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이 2℃ 오르자_Part 1

일상이 2° 기운다

by FONDOF


2025년 8월, 43개월






아이와 짧은 낮잠을 자고 깬 순간 바로 알았다,

'어, 이 느낌...'



코 끝이 찡찡하고 목젖이 간질간질,

목구멍에 맺힌 숨이 뜨끈하고

미간부터 정수리가 묵직한 이 느낌.


섬광처럼 번쩍이는 불안함에

급한 대로 애드빌을 찾아 두 알 털어 넣었다.

약 15분 뒤 약한 식은땀과 함께 금세 몸이 조금 가벼워진다.

'이대로 괜찮겠지..'


마지막으로 아픈 게 언제였더라,

거슬러 올라가 보니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3년 전 9월 코로나 그때였다.


침 한 방울 삼키기도 비장한 도전이었던 기억,

열이 3일 내내 38도 밑으로 내려오질 않았던

참으로 고약한 역병이었다.


그러고 꼬박 3년을 아프지 않았구나,

내심 스스로가 대견하면서도

아.. 아플만해서 아픈가 보다..


자포자기.






새벽 두 시까지 글을 쓰느라 잠은 저 멀리인데

약발이 떨어지니 다시금 열이 오르면서 코도 꽝꽝 막힌다.

끝내 맘에 들지 않아 마무리 짓지 못한 글,

모르겠다 내일 다시 봐야지 하고 노트북을 닫으니

거실이 온통 까맣다.


하...


소파에 아빠다리로 올려놓은

다리 한 짝 내리기도 버겁다.

손 끝 마디마디 저릿하고

안방으로 가는 몇 안 되는 걸음이

세상 더디다.


침대에 겨우 누웠으나

매일 잘만 베고 잔 베개가 불편해서

목까지 아프다,

머리에 피가 쏠리는 기분이다.


잔뜩 찌푸린 눈을 힘줘 감고

잠들자 잠들어버리자.. 했으나

부은 목 덕분에 숨구멍도 가늘어지고

코까지 막힌 상태,

답답해!


이불을 박차고

어둠 속을 벌떡 일어나 앉았다.


여름밤의 텁텁한 공기는 너무나 불쾌하다.

하지만 에어컨 바람이 닿는 순간,

살갗이 찢기듯 아프기에 켤 수도 없다.

얇은 이불을 뚤뚤 말아 싸매고

다시 누워본다.


침대 끄트머리에 매달리듯 돌아누워 있는 아이와

그 옆에서 세상모르고 코 고는 남편,

잘 자고 있는 이 둘의 모습이

다행이기도 하고 외롭게도 한다.



아, 열이 오른다..







그렇게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아서 졸다가

다시 이불을 싸매고 눕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아이가 안 좋은 꿈을 꿨는지

잠투정을 부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블라인드 너머 유리창이 어슴프레 밝다.


새벽 6시 30분.


아이가 비몽사몽 간에

아니야 아니야! 하며 발길질을 하는데

그 작은 망치 같은 발에 몇 대 맞고

어찌나 아프던지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평소 같으면 그런 아이를 커다랗게 안고

손으로 가슴을 토닥토닥해 주며

눈과 눈 사이에 뽀뽀를 해주었을 텐데,

그럼 아이도 이내 다시 잠이 들었을 텐데..

지금은 아이 쪽으로 돌아누울 기운도 없다.


아니, 그랬다가 돌아누운 쪽 팔도 아플 거 같아.



"엄마아.. 척척해.."

아뿔싸,

그 말에 구겨진 몸을 펴듯 일어나 아이를 살핀다.

잠옷바지가 홈빡 젖었다.

"아... 실수했구나. 괜찮아 괜찮아."

하는 내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아닌,

이렇게 낮은 소리를 낼 수 있었나 싶게

낯선 음성이다.


남편이 오늘 아침 7시쯤 출근한다했는데..

거의 기듯이 안방을 나가보니

작업방에 불이 켜져 있다.

아직 출근 전,

업무를 보고 있던 남편을 불러

아이를 내맡기고

다시 들어와 무너지듯 침대에 누웠다.


아직 집에 남편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문 밖으로 아이가 떼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좀 괜찮아..?"

불 꺼진 안방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거실의 불빛을 등에 업고

남편이 검은 실루엣으로 다가와 묻는다.


"나 체온계 좀.."

뾰족하고 단단한 체온계를 귓구멍 속에 꽂는다.

38.5도.



정상체온에서 2도만 올라가도 이렇게 괴롭구나.




마침 지난주 나와 비슷한 증상으로

먼저 내과에 다녀온 남편의 약을

한 봉지 얻어서 털어 넣었다.


사십이 넘도록 여전히 한 알 한 알 겨우 삼키는 나를 기다렸다가

물컵을 갖다 놓으러 나갔다 다시 들어오더니

"오늘 연차 냈어. 태은이 내가 볼게, 좀 더 자."

라는 남편.


'됐다, 이제 살았다.. 고마워... '

더 자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를 나 몰라라 하고

그대로 쓰러져 눈을 감았다.


"엄마 아프니까 나가서 놀자~"

남편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드디어 잠답게 잠 좀 잤나 했는데

이번엔 더워서 다시 눈이 떠진다.

오전 10시 15분,

싸맸던 이불이 발끝에 아무렇게나 말려 있고

머리며 목이며 할 거 없이 땀이 흥건하다.

'열이 내렸구나!'



내가 태은이보다도 어렸을 때
폐렴으로 엄마 등에 업혀 병원에 갔던 일이 있다.

40도가 넘어 덜덜 떠는 나를 업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새벽길을 달려간 엄마,
엄마는 그때가 엄마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고 했다.

의사는 나를 보며
"10분만 늦었어도 애 죽거나 바보 됐겠어요."
라고 했다고 했다.

(들을 때마다 참 무심한 한 마디 아닌가!)



그 일의 여파인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열이 제일 무섭다.

반대로 열만 조금 내려도 금세 살았다..! 고 섣불리 안심하기도.



체온을 재보니 37.2도.

하지만 다른 증상들은 여전하다.

여전히 두통에 코도 막히고

목구멍도 더운 기운이 찼다.


바로 며칠 전에

"아프면 제발 병원부터 가서 수액 좀 맞으랬지!" 하고

남편을 타박했던,

한 치 앞을 모르던 나.


병원 가자는 남편의 말에

군말 없이 집을 나섰다.






집에서 8분 거리이지만 도저히 운전을 할 자신이 없어서

남편에게 운전대를 양보하고 오랜만에 아이 옆,

뒷자리에 앉았다.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골목,

우리가 종종 배달시켜 먹던 횟집이 보인다.

'어, 저 가게가 여기 있는 거였네?'

남편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소리내기도 힘들어서

그냥 혼자 생각하고 말았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새하얀 백열등 불빛이 쨍한 병원,

천장에서 내뿜는 시스템에어컨의 냉기가 아리다.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찬 바람이 바늘 되어 맨 살을 찌른다.


'오늘 친구들과 수영장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잠들기 전에도 확인하고 기대하고 잠들었는데

수영장 소리 한마디 안 꺼내고 군말 없이 엄마 병원까지 따라와서

명랑하게 자동차를 갖고 노는 모습이 고맙고 짠하다.


"그럼 태은이랑 뭐... 놀고 있을게, 수액 잘 맞고 전화해."

안쓰런 눈빛을 하고선,

여기서부턴 딱히 더 해줄 것도 없으니 일단 퇴장하겠노라는 남편과

엘리베이터 버튼 자기가 누르겠다며 촐랑대는 아이에게 이따 보자 인사하고

"신*주 님, 들어가실게요."

간호사님의 말에 진료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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