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파랑 Feb 28. 2018

투덜왕

<100일 글쓰기> 42/100

  구김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늘이 없다-보다는 구김이 없는 쪽. 그늘을 대하는 마음가짐마저 건강한 그런 거 말이다. 아쉽게도 그간의 목격한 바에 의하면 어찌 개선을 하거나 뒤엎을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주위의 사랑을 많이 받아 감정적 허기도 적고, 그 외 경제적인 환경 또한 딱히 결핍을 느낄 틈이 없었던 그런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이 대개 그러했으니까.

  그간 사랑받아왔던 것처럼 타인에게 애정을 표현할 줄 알고,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을만큼 베풀 줄 안다. 자신의 위치나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객관화할 줄 알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타인에게 과시의 도구로 사용하려 들지 않는다. 손에 쥘 수 있는 자원이 많은데도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우선으로 하고자 한다. 실패나 위기에도 적당한 긴장감과 퍽 담대한 태도를 견지한다. 한 발 물러서도 새로운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여유와 지원이 있으므로 마음도 덜 급하다.

  내가 생각하는 구김없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이런 류다. 질투 어린 감정이라든가 치졸해지는 순간, 촌스러운 감정, 견딜 힘이 없어 차라리 모든 걸 버리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순간을 느낄 틈이 없었던 인생. 다대다로 진행됐던 임원면접 당시 '나는 스스로를 자수성가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고난과 역경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거라고 믿는다. 고난과 역경의 경험이 있었던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는가?' 라는 공통 질문을 받았었다. 인터뷰이 중 절반 정도가 질문에 대해 손을 들고 '동의한다' 라고 답을 했다. 그런 분위기에도 나는 손을 들고 '동의하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을 겪지 않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경험의 폭과 깊이가 더 풍부할 수 있다. 특히 체화된 성공 경험은 또 다른 성공에 분명 도움이 된다.' 라는 류의 대답을 했다. 임원 면접은 처음이라 긴장되서 죽겠는데, 게다가 앞에서 주로 개별 질문을 맡았던 HR 담당자의 냉담한 표정 때문에 쪼그라든 상태에서도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던 질문이었다. 구김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시각, 가치관. 오래 전부터 그걸 소원했던 거다.

  우울은 차고 넘치고, 매일 할 수 있다는 자기 세뇌와 스트레스가 충돌한다. 조금 더 의연하고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넘어져본 적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구김없는 이들이 부럽고 질투난다. 결핍이 적은 사람이 되고 싶다. 결핍을 무디게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결핍이 적은 사람.



이전 15화 사실은 아직 잘 안 보여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