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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Mar 04. 2018

다시 혼자

<100일 글쓰기> 46/100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로 떠날 무렵 마침 부모님 집이 이사를 했을 때부터, 이후 두 번 더 이사를 할 동안 나는 본가의 외부 출입문과 현관문을 제대로 따는 일이 손에 꼽았다. 그곳에 사는 것도 아니고, 가봐야 마중을 나온 부모님이 카드키로 열어주실 때 쭐래쭐래 따라 들어가거나 sis를 시켜 '나 열 줄 몰라.' 하고 실실 웃으면 됐으니까.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 근처 정류소에 내려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까지 잘 걸어갔고, 지하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입구를 잘 찾아 들어가 복잡한 길을 헤매지 않고 출입문까지 잘 당도했다. 집 호수를 누른다고 눌렀는데 착각해서 옆집 호수를 누르고 우리집 비밀번호를 넣었다. 틀렸다는 경고가 뜨고 '이상한데?' 하고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니 갑자기 문이 열렸다. (기계 오작동인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마중 나올 예정이셨던 아빠와 마주쳐, 현관문은 아빠가 열어주셨다.


문 좀 못 열면 어때서, 집 주소 좀 못 외우면 또 뭐 어때서. 어쨌든 한창 치기 어린 마음으로 '난 엄마 아빠가 하라는대로는 하지 않겠어!' 라던 시절에는 '엄마 아빠 집'이라는 인상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느긋한 마음이 되어 퍽 익숙해진 편이다. 이번 방문에선 당직 업무도 하고, 이런 저런 밀린 취미 관련 업무도 하고 하니 올라오는 버스 시간이 빠듯하게 당도했다. 몸도 못 쉬었고, 마음도 충분히 못 쉬었단 말이야-하는 억울함에 초조해하니 엄마가 김밥을 싸주신다셔서 버스 시간을 세 시간쯤 늦췄다.

오랜만에 자체 휴일을 선언한 sis도 곁에 있어서 같이 바닐라라떼도 만들어 마시고, 엄마가 싸주신 김밥도 먹고, 쫄면도 먹었다. 왜 그리 시간은 빠른지. 기어이 버스 시간이 가까워져서 엄마가 챙겨주신 반찬거리가 든 쇼핑백을 들고 집을 나서니 엄마가 따라 나오셨다. 걸어서 겨우 10분인데, 날도 꾸물꾸물한데 굳이 마실 겸 데려다주신다고.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우산이 없는 게 불안했다. '집에 가서 샤워하면 되지, 뭐.' 라며 부지런히 옆에서 걷는 엄마와 조용한 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고등학교 때는 금요일 밤 늦게 집에 왔다 일요일 오후에 내려가는 게 그렇게 끔찍했다. 기차나 버스를 탈 수도 있는데, 학교가 워낙 외진 곳에 있다 보니 몇 번씩 갈아타야 해서 매번 부모님이 직접 차를 몰고 편도 세 시간을 걸려 데려다주셨다. 나는 톨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차 뒷좌석에 늘어져서 잠을 청했는데, 희안하게 눈만 뜨면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기 전 마지막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거나, 톨게이트를 빠져나갈 때였다. 창 밖에서 쏟아져들어오는 노란 오후의 볕과 휴게소에서 흘러나오는 노이즈 잔뜩 낀 트로트 음악 같은 건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씩씩하게 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우울을 잔뜩 매달고 기숙사로 들어가서 한 시간쯤 있다 정독실로 자습을 하러 가는 게 그 시절의 일상이었다.

새삼 엄마랑 같이 걷는 길이 그 때의 기분에 잠기게 해서, 엄마에게 말을 했다. '어떡해. 그렇게 가기 싫어서.' 그 심정을 모를리 없는 엄마가 안타까워하셔서 나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류장에 나란히 앉아 아직 내리지 않는 비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흘리다 그 후로 십 년이 흘러 딱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와 같아졌구나 싶었다.

지금의 나는 당장의 내 생활을 끌어가는 것도 지치고, 스스로가 무거워서 미칠 것 같은데 어떻게 엄마는 직장도 계속 다니고 나까지 낳았을까 싶었다. 육아휴직 제도가 지금 같지 않던 시절이라 신혼 초 셋방살이하던 집 주인인 관이 할머니에게 나를 맡기고 나갔었다고 들었다. 또래보다 일찍 기어다니기 시작해서 그 즈음부터는 연세가 많으셨던 관이 할머니가 더이상은 돌봐줄 수 없다고 하셔서 엄마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난 지금 나 하나도 감당이 안되는데 어떻게 저까지 낳아서 길렀어요?' '글쎄. 그땐 그냥 그렇게 해야한다고들 했으니까.' 엄마는 멋쩍은 듯 웃고 마셨다.


도착한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보니 창밖에서 엄마가 쳐다보고 계셨다. 손을 흔들고 올라오는 동안은 끝없는 수마와 몽마에 시달렸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반찬이 든 쇼핑백이 젖지 않도록 품에 안고 조심조심 걸었다. 반찬통 맨 위에 놓인 딸기 상자에선 달콤한 향이 올라왔다. 결국 그때부터 정말로 울고 말았다. 혼자인 집에서, 오랜만에 우울이 지나치다. 왜 이렇게 서러울까. 빗소리가 온몸을 콕콕 찌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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