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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보어 Omnivore

by 가브리엘의오보에

나는 옴니보어다.


TV를 볼 때 한 채널을 정해두고 보지 않는다. 편성표를 보면 될 텐데, 늘 채널 1번부터 차례로 올린다. 그러다 ‘이거다!’ 싶은 순간 손을 멈춘다. 그렇게 만난 음악이 장한나의 첼로였다. 작은 체구의 소녀가 자신보다 큰 첼로를 다루고 있었다. 눈길은 그녀의 표정이나 동작이 아니라, 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붙잡혔다. 그 순간 귀가 열렸다. 이후 장한나의 팬이 되어 스트리밍으로 앨범을 샅샅이 들었다. 마음에 닿지 않는 곡도 있었다.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여전히 내겐 낯설다. 그러나 그녀의 연주라서 듣기 좋다..


임윤찬은 YouTube에서 우연히 만났다. 콩쿠르 첫 연주였다. 연주가 끝난 뒤 지휘자의 태도가 화제가 되었지만, 나의 관심은 오직 그의 손끝에 있었다. 그 터치는 아나운서의 딕션처럼 명확했지만, 결코 딱딱하지 않았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Aespa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이다. 음표 하나가 나타날 때마다 반응하는 윈터의 춤에 먼저 눈길이 갔다. 보아의 디테일을 좋아하던 내 취향이 이어진 셈이다. 그룹 전체의 톤에 맞춰 노래하던 카리나의 목소리가 ‘Up’에서 제대로 피어났을 때, 나는 꽃이 피어나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클래식의 무게와 힙합의 비트, 시티팝의 낭만과 최신 가요의 반짝임이 내 귀에 공존한다. 음악은 언제나 나를 다른 방향으로 데려간다.




음식도 다르지 않다.


을지로 입구에서 근무할 때, 일부러 하동관을 찾았다. 오래된 벽지와 물든 간판. 깍두기 국물을 말아 날달걀을 풀어 넣자, 뜨거운 국물 속에서 세상이 단순해졌다. “아, 이 맛 때문에 오는 거구나.” 어머니의 맛집은 오장동 냉면집이었다. 어린 시절엔 차가운 물냉면만 먹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혀를 찌르는 비빔냉면을 즐겼다. 육수는 엽차처럼 뜨겁게 따라주는 것이 전통이었다.


강가에서 먹던 진한 카레와 난도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요즘은 완제품 대신 향신료를 직접 섞어볼까 고민한다. 물론 집안 가득 퍼지는 냄새는 온전히 내 책임이지만.


햄버거를 고를 때는 고기 패티가 두 장 이상인 것을 찾고, 파리에서 사 왔던 푸아그라 통조림과 비슷한 제품이 국내에 출시됐는지 눈여겨본다. 한식, 양식, 일식, 중식, 제3세계 요리, 때로는 패스트푸드까지. 누군가는 잡식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그 다양성이 곧 여행이고 자유라고 믿는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루지만, 여행 예능을 보며 새로운 길을 꿈꾸고, 요리 방송의 불꽃 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드라마에 울컥할 때도 있다. 특히 원피스를 볼 때는 그렇다.


나미의 어려움에 마음이 아프고, 우솝의 소심하지만 진실한 용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루피.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속 깊고 따뜻한 그를 볼 때면 몇 번이고 울컥한다. 그는 힘으로 사람을 모으지 않는다. 웃음과 우정, 그리고 끝없는 신뢰로 사람들을 끌어안는다. 나는 그 모습 속에서 ‘다양성 속의 조화’를 배운다.




나는 옴니보어인가?


누군가는 산만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산만함을 자유라 부른다. 다양한 경험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지탱하는 힘이다.


사람들은 한 길만 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나는 늘 옆길로 새었다. 어쩌면 반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내 안의 세상은 훨씬 넓어졌다.




너는 어떠니?


나는 네가 무언가에 몰두하다가도 금세 다른 길로 옮겨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중과 이동, 그 반복이 낯설지 않다. 그것은 너만의 방식이고, 그 옳고 그름은 네가 정하는 일이다.


내가 살아온 경험은 결국 내 몫일뿐, 네 지도는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네가 무엇을 하든 놓아두려 한다. 다만,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 네가 다양한 경험을 하길 원한다는 것.


나처럼 문어발을 뻗듯 여러 갈래를 동시에 붙잡아도 좋고, 너처럼 한 길을 오래 붙들었다가 다른 길로 옮겨가도 좋다. 중요한 건 많이 살아보는 것이다.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만지고, 많이 냄새 맡고, 많이 맛보아라.


삶은 결국 네가 직접 부딪히고 경험한 것들의 합으로 만들어진다. 무엇을 얻든, 무엇을 놓치든, 그것이 곧 너만의 결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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