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0개월
화요일,
주말의 여파가 한 꺼풀 꺾이고 본격적인 한 주의 시작점이다.
아이를 낳기 전 학교나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월요일 보다 화요일의 무게가 더 묵직하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나름의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아이를 보며
'그래, 그게 쉽지 않지.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가서
일정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상이란...
참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나, 대견하다.'
생각한다.
짧은 아침식사 중에도 몇 번을 식탁의자에서 일어나 돌아다니고
옷 한 번 입는 데에도 여러 번 인내의 한숨을 쉬어야 하는 중에
이런 생각을 놓지 않으려 한다.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보게 해주는 생각들.
4월도 어느덧 한가운데 와있다.
아이가 유치원 생활을 시작한 지도 50일 가까이 지나고 있다.
이제 정말 [일상]이라 불러도 될법한 시간 속을 보내고 있다.
더는 등원하는 차 안에서 유치원 안 가고 싶다고 울먹인다거나
점심식사 때 또 김치를 먹어야 하면 어떡하냐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은 또 어떤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고
지난주 케이트선생님께 배운 S로 시작하는 단어를 하나씩 대는 게임을 한다.
"엄마, 내가 먼저 할게! Snake!"
"오오, 그렇다면 엄마는 Stake!"
"음.. 그럼 나는... Snail!"
"대단한디? 엄마는 그럼... Sea!"
"엄마, 그리고 나 이것도 알아. Spider!"
"와 진짜 많이 안다!"
"어, 엄마 이제 알파벳 대기 그만하고
타요에 나오는 친구들 이름 대기 하자!
나부터 할게, 타요!"
"오잉? 좋았어, 그럼 엄마는... 하나누나!"
1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듯
새로운 게임을 제안하고 끊임없이 쫑알거린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아이의 지금 마음을 가늠해 본다.
슬프지 않구나,
속상하지 않구나.
다행이다.
사거리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바뀐다.
엑셀을 눌러 밟으면 지나갈 수 있을 거 같지만
대신해서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아 멈춘다.
아이와의 등원길만큼은 서둘러 운전하지 말자,
1~2분 늦더라도 평화롭게 가자는 생각으로.
유치원 근처에는 초등학교도 있고 고등학교도 있다.
길게 이어지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속도를 위반해서
벌써 2번의 범칙금 고지서를 받아버렸다.
'하... 그거 내야겠네...'
잠깐 생각하는데
창 밖을 보던 태은이가 문득 이런 말을 한다.
"엄마, 근데 지후는 친구들을 괴롭힌다?"
지후는 태은이와 같은 반 친구,
바가지 머리에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아이이다.
화요일마다 하는 악기 아카데미에서 처음 보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유치원도 같은 곳이어서
정말 신기한 인연인 친구,
만날 때마다 반갑게 웃어주고
태은이의 이야기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래? 어떻게 괴롭히는데?"
"친구 만져."
"아, 만져~?"
"응. 그거 안돼."
"그래 그렇지..."
문득 지후의 해맑은 웃음이 떠오른다.
태은이 어디 있어요? 태은이 인사할래요! 하며 기다리다가
태은이를 발견하곤 달려가 태은이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던 아이.
"지후가 참 다정해요~ 너무 이쁘게 웃고."
지후 할머님께 지후를 칭찬했던 장면도 떠오른다.
"... 태은이가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엄마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
근데 지후가 다른 친구 만져서 그 친구가 불편하다고 했어?"
"선생님한테 일렀어."
"그 다른 친구가?"
"어."
"으응... 태은이는 그런 모습 봤을 때 어때 보였어?"
"안 좋은 거 같았어."
"안좋아보였어?"
"어."
"그러면... 태은이는 그렇게 안 하면 되겠다, 그치?"
"응."
"그리고 선생님들도 다 보고 알고 계실 테니까
우리가 일부러 고자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어때?"
"그래."
"근데 그게 태은이가 보기에 안좋아보였구나."
나는 룸미러로 태은이를 흘끗 살펴봤다.
오전 9시의 노란 햇살이 온 얼굴을 비춘다.
부신 눈을 가늘게 뜨고 한갓지게 코를 후비는 중.
"지후가 태은이한테도 다가와서 얼굴 만지고 그랬었잖아,
그때 태은이 기분이 어땠어?"
"안 좋았어."
"안 좋았어?
엄마가 볼 때 지후는 태은이가 너무 좋아서 안아주고 싶고 그래서 만진 거 같긴 했거든?
아프거나 세게 만지진 않았잖아. 그치?"
"어. 엄마.
하늘에 헬리콥터 있다."
"응, 그렇네.
아무튼 아무리 내가 친구 예뻐서 그래도
친구가 싫다 그러면 싫은 거야, 그렇지?"
"어."
유치원은 아파트 단지 내 위치해 있다.
매일 아침 단지로 들어서면
익숙한 얼굴의 경비아저씨께서 웃으며 바리케이드를 열어주신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주차박스를 찾는다.
"... 엄마 근데 저번에 민규도 만졌어."
"지후가 민규도 만졌어?
그래서 민규가 어떻게 했어?"
"선생님한테 일렀어."
"아 그랬어?
그랬더니 선생님이 어떻게 하셨어?"
"지후한테 말하셨어."
"지후야~ 친구들 얼굴은 만지지 말자~
이렇게 하셨어?"
"어, 근데... 맨날 괴롭혀서 지후가...
쪼꼼, 요만큼 화나긴 했어."
"지후가?"
"아니, 선생님이."
"아 그랬어? 그랬구나..."
"엄마!
근데 지후 머리가 쪼꼼 멋있어졌더라?"
"그래? 지후 머리 멋있게 잘랐어?
엄마도 이따 봐야지. 이제 내리자!"
차문을 열고 내리자 금세 봄햇살에 어깨가 따뜻해진다.
아침 기온 17도,
오늘 태은이는 처음으로 아우터 없이 가방을 멨다.
오전 9시 23분.
등원시간을 7분 남겨두고
우리는 손을 잡고 총총 걸었다.
저 멀리 하늘에 하얀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비행기 하나가 날아간다!"
"그러네, 하얀 비행기가 날아가네?"
"어! 우리 유치원,
우리 유치원 진짜 처음 보겠다!"
"그러네.
하늘 위에서 비행기 안에 탄 사람들이
'오? 저기 유치원이 있고만?' 그러겠다!"
"어! 사람들도 우리 유치원 가고 싶을 거야."
"그러게, 저 사람들도 다
'와~ 저 유치원 정말 재미있겠다!' 하고 있겠다!"
"아이들도,
'엄마엄마! 저기 저 유치원 가볼래요!' 하겠지?
근데 여기는 비행기가 내릴 자리가 없어.
여기는 공항이 아니잖아~"
"그래 맞아, 내릴 수가 없어. 그치?"
까불거리며 걷는 아이를 살핀다.
딱히 불편한 마음이 남아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냥 뭐... 괜찮겠지... 싶으면서도
결국 나는 다시 한번 이야기를 꺼냈다.
"태은아, 엄마랑 다시 얘기해 보자."
"왜?"
"친구가 하는 행동이 좋지 않아 보일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 내가 안 하는 거야!"
"맞아! 내가 그렇게 안 하면 되는 거야, 그렇지?"
"어."
"그거를 선생님한테 바로바로 일러바치는 건 어떨까?"
"어... 좋지 않은 행동이야!"
"좋지 않다기 보단... 그렇게 멋진 거 같진 않아."
"어!"
"대신에 태은이가 여러 번 얘기했는데도
친구가 계속 그래서 도움이 필요할 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 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해!
어! 저기 이서 있다,
이서야~ 안녕!"
태은이는 저 멀리 할머니 손을 잡고 등원하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커다란 가방이 양쪽으로 흔들리도록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달강달강,
아이 가방에 달린
스파이더맨과 포켓몬 키링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다.
#엄마나이다섯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