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엄마니
2025년 8월, 43개월
식탁에 앉아 화장하는 일상,
그마저도 그냥 비비크림 정도지만.
화장을 하려고 거울을 보는데 너무 더러웠다.
마른 휴지를 한 장 뽑아 거울을 닦았다.
허어어 입김을 내어 뽀득뽀득 닦아주면 금세 깨끗해지는데
몰랐던 주근깨며 자란 눈썹올이 다 보일 정도,
시력이 좋아진 게 아닐까 착각이 든다.
'어휴 올여름에도 신나게 놀았구나..'
체감온도 37도 육박하는 한증막 더위에도
아이와 공원이며 계곡이며 실외로 나다닌 일상,
선크림 챙겨 바르는 것도 귀찮아서 비비크림으로 퉁친 자가
불평할 자격은 없지만
늘어난 모공이나 벌긋벌긋해진 피부를 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속상해진다.
선명해진 거울 속 내 얼굴을 신나게 살피다가
그 동그라미 속으로 쑥 들어온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개구지다 못해 반짝반짝 빛을 머금은 눈빛,
화장하는 내 곁으로 와서는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치자
들킨 듯 꺅! 웃으며 자지러진다.
"뚀잉? 요놈이?"
"요놈아~ 지금 모하는 거니~?"
"뭐라고? 요놈이 엄마한테?"
캬하하핰 아래윗니를 다 드러내고 웃는 아이를
어이가 없어서 빤히 쳐다봤다.
헛웃음이 난다.
내가 웃자 아이는 더 크게 웃는다.
[요놈]이라니,
이건 아이를 나무랄 것도 없이 내 말투다.
"엄마한테는 요놈이라고 하면 안 돼, 요놈아!"
"왜 안되니, 요놈아?"
'하 요놈 봐라 진짜..'
아이는 내 어깨 뒤로 숨더니 눈만 빼꼼 내밀고는
동그란 거울 속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며 웃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아이의 체온이 등 뒤로 뜨끈하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그 말이 이렇게까지 날 것 그대로 와닿는 순간이라니.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에
놀라고 웃기고 어이없는 일들이야 셀 수도 없이 다반사이지만
이렇게 허를 찔리듯 내가 그대로 담긴 순간들이 있다.
영락없이 내 아들이네 싶으면서도
나라는 세상이 곧 아이의 언어가 된다는 걸
매일 매 순간 목격한다는 건
상상이상으로 기쁘고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뿌듯하고
묘하게 열받는 일이기도 하다...
한 시간 남짓 운전 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차 오래 타느라 수고했네, 잘 와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엄마가 더 수고했지, 운전하느라~ 내가 더 고마워”
남편이 또 양말을 돌돌 뒤집어 벗어놨다.
이거 이렇게 벗어놓으면 내가 일일이 손 넣어서 다시 빼야하지 않냐고
잔소리를 좀 하고 있노라니
“엄마 왜 아빠한테 소리 질러~ 그럼 아빠가 쇽샹하쟎니~”
장난감 가게,
요즘 푹 빠져있는 랜덤 피카츄 박스 하나를 사줬다.
언젠가부터 더 이상 장난감을 뜯어달라 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투명 테이프를 뜯어내는 손이 서툴고 종이박스를 아무렇게나 찢어버리지만
어찌어찌 성공해서 드디어 피카츄 알맹이를 직접 꺼내는 순간이 되면
한 인간의 순수 기쁨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러고는 점원을 올려다보며 이런 말을 하는 것.
“혹시.. 여기 쓰레기통 있나요? 이것 좀 버려주시겠어요?”
요즘은 김밥을 말아주면 곧잘 먹길래
멸치 치즈 김밥, 오징어 김밥, 소고기 애호박 김밥 등
다양하게 시도하는 중이다.
한 번은 먹고 있으라 하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식탁이 쏟아진 물로 흥건하다.
"이거 왜 이래? 물 갖고 장난쳤어? 태은아.. 그러지 말라니까.." 하니
"어쩔 수 없지 뭐~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야겠다!"
"아이고 나 너무 힘들어서 좀 자빠져있을게."
아이와 꼬박 반나절을 보낸 후 저녁에 귀가한 날,
마침 재택근무를 마친 남편에게 아이를 고스란히 토스하며
안방으로 직행, 침대에 풀썩 누워 잠깐 눈을 감았다.
아빠와 손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아이가
그런 날 보며 다가와 한 마디,
“엄마 자빠져있네? 엄마 자빠져있으면 내가 귀여워하잖아~”
"샤워하자~ 옷 벗고 화장실로 와~"
나는 미리 샤워기를 틀어 샤워하기 딱 좋은 온도로 맞춰둔다.
상의만 벗고 자랑스러운 배를 내밀며 아이가 들어온다.
"태은아, 바지도 벗어야지?"
아이가 느그적느그적 바지를 벗는 걸 지켜본다,
당장이라도 벗겨주고 싶지만 참고 그 느릿함을 기다린다.
"이제 됐지?" 하며 들어오는 아이,
그런데 팬티는 입고 있다. (하..)
"팬티도 다 벗어야지~"
화내지 않고 짜증도 안 내고
웃으며(빠직) 친절하게 얘기해 줬는데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벗으라는 거야~"
"여보, 혹시 오늘 회 먹고 싶어?"
라든지
"나한테 아이스커피 한 잔 타주고 싶으면 얘기해~"
하는 식으로 원하는 걸 얻어내는 나의 화법.
친한 동생이 이런 모습을 보곤 포복절도하며
"형부, 괜찮아요?" 물었을 때
"... 어. 이젠 그냥 내가 원했나? 싶어."
라던 착한 남편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운 내 아들의 한 마디.
“엄마~ 나랑 카드놀이 하고 싶어?"
#여보그동안미안
#엄마나이네살
#말투유전
#아이는부모의거울
#육아일상
#아이의언어
#대화기록