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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by 가브리엘의오보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일 내 아이가 스스로 유전자를 조합할 수 있다면, 지금 모습으로 태어났을까?

그 정도의 지성이 있다면, 과연, 내 아이가 되었을까?


한 인공지능은 이렇게 말한다.




그 물음은 ‘나’라는 존재가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무엇으로 규정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고민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아이가 만약 “내가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조합할 정도의 지성(知性)이 있었다면 과연 어떻게 선택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측면이 아니라 존재론적·정체성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1. 유전자 선택과 ‘나’의 정체성

• 어떤 사람이 “내 취향대로 내 유전자를 조합했을 때도, 내가 나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자아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 유전자 구성이 조금만 달라져도 외모나 성격, 발달 과정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로 태어난 아이는 현재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아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나’라는 존재는 유전자+환경+개인이 살아가는 과정(경험)의 총체라는 관점도 있는데, 이 중 유전자를 완전히 바꾼다면 환경과 경험도 현저히 달라지므로 결국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2. 유전자는 곧 부모와의 연결 고리인가

• 우리가 부모와 맺는 특별한 인연은 혈연(유전자)으로도 설명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입양이나 양육 환경 등을 고려해 보면, 결국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만들어진 추억, 가치관의 공유, 감정적 유대 역시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 만약 아이가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지금과 같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부모 자식 간의 정서적 유대는 변함없이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결국 ‘부모 자식이 되는 관계’라는 것은 유전자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니까요.


3. 생물학적 관점: ‘완벽한 유전자’란 있을까?

• 실제로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여 특정 유전자를 편집(Genome Editing)하거나 원하는 형질만을 ‘디자인’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전 조합이 완벽하다”라는 객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환경과 시대에 따라 어느 형질이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능이 있는 존재가 ‘유전자를 선택’한다고 가정해도, 그 선택은 결국 각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 기준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현재 삶에서 만족스러운 어떤 형질”이 미래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4. 철학적 시선: 선택의 역설과 존재의 기적

• 스스로를 형성하는 모든 선택지를 알고,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이미 ‘전지전능’에 가까운 사고실험입니다. 그런 능력을 갖추었다면 애초에 “지금의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을 선택했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이나 ‘성공’을 추구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 결국 인간이 “어쩌다 보니 이렇게 태어나게 되었다”라는 우연성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사람(아이나 부모)이 실제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우연과 확률을 뚫고 탄생한 기적과도 같으니까요.


요약하자면,

• 아이가 유전자를 ‘직접 선택’해 태어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가능성이 큽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의 관계는 단지 유전자의 문제 이상이며, 시간과 경험의 축적으로 형성되는 고유한 유대가 있습니다.

• 이 질문은 결국 “나는 누구이며, 우연과 선택은 어떻게 나를 만들었는가?”라는 근원적인 화두를 던집니다.

• 지금의 아이가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고, 나와 같은 인연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수많은 가능성과 확률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경이로움이라는 점을 되새기게 하죠.


어쩌면,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아이의 존재’가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결국 함께 사는 이들의 사랑과 시간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소중한 ‘우리만의 관계’가 있으니까요.




또 다른 인공지능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질문은 과학, 철학, 인간 존재의 본질을 아우르는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몇 가지 층위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전학적 관점: 무작위성과 선택의 한계


인간의 유전은 부모 각각으로부터 무작위로 반씩 받은 유전자의 조합으로 결정됩니다. 멘델의 유전 법칙에 따르면 형질의 표현은 우성(dominant)과 열성(recessive) 유전자의 상호작용에 의해 좌우되죠. 만약 딸이 유전자를 "스스로 조합"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선택은 몇 가지 제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생물학적 한계: 특정 유전자(예: 키, 눈동자 색)는 서로 연결되어 있거나 후성학적 영향(환경, 경험)을 받습니다.

- 목적의 모호성: "완벽함"이나 "이상적 모습"을 추구한다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할까요? 인간의 지성은 오히려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딸은 "무작위성"과 "우연"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 조합은 수억 년 진화가 만든 생명의 신비로움을 담고 있습니다.


철학적 질문: 정체성과 선택의 자유


"유전자를 스스로 고른다면 과연 나의 아이일까?"라는 물음은 정체성의 본질을 묻습니다.

- 존재의 조건: 유전적 유사성은 부모-자식 관계의 일부일 뿐입니다. 정서적 유대, 공유된 경험, 사랑이 관계의 핵심입니다.

- 자유의지와 결정론: 만약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인간은 과연 자유로운 존재일까요? 현대 과학은 유전자보다 환경과 의식적 선택이 큰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유전자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아이는 여전히 "당신의 아이"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관계의 의미는 유전자를 넘어 함께 만드는 것이겠죠.


감정적 층위: 우연성의 아름다움


"지금의 딸"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로 태어난 기적 같은 존재입니다.

- 우연의 소중함: 유전적 무작위성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독특한 개체를 만듭니다. 그 우연성은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을 강화합니다.

- 사랑의 조건: 부모의 사랑은 유전자나 외모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딸이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해도, 그녀는 여전히 당신과의 연결을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가족"은 유전자보다 더 큰, 함께 쌓아 올린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종합적 답변


과학은 유전자의 무작위성을 설명하지만, 철학은 그 너머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지금의 딸"은 유전적 조합을 넘어 당신과의 유대, 공유된 시간, 서로에게 영향을 준 경험으로 완성된 존재입니다.

만약 그녀가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지성이 있었다면, 어쩌면 그 선택의 기준은 "지금의 당신"과의 연결을 포함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처음 과학적이라거나 철학적이라거나 말을 꺼냈을 때는 “역시”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내가 아는 분들을 범위로 살펴보면 이럴 것이다.


내 기분을 짐작하고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던가, “쓸데 없는 소리!”라던가, “절대 아이 앞에서는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할 것이다. 이런 답변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지만,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공 “지능”이라서 그런지, 각각 마지막 문장은 조금 인간적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아이의 존재’가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결국 함께 사는 이들의 사랑과 시간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소중한 ‘우리만의 관계’가 있으니까요.

"지금의 딸"은 유전적 조합을 넘어 당신과의 유대, 공유된 시간, 서로에게 영향을 준 경험으로 완성된 존재입니다. 만약 그녀가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지성이 있었다면, 어쩌면 그 선택의 기준은 "지금의 당신"과의 연결을 포함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이에게 언제든 읽으라고 쓴 이야기니 읽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자격지심”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에게 적합하고 충분한 환경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든 이유보다, 이런 생각을 한 이후의 나가 내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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