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고 나서야, 내가 떠났다는 걸 알았다
여행이 끝나면 더 피곤해지는 여행,
일정표는 빽빽했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두려워하게 됐다.
짧은 여정은 마음을 꺼내기도 전에 끝나 버린다.
다시 떠난다면, 최소 2주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곳의 공기, 걷는 속도, 인사의 높낮이를 배울 수 있다.
나는 1주일 미만의 여행을 지양하게 됐다.
자주 가지 않던 여행이 더 뜸해졌다.
체류 여행은 정작 무엇일까?
왜 내가 지향하게 되었을까?
체류 여행은 여행지에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장기 여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체류 여행은, 마치 그곳이 내 집이 있는 것처럼, 장소를 옮겨 생활하는 것.
마치 1년 중 몇 개월은 그곳에 가는, 유목민이 되는 것.
이런 방식이 내가 지향하는 체류 여행이다.
동네 마트에서 포도 두 송이를 고르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계산원이 물었다.
“Plastic or paper?”
나는 얼떨결에 종이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나도 이 동네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이것이 내가 시험 문제 풀기 중심으로 공부한 영어를 믿고 계산대 앞에 처음 섰을 때의 모습이다.
멍청해 보이지도, 어설퍼 보이지도 않았다.
체류라는 시도 앞에 선 초보자였을 뿐이니까.
이렇게 체류 여행은 관광객이란 이방인이 아니라,
새로 이사 온 동네 초보 경험이다.
그 동네를 체험한다. 일정에 쫓기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한 지역에서 생활한다. 동네에서 긴 외출은 읍내에 가는 정도지 않나?
옆집 아주머니가 물을 것이다 ‘어디서 왔수?’하고.
단기 여행자는 호텔 직원의 깍뜻한 대우를 받지만, 지역 체류자는 임시지만 동네 사람, 이웃이 된다.
그러니 ‘어디서 왔수?’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장보기를 하며 벌지 않는 생활 속에서 절약도 한다.
소문도 듣는다. ‘새로 생긴 맛집이래!’
일기를 오랜만에 써보고, 독서하다가 포스트잇으로 메모도 한다.
내일 아침 로비에서 가이드가 기다리지도,
내 알람이 어서 일어나라고 독촉하지도 않다.
어느 동네에 스며들어 보는 것, 목적의식 없이 일상을 보내는 것
그것이 체류여행일 것이다.
2005년 6월 1일, 뉴욕 맨해튼을 향해 비행기에 올랐다.
결혼 후 4년간 아이가 없었다. 당연히 검사 결과, 어느 쪽도 문제는 없었다.
그럼 기회지 않나? 차 팔고 돈 인출해서 바리바리 짐을 싸서 비행기에 올랐다.
이스트빌리지에서 유학생이 방학 동안 비우는 스튜디오를 잡고,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 처가 외삼촌과 함께 각자 32kg의 여행가방을 들고 5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때부터인가, 체류 2.5 개월 동안 우리는 줄곧 걸었다.
콜롬비아 대학을 가기 위해 할렘을 통과하는 순간을 제외하고.
관광차 뉴욕 지하철도 타보고, 걷다가 힘들면 앨로우 캡도 탔다.
하지만, 뉴욕의 동서남북 끝까지 걸어서 돌아다녔다.
한국에선 2~3 km 떨어진 마트에 갈 때도 차를 가져가지만, 여기선 트레이 하나를 끌고 걸어서 마트에 갔다.
우리의 체류 주제는 ‘휴식’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서비스 업.
대인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고 심신이 지쳐있었다.
다행히 뉴욕은 공원도 많다.
아침에 일어나, 워싱턴 스퀘어에서 운동을 하고, 센트럴 파크까지 왕복 걷기를 했다. 편도 1시간 30분, 귀가 1시간 50분.
유니언스퀘어 벤치는 커피와 독서의 장소,
센트럴 파크의 대 잔디장은 피크닉의 장소.
그러다 보니, 뉴욕 시립 도서관이 닫힌 줄 모르고 방문한 날에는
내리는 비를 보며 입구에 앉아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당시의 뉴욕 식료품 가격은 한국보다 낮았다.
당시 이슈인 미국산 소고기(뉴욕에서는 내수용 상품이다)를 한우의 절반 값에 구입하기도 했다.
버드와이저 330ml 28캔 한 박스가 2달러였다.
물론, 유기농 매장이나 Whole Food Market은 당시에도 가격이 부담이 있었다.
레스토랑을 가면 팁을 얼마나 주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대강 기준선은 있었지만, 숙소에서 조리하는 것이 더 저렴했다.
이리저리 알아보거나, 추천을 받지 않는 이상 숙소에서 조리했다.
뉴욕의 관광지에서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카테고리는 스쳐 지났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곳도 당연히 있었다.
엄선한 상품으로 구성된 편집숍 같이,
살만한 중고 혹은 보세 상품이 가득한 나이키 등 Top Brand 매장,
Nike Town 같은 생소한 매장,
한국엔 없는 브랜드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일본과 미국의 상점이 갖는 차이점은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이다.
하나의 카테고리에 혹은 하나의 브랜드에 해당하는 상품의 종류가 다양해서
내 취향에 맞는 상품을 고르기 쉬웠다.
이들은 재고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일까?
소비자 규모가 커서 무리가 없는 것일까?
정착촌의 방문.
Japanese Street, China Town, Little Italy 등
뉴욕 속 외국 같았다.
IKEA를 처음 방문한 것도 뉴욕에서였다. 셔틀을 타고 매장을 방문했었다.
해외여행 시 지키려는 전통 아닌 전통.
그 국가의 1위 대학 방문.
일본에서는 동경대를 갔었다. 길을 잃었었지만, 한국 유학생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
정문 앞 구멍가게에서 음료수 몇 병을 사서 보답으로 놓고 오기도 했다.
미국은 보스턴 하버드 대학.
MIT는 이동 중에 건물을 보기도 했다.
그 국가의 1위 대학이 다른 대학과 외견 상 다른 점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무엇을 담아내느냐는 국가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직접 볼 수 없는 내용이긴 했지만.
이 전통을 뉴욕에서도 지켜냈다.
해외여행에서 음식은 빼놓을 수 없는 체험이다.
어디를 가든 식사를 해야 하니까.
식사를 한다면 가능한 맛있는 곳에 가고 싶다.
뉴욕의 립은 뼈에 붙은 고기가 이빨 높이보다 높았다.
뉴욕의 커피와 콜라는 원액이 더 들어있다고 느꼈다. 탄산이나 우유보다.
김치 없이 잘도 먹고 다닌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생크림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특별한 날 외에는 잘 먹지 않으면서.
미국의 케이크는 딱딱한 크림이 덮여 있다.
왜 그렇게 생각이 났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다.
그 다음날 한인 타운 42 번가의 고려당에 가서 결국 사 먹었다.
뭔가 해소되는 느낌.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느라, 평소 익숙한 것을 자연히 멀리 했더니 생크림으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NY 체류 여행 후 1주일 미만의 여행은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한국의 집에서 목적지까지, 그리고 목적지에서 한국의 집으로의 귀가.
장거리 이동의 피로를 풀기도 전에 숙제처럼 이곳저곳을 다니는 짧은 여행으로는 마음을 채우기 어렵다.
덕분에 잘 다니지 않던 여행의 빈도가 더 멀어지긴 했다.
적어도 2주 이상은 로컬 생활을 하는 여행을 하리라고 결심한 결과다.
매장 할인 행사에 참여해서 장보기,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동네를 배회하며 맛집 찾기,
동네 생활에 필요한 회화 찾아 외우기 등등
새롭게 경험할 내용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여행은 이렇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와이너리 일주 및 시음
일본 사케 공방 일주 및 시음
국내 특산물 산지 일주 및 시식
일본 규슈 역삼각형으로 여행하기
통영까지 중간중간 자연을 느끼며 로드 트립하기
과연 이 중에 몇 가지나 이룰 수 있을까? 하지만, 비록 하나만 이뤄도,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나를 지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