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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by 가브리엘의오보에

두 대상에 대한 감정 — 한 명은 사랑, 다른 한 명은 우정.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과 욕구를 정직하게 마주해 보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감정과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은 과연 이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나 혼자만 만족을 느끼려는 개인주의적 태도일까?


사랑과 우정은 물리적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상대의 행복을 바라고 그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만족시키려는 속성을 지닌 존재라고 믿는다. 그런데 사랑과 우정이라는 극강의 이타심이 과연 가능할까? 사랑 하나만으로도 충족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 두 감정을 동시에 품으려는 시도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 아닐까?


인간의 관계는 항상 오르내린다. 좋을 때가 있으면 좋지 않을 때도 온다. 그리고 그 ‘좋지 않은 순간’은 곧 틈으로 작용한다. 틈이 생기면 외로움이 찾아온다.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면 따스함을 찾게 된다. 그것이 상대의 온기이든, 혹은 단순한 호기심이 주는 열기이든 간에.


거리에서 커플을 보면 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은 관계란 어떤 걸까?”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자주 보면 정이 든다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의 외모에 익숙해지고, 오히려 사랑스러움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호기심 역시 비슷하다. 처음엔 낯설던 감정이 익숙해지면서 교류 없이도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는다. 호기심은 충족될수록 온기를 더하고, 외로움은 점차 옅어진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남은 감정은 우정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랑과 우정은 단지 색깔이 다른 같은 옷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감정이 인간에게 양립할 수 있는 감정일까? 이 질문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윤리’라는 질서가 따라온다. 인간이 결혼을 맹세하며 한 사람에게만 충실할 것을 약속하는 이유는 감정의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감정이 얽히고 뒤섞이면, 세상은 질투와 충돌로 혼란스러워질 테니까.


하지만 나의 문제는 다르다. 내 안에 두 감정이 명확히 자리 잡고 있지만, 이를 질서 있게 정리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이를 착각이라 말할지 몰라도, 나는 내 감정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과 우정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분명히 구별한다고 해도, 두 감정의 대상에게 내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사랑을 받던 사람은 분노할 것이고, 우정을 받던 사람은 의심할 것이다.


결국, 나는 어떻게 해야 내 감정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선택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내 감정을 숨기기로. 그리고 멀리서 조용히 돕기로. 상대가 사업을 한다면 그들의 상품을 구매하고, 그가 회사원이라면 그의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내 감정을 혼자 간직하고, 육성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비록 서글픈 선택일지라도. 하나의 감정으로 나뉘지 않았다면 더 순수했을 텐데, 인간으로서 온기를 찾으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이 나를 이끄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나는 무언가를 숨기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질서 없는 마음이란 정말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인간다움의 본질일까?


benjamin-chambon-vlMpLXvWTDw-unsplash.jpg Benjamin Chambon, Unsplash

https://youtu.be/WxNbZLh0PaA?si=cNx8YY6KT43sFY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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