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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an 29. 2018

커플이었는데, 일상적인 이유로 헤어졌어

'히구라시 키노코 /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을 읽으며

서로 좋아한다고, 좀 더 크게는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가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고백의 순간이다. 누가 먼저든 고백을 하면, 상대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함께 고백을 한다. '너의 사랑을 받아들일게'가 '나도 너를 좋아해(사랑해)'라는 의미는 명백히 아니다. 다만, 앞으로 서로 친구보다 가까운, 부부보다 먼 애인이라는 관계를, 그 세계를 시작해 보자는 의미다. 이런 고백의 순간에도 그때의 기분에 흥분해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다. 이것이 커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 사항이다.


서로 이런 관계가 시작되면, 첫 단계는 배려의 단계다.


"무슨 음식 좋아해?"

"나는 간장맛 라멘을 좋아해"


'윽, 난 라멘을 안 먹는데. 그래도 같이 먹어야겠지?'


이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자신이 싫은데 상대가 좋아한다고 '억지로' 맞추게 되면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하기 보다 고통의 시간으로 시작된다. 다행히 먹어보니 내 입맛에도 맞을 경우, 즐거운 시간으로 돌아가겠지만, 미소를 싫어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차라리


"그 집에 다른 메뉴는 뭐가 있어?"

로 대화를 시작해 보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없네! 그래도 시도해 볼게!"

라는 태도가 서로를 이해해 가며 앞으로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첫 발이 된다. 그러나 억지로 그 시간을 보내고 나중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게 되면 좋아하게 된 사람과 불편한 순간이 만들어진다.


"지난번엔 괜찮다고 했잖아!"

라는 말이 나오게 되면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한 것 같은 상황이 된다. 솔직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일상적 사항이 또 하나 관찰된다.


상대의 행동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 관계 시작의 전조이다. 먼저, 마음에 드는 행동이나 태도,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순간이 많아지면 호기심이 짙어지고 상대를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시작한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맞는 것이 너무 없다. 나는 조용한 카페를 좋아하는데 상대는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s)가 가득한 커피 전문점을 좋아한다. 나는 휴일에 조용히 집에 있고 싶은데 상대는 다양한 레저를 즐긴다. 나는 음식 하기를 좋아하는데 상대는 외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정성을 들여 선물을 만들거나 마련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상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고 그걸 사다 준다. 나는 와인을 좋아하는데 상대는 소주파다. 나는 서양식을 좋아하는데 상대는 파스타 등 서양식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호텔같이 잘 갖춰진 숙소를 좋아하는데 상대는 캠핑장에서 야영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맞춰도 봤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라는 사연이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의 일상 혹은 진실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가 하는 형태, 제안한 방식 등이 불편하기만 하다. 나는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에 대해 잘 살펴볼 기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관계, 이것도 또 하나의 일상적 사항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일상적 사항들 외에도 우리는 상대와 만나기 전에 습관이 된 일상생활의 방식들로 인해 좋아한다는 좋은 감정이 싫어한다 혹은 좋아하지 않는다로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내 생활 방식을 기꺼이 바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배려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왜?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는데. 혹시 우리는 좋아하는 물건을 사다가 애정이 끊길 때까지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어딘가에 장식해 두는, 그런 관계를 맺고 있었나?


이렇게 글로 써서 읽어보면 웃기지도 않는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은, 상대와 만나기 전까지 '누군가와 함께 지내기' 역량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함께 있음' 모드를 시작해 버린 이유 때문이다. 즉, 인간관계의 기본이 안된 상태에서 관계를 시작한 것이다. 인간관계의 기본이 안됐다는 것은 1)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시간을 갖지 않고 직관에만 기대어 그것이 로맨스라고 여겨 버리는 어리광 2) 함께 하는 관계가 된 후에도 이전의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어리광 3) 감정에 치우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질의응답, 즉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무데뽀 모드의 유지를 의미한다. 이 외에도 함께 하는 모드로의 전환을 혼자만 시작했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겠다.


상대는 요리를 한다. 그런데 요리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그릇이나 조리 도구를 잔뜩 쌓아 놓고 요리가 끝나고 식사를 마친 다음에 설거지를 한다. 하지만 나는 설거지와 요리 과정을 병행한다. 그렇게 오래 살다 보니 상대의 방식을 이해하기도 힘든다. 이럴 때 함께 하는 관계가 제대로 열리려면, 아무 말 말고 상대가 요리하는 동안 내가 설거지를 담당하는 것이다. 걸리적거린다고 화를 낸다면 다른 방식을 찾는다. 그렇지 않다면 설거지를 통해 상대를 보좌한다. 이것을 조화 혹은 바람직한 조합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상대의 방식을 비판만 해서 커플 관계가 헤어짐을 앞둔 관계로 전환됐다.


살아감이란, 혼자 지내기 어려운 시간이다. 하물며 20년 혹은 25년 이상을 서로 모르는 관계로 있다가 어떤 계기로 커플이 됐다. 그럼 새로운 세계를 열 준비를 해야 한다. 상대를 알아가고 상대에게 부족한 점이 있을 경우 그것을 기꺼이 보좌하는 태도 등, 커플이 되기 전과는 명확히 다른 내가 되어야 한다. 천생연분이라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인위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을 텐데. 100쌍의 커플이 탄생할 때 과연 몇 커플이나 천생연분일까? 어쩌면 천생연분으로 맺어진 커플이란 마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만큼 희소한 사건일 수 있다. 우리는 호기심에 좌우되는 사람들이다. 호기심을 애정이라 오해를 한다. 호기심이 끊이지 않음을, 그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고통 가득한 살아감이란 시간을 안겨준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견디는 사랑은 결코 행복한 시간이 아니다. 행복한 사랑을 하길 원하는 모든 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론과 경험을 쌓아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 먼저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인간적 성숙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결혼 생활은 견디는 시간과 행복한 시간이 뒤섞인 시간들이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감정에 집중한 덕분이다. 상대를 찬찬히 살펴보며 천천히 관계를 진행할 경우, 상대가 보기에

'왜 저렇게 조심스럽지?'

혹은

'나를 좋아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감이란 서로 행복해지기 위한 결심이다. 그러니 천천히, 서서히 상대를 이해해 가며 과연 좋아함을 상대에 대한 기꺼운 헌신인 사랑으로 전환해도 될지를 가늠하는 기간은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 시간이다.


나이에 맞춰 결혼을 한다.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다. 내가 과연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었는지 먼저 자문해 봐야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다. 이것도 어리석은 선택이다. 내가 과연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못한 우리의 아이에게 좋은 모습, 배울 만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과연 부모로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렇지 못한 부모 아래에서 고생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할 줄 모르고, 희로애락의 감정도 조절하지 못해서, 왕따를 이끌고 여러 사람 앞에서 상대를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내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 자신도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변명이 있다면, 우리의 부모님들은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느라 우리와 교육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부모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나를 낳아 기른 것이다.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이 성공한 방식이나 이론을 고려하여 선택할 시간도 갖지 않고 되는 대로 가져다가 우리에게 적용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와 말이 안 통했는지도 모른다.


커플도 마찬가지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로맨스만 믿고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여 관계를 맺고 나서, 서로 상처와 괴로움을 나누어 가지며 견디는 시간을 보낸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시간들이다. 먹고살기에 바빠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상대에 관한 이해를 등한시 한 나. 그래서 커플인데도 헤어지고 말았다.


위기감을 느끼고 그제서야 바로 잡으려 해도 함께 살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는 괴로운 전환의 시간이다. 스스로 인생을 살기 힘든 시간으로 만든 것이다. 그 섣부름으로 인해, 그 어리광으로 인해 말이다.


*표지 이미지는 여기서: Photo by Gerome Viavan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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