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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크론, 스토리 설계자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스토리의 의미는 무엇이 옳다고 일러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끼게’ 해 주는 방식에 있다.

우리 삶이 감정을 중심으로 돌아가듯, 스토리 역시 감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말해 스토리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어려운 목표를 추구하는 주인공이 영향을 받고,

그 과정에서 내적 변화를 겪는 여정이다.

여기서 플롯은 ‘일어난 사건’이고, 주인공은 ‘그 사건 속에서 흔들리는 존재’다.


따라서 스토리의 핵심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이 주인공의 세계관을 어떻게 흔들고 변화시키는가에 있다.


태양의 후예 ― 가치관 충돌을 통한 변화


태양의 후예는 표면적으로 군인과 의사의 로맨스로 보인다.

그러나 스토리의 진짜 중심축은 “생명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두 인물의 가치관 충돌이다.

군인 유시진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인물이고,

의사 강모연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사명이라는 관점을 지닌다.


전쟁과 재난 같은 플롯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두 사람의 가치관을 충돌시키고 시험하는 장치다.

유시진은 군인의 삶이 개인적 행복과 반드시 충돌하지는 않음을 깨닫고,

강모연은 군인의 선택을 죽음을 불러오는 일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지킴’으로 이해하게 된다.

시청자가 몰입하는 지점은 바로 이 가치관이 흔들리고 변화하는 순간이다.


도깨비 ― 결핍의 극대화와 재정의


도깨비의 주인공 김신은 억울한 죽음 이후 불멸로 살아가며,

수백 년 동안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상실과 외로움 속에 있다.

그의 결핍은 “죽지 못하는 삶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은탁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판타지적 장치들(저승사자, 검, 환생)은 그 결핍을 극대화하는 무대일 뿐이다.

은탁과의 사랑, 저승사자와의 관계, 과거의 한을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며

도깨비는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형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독자가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지점은 초자연적 설정이 아니라,

상실을 경험하고 의미를 새롭게 재정의하는 내적 여정이다.


개그 ― 감정 폭의 확장 장치


이 두 드라마에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바로 개그다.

김은숙 드라마 특유의 유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중요한 서사 장치다.

갈등이 고조되면 이야기는 쉽게 무거워지는데,

개그는 긴장을 풀어주는 동시에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관계를 심화시키며, 감정의 폭을 넓힌다.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의 능청스러운 농담은,

죽음을 무릅쓰는 삶 속에서도 인간적 따뜻함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도깨비에서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티격태격 개그는,

초월적 존재를 단순한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외로움을 가진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웃음의 순간은 긴장과 대비를 이루며,

이후의 감정 고조를 더 강렬하게 체감하게 만든다.


사건은 도구, 변화가 본질


두 작품은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사건은 언제나 주인공의 내적 결핍을 드러내고,

세계관을 흔드는 촉발제로 작동한다.

여기에 유머라는 장치가 더해져,

감정의 폭을 확장하며 시청자를 끝까지 붙잡는다.

이것이 바로 리사 크론이 말한 “스토리”의 본질, 즉 ‘직접 느끼게 하는 힘’이다.


나는 이 전개 방식을 닮고 싶다.

독자가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사건의 화려함이 아니라,

사건이 인물의 내면을 흔들고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길 위에서, 웃음은 가장 강력한 보조 장치가 된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스토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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