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 조금 무서웠어

by FONDOF

2026년 4월, 50개월







그런 날이 있다,

눈을 뜨기도 전부터 아차 싶은 날.


'푹 잤는데...?'

8시 22분.

영락없이 늦잠을 자버렸다.


7시 54분 그리고 57분,

알람을 두 개나 맞춰뒀는데도 못 들었다니.



아이랑 둘만 있는 아침,

시간 맞춰서 등원을 하려면 마음이 바쁘다.




터럭! 토스트가 튀어나온다.

손톱 끝으로 조심스레 집어서 그릇에 옮겨 버터를 바른다.

적당히 딱딱해진 갈색 식빵에서 스극스극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잼을 바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따뜻한 우유와 함께 세팅하고

"태은아, 이제 식탁에 와서 앉아. 아침 먹자.
엄마는 화장실 다녀올게, 잘 먹고 있어 알겠지?"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하나 틀어주고

나도 옆에 앉아서 바나나 하나를 겨우 우물거린다.

8시 41분.




아이에게 옮은 감기가 부비동염으로 발전해 2주일째 고생 중이다.

주말 내내 미열이 있고 영 낫지를 않아서

어제 다시 이비인후과를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귀 속이 빨갛게 부어서 염증이 있단다.

이비인후과 약은 세서 빈속에 먹으면 속이 쓰리다.

'바나나 하나 먹고 먹으면 괜찮겠지?'

아직 이틀 치 남은 약을 털어 넣는다.




8시 54분.

오케이 사인만 한 크기로 잘라놓은 딸기잼토스트를 쫍짭거리던 아이의 입이 느려졌다.

"다 먹었으면 가서 응가하자. 다 하고 불러, 알겠지?"

나는 막간을 이용해 앉아서 얼굴에 뭐라도 찍어 바른다.

금세 한 2분도 되지 않아서 다했어!라고 불러대는 통에

얼른 다시 가서 아이의 엉덩이를 씻겨주고

맨 몸에 수건을 둘러 손 잡고 나왔다.


어제 골라놓은 아이의 옷만 입으면 나갈 준비 끝이다,

'몇 시지? 9시 3분.. 조금 늦었네.'


"태은아, 얼른 입자."
"왜?"
"응, 조금 늦었네."
"왜 늦었어?"
"하.. 얼른 앞에 봐. 태은아, 앞에 보라고!"


아이가 말랑말랑한 어깨를 획 돌리며

계속 뒤를 돌아본다.

장난기가 작은 얼굴 그득그득,

까불거리며 웃는 아이의 벌거벗은 맨 엉덩이를 한 대 장난식으로 찰싹 때려주면서

"앞에 봐, 앞에 보라고 했지?
앞에 봐야 엄마가 입혀주지.
자꾸 그렇게 빙글빙글 돌면 옷이 돌아가잖아?"

결국 몇 마디 잔소리를 했다.

"알겠어, 엄마, 미안해"

라고 하면서도 아이는

계속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럼 나는 또 앞에 봐, 앞에 봐, 같은 소리를 하다가

짜증이 슬슬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태은아, 지금 유치원 갈 시간이 늦어서 엄마가 도와주는 거잖아.
그러면 너가 가만히 있어줘야 옷을 입지.
이렇게 움직이면 엄마가 어떻게 입히니?"

기어이 언성을 높이게 된다.


아이는 그제야 바짝 얼어서

"엄마 알았어, 미안해, 가만히 있을게."

하고는 금세 시무룩한 얼굴로

"흥, 엄마 근데 조금 무서웠어. 나 속상해"

라고 한다.




또 이렇게 되어버렸다.

화나게 한 건 자기면서

화날만해서 화 좀 냈더니만

또 나는 화를 내버렸고

또 아이는 무서워져 버린 상황.


"태은아, 엄마가 처음부터 화냈어? 아니잖아.
엄마가 가만히 있어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
근데 계속 태은이가 움직이니까 엄마가 화가 나는 거잖아."
"어, 알겠어, 엄마 미안해."
"그래, 엄마도 무섭게 화낸 건 미안해.
근데 엄마도 엄마도 힘들어.
우리 같이 서로 얘기 잘 들어주자."
"어, 알겠어, 엄마."




9시 10분.

이제는 진짜 나가야 한다.

화해의 뽀뽀, 안아주고

급하게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엄마 나 뭐 장난감 손에 하나 들고 가고 싶다.
차에 놓고 내릴게. 유치원은 안 들고 갈게."

라고 또 세월 좋은 소리를 한다.


지금 당장 2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도 빠듯한데

또 꾸물쩍대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후우 난다.


"태은아, 그렇게 장난감을 챙기고 싶었으면
엄마 옷 갈아입는 동안 니가 영상을 보지 말고 장난감을 챙겼어야지.
지금은 장난감 찾고 챙기고 할 시간이 없어.
그냥 가."

아이가 한자리에 서서 요지부동,

고집스럽게 나를 올려다본다.


"얼른얼른 가서 신발 신어. 엄마는 먼저 갈 거야."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는다.

아이는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입을 삐죽 내민 채 현관으로 와서는

느그적 느그적 이 신발 신을래 아니다 저 신발 신을래 타령이다.

그 작은 순간에도 실랑이를 벌이다가 겨우 신발을 구겨 신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곰인형을 안고 창밖을 구경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또 나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평소처럼 환하게 웃어주지는 않지만 몸은 내 쪽으로 향하고 있다.

배배 꼬면서 아직 뭔가 해결되지 않은 서운함이 남은 것처럼.


엘리베이터에 타서는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조금 똥 냄새랑 담배 냄새가 섞인 냄새가 나는데?"

하길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근데 나는 이 냄새 좋아.
꼭 호텔 냄새 같다.
약간 먼지 냄새 같기도 하고!"

그래 맞아.

희미하게 이런 냄새가 외국 호텔에서 났었지.

오래된 카페트랑 벽지에 베인 시간의 냄새,

그런데 꼭 싫지만은 않은 희한한.

새삼 아이의 후각에 또 감탄을 한다.




차에 태워서 카시트를 태워주는데

나나 곰인형 때문에 버클이 보이지 않아서

"태은아, 나나 잠깐 옆으로 놔봐."

했는데 아이가 아무렇게나 태 나나를 던지는 바람에

곰인형이 발바닥 있는 쪽으로 떨어졌다.


"아잇, 태은아! 그렇게 안 던져도 되잖아. 제대로 놓을 수 있잖아."

또 한 번 눈살을 찌푸리며 온몸을 스트레칭해서 겨우 곰인형을 주워서

"다시 해봐. 다시 제대로 놔봐."

아이 손에 다시 쥐어준다.

아이는 자기 옆에 곰인형을 나란히 차분하게 놓았다.


"그것 봐, 할 수 있잖아."
"어 알겠어 엄마. 근데 나 또 조금 무서웠어."


9시 18분.

나는 말없이 버클을 채워주고는

아이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태은아, 오늘 계속 같은 얘기 하게 되네..
엄마가 괜히 그러는 거 아니잖아?"
"어 알겠어 엄마, 미안해."


나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미간에 긴 뽀뽀를 해주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뱉어버린 나의 말들은 희미하게 남았고

삼켜진 아이의 말들이 진하게 올라온다.













"앞에 봐, 앞에 보라고 했지?

앞에 봐야 엄마가 입혀주지.

자꾸 그렇게 빙글빙글 돌면 옷이 돌아가잖아?"


'엄마 얼굴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태은아, 지금 유치원 갈 시간이 늦어서 엄마가 도와주는 거잖아.

그러면 너가 엄마가 얘기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줘야 옷을 입지.

이렇게 움직이면 엄마가 어떻게 입히니?"


'엄마 웃을 줄 알았는데 또 화내네...'








"태은아, 그렇게 장난감을 챙기고 싶었으면

엄마 옷 갈아입는 동안 니가 영상을 보지 말고 장난감을 챙겼어야지.

지금은 장난감 찾고 챙기고 할 시간이 없어.

그냥 가."


'지금 생각나서 그런 건데...'








"아잇, 태은아! 그렇게 안 던져도 되잖아. 제대로 놓을 수 있잖아."


'던진 거 아닌데. 나나 빨리 치우라 그래서 그런 건데...'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