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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Oct 18. 2022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한 주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동생의 귀환

내 동생이 겨울방학 동안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서 귀국해서 집에 왔다. 귀국하니까 좋았다. 옆에 사람이 없으니까 집이 뭔가 더 조용하고 묘하게 외로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아니고 더 길었다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동생이 오고 나니 뭔가 집에 활기가 더 돈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사람 한 명의 빈자리가 큰데 외동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내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도 동생이 있다가 없으니까 허전한 거지, 원래부터 없었으면 별로 상관하지 않았을 것도 같았다.


동생은 피곤했는지 밤 10시부터 잠을 잤다.


화장 연습

요즘 들어 화장 연습을 하고 있다. 화장을 좀 제대로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연습한답시고 열심히 막 그리고 지우고 하고 있다. 눈꼬리를 클레오파트라 마냥 쭉 빼고 싶었는데 그게 영 어색하고 아이들 장난 같아 보여서 도로 다 지워버렸다. 이것저것 연구해 보는 중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강남 영어 학원

강남에 위치한 영어 학원을 갔다. 갈 곳이 있다는 건 기분이 좋다. 두 시간 수업이니까 이전에 듣던 IELTS (영국 영어 인증 시험) 수업에 비하면 훨씬 덜한 고문이다. 차라리 매일 가는 한이 있더라도 수업 시간이 짧은 편이 나는 훨씬 좋다. 또 컴퓨터 모의고사를 치르고 연습만 하는 수업 방식도 좋다.


그러고 보니 학원에 온 다른 분들도 다 화장을 했다. 이제야 그런 게 좀 눈에 들어온다. 하긴, 여긴 강남이니까. 강남 사람들은 다 저렇게 삐까뻔쩍하게 꾸미고 다닌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트레이너 쌤과의 대화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또 운동 갈 시간이다. 이제 나는 할 일 없이 놀고 있냐는 쌤에게 나는 학원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요새 화장 연습을 했더니 쌤이 내게 화장을 한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화장했다는 걸 알아봤다는 걸 잠시 신기해했지만 따지고 보면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나는 어째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화장을 한지 안 했는지 잘 구별을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화장을 연습할 겸 해본 거라고 설명해 드렸더니 막 웃으셨다. 웃을 만한 얘기였나?


쌤은 앞으로 다가올 바디빌딩 대회가 고민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바디빌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아는 바가 없어서 대회가 어떤 것일지도 전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체육인 대회라니 무슨 아령이라도 드는 시합인 걸까? 그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어서 그 대회가 무엇인지 자세히 물어보았다. 설명을 듣자하니 '바디빌딩' 대회란 속옷만 입고 몸을 자랑하는 대회인 듯했다. 당시에는 그게 그런 대회에 대해 처음 들어본 것이어서 듣던 중 제일 웃긴 얘기라고 생각했다. 헐크 같은 몸을 가진 사람들이 몇십 명, 몇 백 명씩 있는 자리라니 상상만 해도 흥미로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완전 남자판 미스코리아 대회 같다"라고 하니까 선생님도 그 비유에 수긍하셨다.


대회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보니 나랑 평행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반대로 선생님의 세상에는 유학은 없을지도 몰랐다. 그런 차이를 느껴서 멀어진 것 같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어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나랑 너무 비슷한 사람들, 무엇을 하고 살고 어떤 수준으로 생활하는지 뻔히 아는 사람들끼리만 교류한다면 참 피곤하고 따분할 테니까. 사람들 사이에는 누구에게나 조금씩 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날 그런 차이가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나와 다른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진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일이 참 흥미롭다.


또 그 쌤과 운동을 하면서 놀랄 일이 있었다. 한 번은 선생님이 내 허벅지 둘레를 손으로 재 보라고 해서 재보았는데, 그걸 가지고 그대로 본인의 팔 근육 쪽을 대보라고 하셨다. 나는 무슨 의도인가 의아해하며 그대로 해보았는데, 정말 쌤의 팔 근육이 내 허벅지 두께보다도 한참 더 나가서 깜짝 놀랐다. 원래도 쌤의 체격은 정말 커 보였지만 실제로 그렇게 접해보니 충격이었다. 이쯤 되면 진지하게 그 팔 안에 충전재라도 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랑은 이렇게 다른 인간 종족이라니 놀라웠다.


동생의 과외 선생님

동생의 과외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왔다. 그는 나랑 동갑인 의대생인데, 에 아파트에 붙은 공고를 보고 부모님과 나랑 같이 처음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집에 처음 온 그는 그때 봤을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딘가 더 잘생겨 보였다. 조명이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전보다 기대치가 낮아진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자면 오해를 살 수 있어 덧붙이자면 사실 그는 인물이 좋은 편이기는 하다. 그리고 정말이지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큼 너무 마른 체형이다.


엄마는 그가 귀엽다고 좋아하셨다. 얘가 순수하고 계산적이지가 않아서 귀엽다고 그랬다. 내 동생은 그가 뭐가 귀엽냐고 막 그랬지만 내심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정신없는 나날들

아침 6시 5분에 맞춰둔 알람이 막 울렸다. (5분으로 해둔 이유는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이다.) 알람 소리에 내 동생이 나를 막 계속 손가락으로 건드렸는지 꼬집었는지 했다. 하지만 나는 잠에 빠져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아빠가 들어와서야 강제로 잠에서 '깨워졌다.'


몸을 질질 끌고 가다시피 해서 세수를 했는데, 세수를 하고 나서 또 얼굴에 발라야 할 로션들과 화장품 시시리즈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으니 힘들어 죽을 판이었다. 그 자리에서 머리를 박고 쓰러질 뻔한 걸 겨우 버티고 어떻게든 몸을 겨우 겨우 움직였다. 그래도 그 졸린 기운에 설거지도 했다. 사실 나도 설거지하는 일이 왠지 즐겁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게 좋긴 하다.


이런 피곤이 아직 풀리지 않은 날에는 머릿속이 온통 버퍼링 걸리고 지지직거리는 낡은 TV 화면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는 원래도 내 머릿속이 TV 화면 두 개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한쪽 화면은 당장 내가 닥친 현시점을 보여주고, 다른 화면에는 그 외에 내가 하는 무수한 생각이나 각종 망상들이 무제한으로 나온다. 문제는 그 망상의 TV 화면이 자꾸 제멋대로 켜져 버려서 아무것도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가 종종 생긴다는 거다. 그런 내 생각들을 자유롭게 껐다 켰다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내 잡생각의 흐름은 꺼질 줄을 모르고 공상마구 떠오른다. 비눗방울처럼 커졌다가 터지고 커졌다가 또 터진다.


하루는 또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지하철을 반대쪽으로 타서 하마터면 학원에 늦을 뻔했다. 학원에서도 내가 수업을 들은 건지 수업이 나를 들은 건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정신없이 시간이 훽훽 지나가 버렸다. 러려고 수업을 듣는 건 아닌데 정말이지 생각이 어딘가 저 멀리 한참 다른 에 가 있었다. 그냥 내내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오는 길에도 또 한 번 잘못된 역에 내려서 돌아갔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혔으면 하지 않았을 법한 실수를 계속하고 물건도 자꾸 잃어버려서 엄마한테도 정신을 어디다가 두고 다니냐고 한 소리를 듣고 있다.


다이어트

졸업식을 앞두고 마음이 초조해진다. 갑자기 확 달라진 멋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를 우습게 보던 사람들의 기라도 확 꺾어놓고만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게 내 피부가 뒤집어지고, 속이 너무 더부룩하고, 살은 좀처럼 빠지지를 않는다. 살이 확확 빠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람에 내 몸이 그렇게 쉽게 따라와 줄 리가 없었다.


저녁을 많이 줄이고 배가 고파서 7시부터 배고픔에 허덕였다. 배가 도무지 차지를 않아서 냉장고에 있는 아몬드를 야금야금 까먹기도 했다. 엄마는 귤이나 먹으라며 귤을 주셨지만 그런 걸로는 내 배가 찰 리가 없었다.


이전에 나는 살 빼는 일이 의지 문제에 불과하고, 이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다이어트를 해보니 이 얼마나 짧은 생각이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다이어트란 이렇게나 끔찍한 일이었나. 다이어트가 진짜 뭐라고, 정말 먹을 것 앞에서 사람이 굉장히 비굴해지는 기분이 든다. 자기 전까지 더 먹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괴롭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하루는 엄마 몰래 야채 크래커를 먹다가 등짝을 세게 맞아가며 혼났다. 솔직히 죗값(?)에 비해 너무 심하게 혼났다. 저녁으로 겨우 딸기를 먹고 안 배고픈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거 좀 먹을 수도 있지...


엄마는 내가 먹은 게 잘못이 아니라 숨긴 게 문제라서 혼난 거라고 하시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는 그 때문에 화난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결국 다른 친구들은 다 대학 합격 소식이 나오는데 나는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다는 게 본심이었다. 그날 엄마가 어찌나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는지 나는 엄마가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싶었다.


내가 넣은 대학들 결과 중 일부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합격 여부가 한 달 뒤에나 발표되는 이상 어차피 지금 걱정해 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나도 걱정을 안 하는 걸 왜 엄마가 사서 걱정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 야채 크래커로 너무 서러워진 나는 진짜 집을 나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진지하게 가출도 고민했다. 하지만 이 추운 겨울날에 밖에 막 나가는 것만큼 대책 없는 짓도 없어 보였다. 옷은 어디서 입고, 잘 곳은 어디서 구한담? 잘못하면 범죄에 노출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차피 졸업식에 가야 하니까 그 전에는 집에 돌아와야 할 것이었다. 그런 현실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가출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졸업식을 앞두고

담임선생님이 병역판정 얘기를 하시며 카톡방에 남학생들 명단을 올려놓으셨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학창 시절에 처음 만났던 친구들이 군대 얘기가 나올 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게 새삼 슬펐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을 보고 마음이 아렸다. 친구들이 군대에 갈 때 이제 나는 더 이상 그 곁에 없을 것만 같다는 게 비로소 실감이 나서 퍽 슬퍼졌다. 한때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이제 저마다 다른 길을 향해 멀리 떠나가는 것 같았다.


졸업식을 앞두고는 가운을 받으러 전날 일찍 학교에 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도착해 보니 건물들은 공사로 인해 뭔가가 달라져 있었는데, 게임을 하는 남학생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는 건 어쩐지 묘하게 익숙해 보였다.


그렇게 학교 풍경을 보던 중에 익숙한 얼굴들마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잠시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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