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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ul 28. 2020

바쁘지만 지루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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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케 팔러 글,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의 ‘100 인생 그림책’을 읽고 있다. 앞부분에 이런 페이지가 있다.


7 세상은 너에게 정말 새로울 거야. 모든 걸 꼼꼼히 들여다보네.
7 1/4 하지만 세상은 지루하다는 것도 배우게 될 걸?



이 글의 제목을 ‘바쁘지만 지루한 세상’이라 지은 것은, ‘세상은 할 일이 많아 바쁘지만 또한 지루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어떻게 보면, ’바쁘다‘와 ’지루하다‘는 상반된 개념으로 생각된다. ’바쁘다‘는 움직이는 모습이 이미지 되고, ’지루하다‘는 멈춰있는 모습이 이미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 봤다.


바쁘다

할 일이 많다.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다. 겨를(여유)이 없다.


지루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같은 상태가 오래 계속되어 따분하고 싫증이 나다.


‘지루하다’에 멈춰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 이유로 상반된 개념으로 생각했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일이 많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같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따분하고 싫증이 난 상태’로 이해가 됐다. 멈춰 있는 이미지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루하다’고 느낄 때도 일은 많은 상태였다. 혹은 일을 하는 중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인 것 같다.


지루하다가 지속되면 지겹다는 상태가 된다. ‘지루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넌더리가 날 정도로 지루하고 싫다’이다. 예문으로는 ‘너무 놀았더니 이젠 노는 것이 지겹다’, ‘이 많은 원고를 오늘까지 읽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지겹다’가 있다. 사전에서도 지루하다보다 지겹다가 더 강한 의미라고 설명한다.


정리해 보면, 할 일이 많거나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바쁜 상태가 변화나 마무리 없이 지속될 경우 ‘지루하다‘라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고 이해된다. ’지겹다‘는 ’지루하다‘에서 발전할 수 있지만 ’충족됨이 넘친 상태‘로도 이해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상태는 ‘여유 있다’ 혹은 ‘재미있다’가 아닐까? 


여유

물리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


재미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좋은 성과나 보람.


자개 개발 서적이나 인생을 이끄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목표를 작게 나누라’라고 이야기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작은 성과를 올려 보람을 느끼는 것이 많거나 급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원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이 개인적인 일이라면 제어권은 나에게 있으니, 일하는 방법이나 순서를 바꾸거나 목표를 잘게 나누는 등의 변화를 가해, 여유 있고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조직의 일일 경우, 제어권은 상사 혹은 타인에게 있으니, 나에게 맞게 변화를 가하기에 장애가 많을 것이다.


그 제어권이라는 것을, 개인적인 일에서도 조직의 일에서도 가졌다고 느낀 적이 많지 않다. 일부의 사람들이 재능이든 후천적 실력이든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도 개인이든 조직이든 내 삶의 제어권을 갖고 싶다. 더 나아지면 제어권이 생길까? 자기 개발 서적을 탐독하고 성공 사례를 읽어보고 어제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무수한 방법들을 이해하고 실천해 왔지만, 실상 제어권을 손에 쥐고 여유 있고 재미있게 삶을 살았던 시간은 많지 않다. 그것은 내가 대표가 되어서도 그랬다. 어쩌면 제어권이란 신분의 상승으로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써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루하거나 지겨울 때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주위를 둘러보고,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해 보고, 인맥도 흔들어 본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 이탈을 생각한다. ‘이 틈바구니에서 벗어나면 여유 있고 재미있게 생활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바람에 이탈을 결심하고 행한다. 


옛말에 ‘범을 피하면 여우를 만난다’는 살 떨리는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있는 틈바구니보다 더 나은 곳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나름대로 과감하게 틈바구니를 박차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이야기 들으며 생각한 대로였다. 생활에 여유가 생겼고 철야와 야근도 줄었다. 심지어 옷차림도 가벼웠다. 그 동안 갉아먹은 건강도 회복해 나갔다. 


틈바구니에서 나의 일은 목표 매출을 달성하는 일이었고, 성과에 따라 시기와 질투도 많이 받았으며, 때로는 조직의 신 성장 동력을 위해 개발한 사업 자체에 대한 불만이 나에게, 마치 내가 와서 그 일을 벌인 것처럼, 쏟아지기도 했다. 조직에 대항하기보다 나에게 원망을 쏟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새로운 공간은 유지보수 부서였다. 생활이 규칙적이고 정기적으로 흘렀고 1 개월 기준 급하게 돌아가는 일의 발생 횟수는 10% 미만으로 줄었다. 다만,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자리다.


틈바구니에서 성공 사례를 발표하며 나름 신나게 뛰어다닐 때 나의 성과는 괜찮았다. 여유 있게 지내는 유지보수 조직에서의 일은 빛이 나지 않아 맡겨진 일만 하는 자리였다. 그럼에도 몇몇 프로젝트에서 성과(관련 부서의 칭찬?)를 내어 재미가 있었지만 굳이 틈바구니와 비교를 할 때 다이내믹한 면은 많지 않았다. 


결국 내가 여유 있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자리는 틈바구니에 더 가까웠다. 노력한 만큼 회사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성과가 나는 자리. 유지보수의 중요성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유지보수 부서에서는 서버 에러율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등 조직에 직접적인 기여를 팀원과 협력하여 이루었다. 그런데도, 두 번의 경험에서 유추한 이해는, 직접적인 기여도에서 오는 성취감과 보람(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각)은 매출이었다.


첫 사업 개발까지 조직 편성 후 6개월이 걸린 내가 할 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이 풀리려니 한 순간에 쏟아지듯 풀려나가면서 성과도 오르고 일도 많아지고 미움도 커졌다. 


어쩌면 나는 틈바구니를 못 견뎌내어 이탈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재미있게 일한 공간에서 제어권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제어권을 가지고, 삶의 방법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면 이탈은 없었을 것이다.


틈바구니에서 이탈한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보란 듯이 박차고 나왔지만, 나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에 나 자신도 있음을 두 번의 경험을 겪고 난 후 이해하게 됐다.


마치 박수 소리는 양 손이 부딪혀야 나는 것과 같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나고 나서 떠오르지 않던 해결 방안이 떠오른다는 것은, 당시 나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여백이 생긴 이후 찬찬히 되뇌니 구현하기 어렵지만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진정한 휴식을 갖는 방법을 몰랐다. 바쁜 회사 일을 마치고 가면 가정에서 처리할 일들이 있었고, 그것은 주말 시간을 동원해야 풀 수 있었다. 가정에서 처리할 일이 반드시 부정적인 일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할 일들 말이다.


틈바구니에서는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노력과, 넘겨짚고 포기한 부분이 뒤엉키고 섞여 노력이 빛을 보지 못했다. 이는 몇 번을 상기하고 되새김질해도 이 결론에 이른다. 아마도 아직까지는 이 결론이 진실일 것이다. 앞으로 몇 년이 흐른 뒤, 인생을 좀 더 겪으면 다른 진실에 이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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