽이 시절을 고려하면 더 짧아진다.) 일찍부터 안경을 썼고, 고도근시를 향해 달려가는 중에 몇 차례 결막염에도 걸리고 몽고주름 덕분에 속눈썹에도 엄청 긁히고 건조증까지 겹쳐서 시력이 신명나게 떨어져 있었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주위 친구들이 라식, 라섹 수술을 받는 일이 많았다. 나는 돈이 없어서, 수술을 믿을 수 없어서, 이미 익숙한 안경이 그리 불편하진 않아서, 아빠와 애인의 '넌 안경 쓴 게 더 예뻐.' 라고 세뇌하는 바람에- 결론은 의지가 없어서 수술을 미뤘다.
섬에서 밥벌이를 시작한 후로는 줄곧 일회용 렌즈를 끼고 다녔다. 안경낀 게 더 예쁘단 소리는 개뻥인 걸 알고 있었으니까. 종일 모니터를 보는 일을 하다보니 눈은 신명나게 망가져갔다. 결국 육지로 돌아온 후에는 견디지 못하고 렌즈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안경 쓴 게 예쁘다고 말해줄 전 애인은 가버렸고, 장거리 출퇴근에 나는 점점 더 잡히는대로 옷만 걸치고 출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가을, 연습 면허가 만료되었고 스페인의 카탈루냐 독립 이슈로 끊어뒀던 스페인행 항공권도 취소했다. 씁쓸하게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리고 있자니 시력교정수술 경험자들이 수술 후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설파했다. 쇠뿔도 단 김에-빼지 않으면 결국 연습 면허처럼 흐지부지하고 마는 성미인 나는 다음날 바로 전문 병원 검색에 나섰다.
소위 '눈공장'이라고 불리는 브랜드 병원들을 리스트업했고, 가까운 검사 일자를 예약했다.
수술 가능한 상태, 그러나 워낙 깎아내는 양이 많기 때문에 재수술은 불가. 이런 진단을 받고 난 뒤 원하는 수술을 묻는 상담사에게 나는 "라섹 수술로 해주세요" 하고 답했다. 장장 3시간에 걸친 검사에 진이 쭉쭉 빠졌고, 어디를 가나 비슷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라섹으로 수술을 받을 경우 회복 기간 48시간! 와아, 금요일 밤에 수술 받고 월요일 첫 진료, 그리고 수요일까지 쉬면 완벽하겠다. 나는 정말로 순진하게 생각했다. 아니, 순진 말고 몽춍하게. 당시 난 라식과 라섹의 수술 방법의 차이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저 안구건조증이 덜 하고, 부작용이 덜 생기는 편이라는 설명만 믿고 선택한 것이었다.
바로 그 다음주 금요일 퇴근 후 병원에 신나게 달려가서 신나게 각막을 깎아냈다. 지독한 난시의 주범이라는 선천적인 각막 비대칭까지 잡느라 수술이 긴 편이었다. 눈 뜨세요. 집중하세요. 집도하시는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들 각각 100번쯤은 얘기하신 거 같다. 겁 먹고 긴장할까봐 일부러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간 게 컸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신 못 차리고 헤롱헤롱거리다 보니 어찌저찌 수술이 끝났다. 의외로 안 아프잖아? 하면서 sis의 팔을 붙잡고 택시에 올라 집에 돌아왔다.
밤 10시가 넘어서 속없이 웃으며 밥을 먹었고, 얌전히 찜질도 하고 안약도 넣고 보호안경도 끼고 푹 잤다. 자고 일어나니 눈 앞은 뿌옇고, 갖가지 안약을 번갈아 넣으면 더 뿌얘졌다. 이상하게 자꾸 잠이 쏟아지는 느낌이라 자고 또 자고 밥 먹고 자고 또 자고 밥 먹고. 그렇게 일요일 오후까지 보내고 나니 극심한 고통이 시작됐다. 보호렌즈의 이물감 때문에 눈물이 콸콸콸 쏟아지는 것이다. 안약을 넣어도 눈물이랑 줄줄줄 쏟아지고, 그나마 잠들어야만 고통을 피할 수 있어서 또 자고 일어나면 눈물에 푹 젖은 눈두덩이가 말도 못 하게 부었다.
월요일 아침 예약해둔 진료 시간보다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잘 아물었네요." 의사선생님의 평은 아주 간단하고 쿨하기까지 했다. 동공이 확장된 상태로 멀미를 잔뜩 하며 집에 돌아온 후로 내리 이틀을 더 쉬었다. 아이폰의 제어 센터 아이콘을 잘못 이해한 채 나이트모드 대신 방해금지 모드를 켜둔 탓에 '문자 못 보니까 전화 하세요!' 라고 해놓고선 정작 전화는 죄다 부재중으로 쌓이고 카카오 미니가 읽어주는 뉴스 기사에 의존해서 심심한 시간을 보냈다. 전자 기기 화면을 보지 않으니 몇 년간 흐릿했던 흰 자위가 말끔해졌다. 하루하루 좋아지는 시력에 와우-를 외치며 수술 후 만 5일 만에 출근, 의도치 않게 선글라스에 볼캡까지 눌러 쓰고 출근해서 연예인이냐고 놀림을 잔뜩 받고 어지러운 시야와 건조한 공기, 빛 번짐 때문에 백기를 들었다. 다음 날도 오후에 휴가를 내고 집에 돌아가고 말았다.
계산 착오도 그런 착오가 없다. 아니, 애초에 무지에서 비롯한 판단 착오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 달째에 간 진료 때 "선생님, 지금 제 상태 괜찮은 건가요?" 물었다. 선생님은 "수술은 잘 됐고, 우리가 의도하던 대로 잘 가고 있어요." 라고 답하셨다. 대체 그 '우리'가 어떤 우리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선생님과 무언가를 도모한 적이 없는데. 어찌됐든 잔여 휴가도 넉넉치 않고, 해야할 일은 있고- 안 보이는 시력을 갈아 넣어 업무에 다시 들어가고 난 지 어언 세 달, 여전히 내 눈은 회복을 못 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이전에 시력교정수술을 받고 완벽한 눈 상태를 자랑하는 누군가는 내게 "원래 겨울에는 건조해서 수술 안 받는게 좋은데?" 라고 때늦은 소리를 했다.
좀 망한 것 같다. 그래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시력은 때가 되면 반짝, 하고 올 것이라고들 했으니까. 그래서 그 여유롭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근 두 달간 참았던 맥주도 다시 재개했다. 잘 되겠지. 잘 보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